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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마스쿠스 Aug 29. 2024

불볕 태양아래 파라과이

미친듯한 날씨의 파라과이였다. 늘 여름이었다.

[여름이었다.]라는 내레이션을 들으면 뭔가 설레면서 두근두근 거리는 써머 로맨스가 시작돼야 될 것만 같은데...


파라과이에 살면 1년에 적어도 9달에서 10달은 여름이다.

근데 바닷가가 없는 게 함정. 그냥 풀과 나무만 있어서 해수욕도 못한다...


그리고 이 여름은 정말.. 불볕더위다. 가히 미친 더위.


평균 38도의 더위 안에서 살아가는 파라과이 사람들은 성품이 온화한 축에 속한다. 늘 "Tranquilo"라는 이 말을 달고 사는데, 이 말은 "진정해" "괜찮아"라는 뜻으로 쓰인다.


한국 사람은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살고 미국에서는 "Take your time"이라는 말을 학교에서만 들었는데... (특히 일할 때 이 말 들으면 진짜 take your time을 하라는 게 아니고 얼른 했으면 좋겠지만 나는 나이스한 사람이니 얼른 알아서 빨. 리. 끝. 내.^^)


나는 뭐랄까...

답답했다.

더워죽겠는데 뭘 진정하란 말인가. 일이 느려 터졌는데 무얼 진정하라는 말인가!!!

하하...


더위 때문에 슬슬 일하는 것이 괜찮게 여겨지기도 하고,

일하는 중간중간마다 떼레레 Terere라고 하는 음료를 마신다. 이 음료는 주조 Yuyo라는 약초를 찧어 넣고 찬물에 얼음을 넣어 더운 날 시원하게 마신다. 1리터 정도의 통에 넣고 마시니 오랫동안 더운 날에 즐겨 마시는데, 약초마다 통증완화가 되는 약초도 있다니 신기했다.


불볕의 더위는 아침 10시 반 경부터 오후 4시 혹은 5시까지 이어진다. 피부는 푹푹 찌는 날씨에서 보기 좋게 절여진다(?) 땀으로...


비타민 D와 함께 UV가 세게 들이닥치기 때문에 선크림은 필수.  땀을 많이 흘리며 뛰어다니는 아들들에게 아무리 발라도 무용지물이다. SPF50++  를 챙겨 바르고 성가신 모기약을 바르고, 여름이 다가올 준비를 단단히 해본다.


오늘까지는 18도-20도의 서늘한 날씨.

이번주부터 더워진다는데 나는 반가우면서도 지글지글 작열 태양이 무섭다....




남편과 교제를 시작한 것이 2015년인데 5월쯤인데, 그 해 2월,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인 웬디와 나는 겨울성경학교를 마친 참이었다.


2015년은 특히나 겨울이 일찍 오고 5월까지 눈이 온 이상한 날씨의 연속이었는데, 우리는 눈이 잔뜩 온뒤 온 땅에 살얼음이 끼고 슬러시가 만연한 2월의 뉴욕 거리를 걸으며 심통을 부렸다.


"야.. 인간적으로 너무 춥다! 바닥좀 봐, 걸을수가 없어. 신발 사이도 물 들어와서 집에 가면 큰일 났어..."


내가 울상을 짓자 웬디가 말했다.


"지금 엘에이 가면 따뜻하겠지? 동부는 너무 춥고 나 겨울 진짜 싫어.. 우리 둘다 결혼해서 엘에이로 이사가자! (참고로 둘다 싱글...)"


"그래!! 우리 지금을 영상으로 남기자!! 미래의 남편에게 말이야 ㅋㅋ"


"미래의 남편들 보세요! 우리는 믿음 좋은 자매들이고, 지금 성경학교 끝나고 밤 10시에 집에 가는 길이에요. 이 바닥좀 봐봐, 엄청 춥고 지금 난리났다고(?) 엘에이로 이사가니까 너무 신나. 우리 짝인 당신들 만나는게 기다려져~~ 꺄악!!"




우리는 이렇게 영상을 재미있게 찍고선 얼어가는 손을 호호 불며 지하철 역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몰랐었다...


그 영상을 찍고 석달안에 웬디는 세계를 여행하는 여행 인플루언서가 되어 지금 현재는 사랑하는 남편과 햇빛이 부드럽고 아름다운 프랑스 남부에 자리잡고, 나는 일년 중 10달이 여름인 파라과이에 살게 될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고 응답하셨다(!)

전혀 생각치 몰랐던 방향이었지만,

햇빛을 풍부히 주시고 나는 그 다음해부터 눈 온 바닥을 단 한번도 걸은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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