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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마스쿠스 Sep 02. 2024

1.2 전학생으로 살아남는 법

내가 가져간 것

영어를 못하는 고등학생일 때 새 학교로 전학을 간다면, 그리고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된다면?

가히 "멘붕" 이 오게 된다.


나는 가장 자신 있는 미술을 N/A (Non Achievemente), 쉽게 말해 패스를 못했다.

선생님이 말하는 대로 그려야 되는데 말을 못 알아들으니 어찌 그리랴...

충격을 진하게 받고, 나에겐 뭔가 방법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밑의 세 가지다.

1. 성경을 1 독했다.

2. 영어를 진심으로 공부했다.

3. 내 그대로를 보여주자.


1. 믿음이 아니고서는 나는 이 어려운 생활을 이겨낼 수 없었다.


중3 때 담임선생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교회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나는 뉴질랜드에 갈 때 두꺼운 한영 성경을 구입하여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밤마다 자기 전 성경을 한글로 영어로 읽으며, 때때로 필사하며 믿음을 혼자 키웠다.


나를 버리지 않을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그 안에서 거하며, 주말에는 가디언 선생님이 데려가는 한인교회를 갔다.


믿음은, 어려울 때 내가 견딜 수 있던 든든하고 굵은 동아줄이었다.


2. 이번이 내 인생을 터닝포인트라고 굳게 믿으며 정말 열심히 했다.

 당시 한국에서 우연히 구입했던 회화사전이 있는데, 어떠한 회화라도 나와있는 정말 신통방통한 책이었다.

그 책을 매일 공부했고, 과외도 토요일에 문법 1시간 회화 1시간, 작문 1시간을 했다.

책에 나온 것을 호스트 패밀리와 학교 친구들과 연습했다. 한국에서는 수학 못하는 축이었는데 여기오니 내가 1등이라 (한국교육의 위상을 느꼈다) 애들이 모르는 것을 따로 과외해 주고 선생님에게 내가 아는 방식으로 푸는 법을 가르쳐주자 놀라실 정도였다.


3. 꿔다 놓은 보릿자루같이 있으면 절대 아무도 알아주지 않기에 생각나는 말을 엉뚱하게 내뱉다 보니 어느덧 반친구들도 나를 얘 뭐야! 하며 재밌게 받아주었다.

그리고 아무 가식 없이 아이들과 대화하려 노력했다.

당연히 말이 안 통했다.

그렇지만 감정은 통하고 우스꽝스러운 춤과 리액션은 충분히 먹히고도 남았다. 애들은 넌 크레이지 라며 배를 잡고 웃었다. 노래방기계를 틀어놓고 안 되는 영어노래를 하기도 했고.

Classclown으로 불리며 존재감을 드러내며 영어도 조금씩 늘어갔다.


그러나 난 마냥 웃기기만 아이는 아니었고, 내 목표는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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