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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네기 Aug 03. 2022

[독후감] 데미안 (1919) - 2

헤르만 헤세 저, 전영애 옮김

 책을 읽고 나면 독후감을 남기고 싶은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이 있다. <데미안>은 이미 수 차례 읽었음에도 전자에 해당하는 책이었다. 다만 그 여운이 워낙 진하게 남은 탓에, 이를 어떻게든 표현해내고 싶었지만 머릿속에 떠다니는 수많은 파편들을 붙잡아서 하나의 글로 구성해내기에 나의 내공이 한없이 모자람을 절감했다.

 고민의 끝에, <데미안>이 나에게 남긴 것을 세 항목으로 나눠서 정리하기로 결정했고, 그 첫 번째인 '기존 가치표의 파괴'가 앞선 글이다. 결국은 하나의 주제로 통하겠지만, 여러 측면에서 같은 말을 반복해야만 이 여운이 만족스럽게 표현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을 완성한 뒤에야 내가 느낀 여운이 비로소 정제된 몇 마디의 문장으로 정리될 것 같다.



1. 기존 가치표의 파괴



2. 자아


 싱클레어의 자아가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유년기에 미성숙한 자아를 지녔던 싱클레어는 주어진 것에 순응했다. 부모님의 세계에서는 안전했고, 프란츠 크로머에게는 저항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어두운 세계'의 존재를 일찌감치 깨달았고, 밝은 세계에 속해있을 때에도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았다. 그는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했으나, 벗어나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이것이 카인의 표적이며, 데미안이 싱클레어를 동류로 여긴 이유일 것이다.

 자아의 편린. 이것을 붙잡아 늘려야 한다. 싱클레어에게 자아는 다른 세계로의 지향이라는 형태로 드러났다. 프란츠 크로머를 만나고, 데미안을 만나고, 피스토리우스를 만나며 그의 자아는 성장했다. 프란츠 크로머와 데미안은 다른 세계를 일깨웠고, 피스토리우스는 그와 같은 길을 간 결과 하나의 형태를 갖게 되어버린 사람이다. 끝 없는 진화를 이뤄내야하는 인간의 입장에서, 어떤 모습으로든 멈추어 굳으면 '구닥다리' 피스토리우스가 되어버린다.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멀어진 암흑기에 피스토리우스를 만나 다시금 의지를 가졌으나, 그와 시간을 보낼수록 구닥다리의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결국 그를 떠난다. 멈춰버린 피스토리우스와는 달리 싱클레어는 아직 진화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에바 부인과의 관계를 거쳐 싱클레어는 비로소 한 명의 독립적인 인간이 되었다. 에바 부인은 뮤즈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모임에서 주도적으로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표적을 지닌 사람들이 그녀를 찾아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종교나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그녀에게 모여들었고, 싱클레어도 그들와 비슷한 부류였다. 그는 처음 에바 부인을 만났을 때 그녀를 하나의 '안식처'로 삼으려는 욕구에 휩싸였으나, '사랑은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끌어오는 것'이라는 에바 부인의 가르침을 따라 욕망을 이겨내려 한다. 에바 부인의 주변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피스토리우스를 떠올리게 하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존재가 되기도 하지만, 싱클레어는 에바 부인의 특별한 보살핌과 배려 덕에 데미안처럼 진화를 향해 끝없이 나아가는 인간이 된다.

 마냥 추상적이기만 했던 이야기의 후반부에서는 갑작스럽게 너무나도 현실적인 사건-전쟁-이 등장한다. 진화의 의지는 병들어있는 유럽을 가장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파괴시킨다. 현실에서의 전쟁은 아주 비극적이지만, 데미안이 보는 전쟁은 필연적인 순리에 해당한다. 전쟁은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파도였다. 소설에서도 전운이 감돌기 시작할 때, 전쟁 속에서 카인의 표적을 지닌 인물들이 어떻게 행동하여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가 궁금했다. 안식처를 마련하여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에게 전쟁은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자신의 안식처를 지키기 위해 싸움에 나서거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피난길에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데미안에게 전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비춰졌다. 그에게 전쟁은 병들어있는 안식처를 쓸어버리고, 불이 태워버린 곳에서는 싹이 잘 자라는 것처럼 인류가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밑거름을 만드는 행위였다. 장교로 입대한 그는 여느 사람과 달리 '지키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파괴하기 위한 싸움'에 나섰을 것이다. 그리고 데미안은 태양을 향해 날아간 이카루스처럼, 인류의 진화라는 끝없는 위업을 향하다 장렬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 모습이 너무나 데미안스럽고, 진화의 의지를 가진 자아를 지닌 한 명의 인간이 달성하는 최후의 모습을 극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3. 인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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