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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마스쿠스 Aug 25. 2024

핸드크림과 앞치마

앞치마는 왜 필요한지 몰랐고 핸드크림은 화장실 갈 때만 썼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다,라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던 처녀시절. 맨해튼의 거리에 고급 바디 부띠크에 들러 한번 발라본 핸드크림을 집어 들었다. 100미리에 28불. 굉장히 비싸다고 느꼈지만 일 열심히 하는 나를 위해서라면, 쓸 수 있어!  후후, 라며 나는 우디 하면서 시트러스 향이 풍기는 핸드크림이 담긴 도톰하고 부드러운 종이가방을 들고 샵을 나왔다.


회사에서 했던 일을 손을 쓰는 일이었다. 정확히는 컴퓨터로 자인하는 일, 하루 7시간 정도를 쓰기에 나는 늘 손이 건조했다. 그 대신 물이 닿을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화장실 갈 때만 손 닦는 정도...


아침은 커피와 빵으로 때우고, 점심은 나가서 동료나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친구들과 먹는 일이 다반사. 저녁은 샐러드나 피자를 집 앞 식당에서 테이크아웃해 먹는다. 1년에 10번 뭐 만들어먹을까 말까... 먹는 걸 좋아했지만 해먹을 정도로 진심은 아니었기에... 청소는 너무 작은 맨해튼의 스튜디오인 탓에 지잉지잉, 몇 번만 미니 청소기를 밀면 끝. 어차피 집에서는 잠만 잔다. 나는 요리도 청소도 많이 할 필요 없고 빨래도 별로 없어서 며칠에 한 번만 돌리면 되는 그런 아가씨였다.. 내 일상은 일어나서 출근하고, 퇴근해서 싱글라이프를 즐기고 잠에 드는 심플한 일상이었다. 결혼 전까지는 말이다.


손가락이 두꺼운 외할머니는 나를 아껴주며 니 살림할 때까지는 손을 물 대지 말라며 교복을 꾹 꾹 눌러 다림질해 주었다. 그리고 그 말은 보기 좋게 들어맞았다.


하루에 손에 물을 적어도 20-30번은 족히 대고 사는 것 같다.

일어나자마자 애들 씻기고 양치 돕고.. 도시락 싸고 화장실 가는 뒤처리. 아침 먹고 컵 닦고, 쌀 씻어 밥을 짓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교복 더러운 부분은 손빨래. 화장실 뒤처리가 아직 미숙한 둘째도 도와줘야 한다. 어떤 날은 손이 너무 건조해서 핸드크림을 발랐는데 1분도 안돼서 다시 손에 물을 대야 했다. 월수금 반나절 와주는 도우미가 있는데도 오롯이 내 차지가 되어버리는 집안일.


아... 그때 "현타"가 왔다. 나 정말 손에 물 마를 날 없이 사는구나. 모든 주부가 그렇겠고 엄마가 그렇겠지? 하며 정말 진절머리가 나는 날을 아무것도 안 하고 싶지만 그럼 밥은? 다시 앞치마를 찾아맨다. 젖은 손을 닦으라고 앞치마가 있다는 걸 결혼하고 알았다. 왜 주부들이 앞치마 공구를 하는지 이해가 전혀 안됐는데 핸드폰도 넣고 손도 물을 계속 묻치니 계속 바지에 닦는 것도 말이 안 되고...


나같이 개발도상국에 이민을 오면 다 아줌마 두고 여유롭게 사는 줄 알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아줌마가 해줄 수 있는 부분과 엄마가 하는 부분은 다르고 어린아이들은 손이 많이 간다. 그리고 도우미가 출근을 안 한다는 걸 모르고 집이 어질러져 있는 상태에서 출근 불가 통보를 받는다면..? 상황은 최악. 다시 소매 걷어붙이고 물을 대는 것이다. 지인들과 이야기해보면 세상에, 주부습진도 있고 손이 헐은 사람 등등... 참 녹록치 않다.


이처럼 출퇴근 없는 주부의 삶이 이런 것이다.

물에 손을 대며 무용지물인 핸드크림이 손에 스며들기 도전에 다시 쌓이는 집안일을 하는 것... 이민 전, 결혼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일상이었다. 아니, 알았지만 내가 설마 그렇게 살겠어... 라며 부정했던, 그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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