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에 대하여
어느 중년이 느끼는 두서없는 아름다움
눈에 확 띄는 아름다움보다는 들에 핀 이름 모를 작은 풀꽃에게서, 사계절이 바뀌는 숲의 변화에서, 하루의 일출과 일몰이 주는 장엄함에서,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날아가는 작은 갈매기에게서, 노송이 주는 지개와 포용에서, 햇볕 따스한 창가에 그리운 이가 남긴 퍼즐 한 조각에서, 마치 밀레의 <만종>을 보는 듯 숙연해지는 마음.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은 말로 다하지 못한 엄마의 사랑법!
문득 베란다 창문 너머 보이는 파아란 하늘 위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새하얀 양떼들이 소풍을 간다. 고등학교 때 우리 2층 포도 과수원 원두막 위에서 보았던 아이들 생각이 난다. 그땐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올려다 본 하늘이라면 지금은 어느 정도 조금은 미래가 예상되는 편안한 느낌의 하늘이다.
젊은 시절 <로마의 휴일> 오드리 햅번도 예쁘지만 화장기없는 얼굴에 잔주름마저 고운 미소의 그녀는 깊이있게 아름답다. 유니세프 홍보대사로
아프리카를 오가다 직장암 판정을 받고 3개월간 가족들과 지내며 자신이 좋아했던 샘 레벤슨의 시를 유언처럼 읽어주던 따뜻한 마음과 외모를 두루 겸비한 아름답던 그녀.
도서관 걸어가는 한쪽 길로 철제 벤취 아래 엷푸른 파스텔톤 하늘을 감상하듯 누워 있던 낙엽들이 바람에 살며시 바스락 바스락 대꾸하는 속삭임. 어린시절 다른 친구들 못듣게 두 손으로 한쪽 귀를 꼭꼭 감싸쥔 채 단짝 영희에게만 비밀 얘기 들려주고픈 간지러운 일급비밀 같다. 속닥속닥~
내게만 유독 차갑고 매서우셨던 외할머니, 내가 생일 선물로 청자 담배 한 보루 사드리자 며칠 뒤 말없이 빨간색 예쁜 자전거를 사주셨던 그 마음.
원망과 서러움이라는 백신을 먼저 맞다보니 나를 위한 예방주사였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덕분에 중학교 2년, 고등학교 3년을 비가 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5년지기 내 자전거는 그렇게 나와 찰떡처럼 일요일을 제외한 학교를 매일 오가며 동고동락했었다.
한평생 가난하게 살다가신 아버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아시고는 자신이 가장 아끼시던 한자 옥편을 건네 주셨다. 그땐 '요즘 누가 이런 걸 쓴다고' 속으로 궁시렁거렸다. 시간이 지나고서야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진다. 새삼 옥편 마지막 뒷장에 반듯하게 쓰여진 아버지 함자 석자가 눈에 들어온다. 고향에 온 느낌이다. 본인은 얼마나 애지중지하셨을꼬.
가시적이고 드러내는 말보다 무언의 깊이를 살피게 되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심미안이 생기고 젊을 때의 가벼움과 흥분에서 조금은 멀어질수 있어 지금의 중년이 값지고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