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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마스쿠스 Sep 23. 2024

2.4 공부에 미친 아이, 1등을 손에 넣다.

나는 1등으로 졸업했다. 

지독하게 경쟁심이 심한 나였다. 아니 악바리라고 할까...


20달러를 주고 산 국제전화 카드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신호를 기다리자 엄마는 내게 망설이며, 집 사정이 조금 어려워졌다는 말을 하셨다. 하지만 금방 해결될 거라는 말도... 학교를 졸업하려면 아직 일 년 반이나 남았는데. 


나 졸업할 수 있을까....


그전에도 긍정적으로 열심히 하자고 생각은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내 학비를 대고 있는 엄마를 위해서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보답은 성적을 잘 받는 일뿐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누구와도 아닌 나 자신과 경쟁하며 미친 듯이 공부에 전념했다. 

뭐든지 열심히 했지만, 영어수업 시간에는 내 실력이 달린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아무리 공부해도 원어민인 반 아이들보다 성적을 잘 받기가 너무나 어려운 것이다. 


두세 배로 열심히 해서는 택도 없다. 

열 배는 해야 될 것이라는 계산이 섰다. 


산기슭 기숙학교는 밤 10시에 모두 잠에 들어야 한다. 

평생 영어만 해온 아이들과 같은 수업을 듣고 시험을 쳐야 하는데 나에겐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밤 8시-10시까지는 스터디 홀이라고, 숙제하고 공부하는 시간을 주는데 상위권 성적이 되면 스터디 홀 면제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 모두 강제 자습이다. 


2시간 공부해서는 기본적인 숙제는 할 수 있지만 더 공부를 심도 있게 할 수가 없다. 

나는 영어가 아직 완벽히 익숙지 않기에 책을 읽어도 시간이 더 걸리고, 모르는 단어도 사전을 찾아 익혀야 하는데... 무조건 10시에 잠이 들어야 하니. 옵션은 이제 두 개.


1.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하기. 

-> 아침 6시에 일어나 물 한잔 마시고 어제 먹다 남은 차가운 피자를 씹으며 2장짜리 에세이를 10장으로 심도 있게 짜고, 써 내려가고 복기하곤 했다. 경제학 수업 때 토론을 해야 하면 자료 준비를 최대 20장까지 준비하여 어떻게든 이기려고 기를 쓰고 준비한 기억이 있다. 


2. 10시가 지나고 자는 척하다가 사감 선생님이 숙소로 들어가지면 빠져나와서 화장실에서 공부하기. (방에 불을 켤 수 없으니)

-> 수학이나 과학, 역사 같은 경우는 컴퓨터를 안 써도 책만 가지고 화장실에 앉아서 공부할 수 있으니 비교적 쉬웠다. 책을 미친 듯이 반복하여 베낀 것을 읽고 읽고, 또 읽어서 완벽 암기를 했다. 교과서 내용을 외우니 어떠한 시험을 봐도 100점에 가깝고, 수학은 이해를 못 하는 읽기 문제 100개를 더 풀어 내용을 충분히 숙지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거쳤다. 


3.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 틈만 나면 선생님 방에 찾아가 모르는 것 설명을 부탁드리고 에세이의 틀린 곳을 찾아달라고 진심으로 부탁드렸다. 내가 부족한 점을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하자 흔쾌히 설명을 해주시고 도와주셨다. 





그러던 3월의 어느 날이었다.


학교 전체 미팅에서 교무부장실로 내려오라는 말을 듣고 의아한 채 내려갔다. 


한 번도 발을 들일 일이 없던 곳. 

창문가에 서계시던 선생님은 들어간 나를 반겨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렇게 널 부른 이유는 네가 이번 학년 1등으로 졸업을 하게 돼서 졸업식 때 스피치를 준비하라는 말을 해주려고 부른 거야." (1등 산출은 11학년, 12학년 때의 성적만으로 합산을 하는데, 해당 연도 졸업 학생 중에서 내 전체 합산 학점이 가장 높았다..)


벅차고 기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감개무량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것일까.


내가 1등이라니..! 그동안 잠 못 들고 열심히 한 모든 고생과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며 따뜻한 기운이 내 온몸을 휘감았다.


5월에 하는 졸업식에 나는 1등 소감 및 스피치 낭독을 하게 되었다.


당장 그 기쁜 소식을 엄마 아빠께 전했지만 많이 어려워지신 형편 때문에 안타깝게도 두 분 다 참석을 못하셨다. 그래서 나는 1등 스피치 낭독하는 사진이나 영상도 남아있지 않다.  


그 대신 지역 신문에 나온 우리 학교 졸업 소식과 내 1등 소식 기사를 오려 엄마께 드렸다. 


엄마 아빠가 못 오셔서 얼마나 속상하실까 하는 생각에 나는 괜스레 마음이 아파왔다. 


졸업하고 가장 친한 친구 아버지 차에 짐을 싣고, 친구집으로 가는 길에 다시는 보지 못할 교정이 필름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이 교정을 내가 다시 올 수 있을까?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며 나는 창가에 기대에 넋을 놓고 산기슭을 내려가는 차 안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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