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사직서
점멸하는 신호등을 바라보며 건널목을 성큼성큼 뛰어 건너는 청년, 책을 들어 올려 머리맡에 작은 그늘을 만든 채 찌푸린 얼굴로 정류장에 선 아가씨. 그리고 테이블 위에 올려진 의자를 내려 매장 안을 정리하는 아르바이트생의 모습까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아침 출근길의 풍경이 오늘따라 다르게 보인다.
하지만 어제와 달라진 건, 풍경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
**야, 나 드디어 사직서 냈어.
잘했네...... 언제부터?
이제 한 달 남았네.
그래, 우리 이제 여행도 가자. 그동안 못 갔잖아.
그러자......
언제 갈까?
너 바쁘잖아. 이젠 내가 한가하니까 너한테 맞춰야지. 바쁜 시기 지나면 연락해.
미안해, 월말 지나고 꼭 가자!
그동안, 나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응원해 주었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나의 퇴사 결정을 전했다.
다들 나의 결정을 응원해 주었다......
다만 그녀들이 너무 바쁠 뿐.
내 인생의 반 이상을 보낸 직업에 마침표를 찍자니 기분이 이상한 것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지 않나.
게다가 이렇게 애매한 시기에.
아이들이 좋아서 선택한 직업이고, 나름의 성과를 내면서 보람을 갖기도 했지만.
일개 개인의 능력치가 '가족경영'을 이길 수는 없다.
적어도 이 업종에서는.
......
돌이켜보면 일만 하고 살긴 했다.
12월에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은 미루어두었다가 방학휴가기간에 맞추어 1월에 갔던 일,
아이를 낳고 대체교사가 그만두는 바람에 30일 만에 복직을 했던 일,
4주 정도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병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찢어진 연골을 수술하고는 추석 연휴가 끝나고 복귀를 해서 참여수업 준비를 했던 일,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는 입학준비 때문에 발인을 마치고 바로 출근을 했던 일도 있었지......
참 독했네, 나라는 사람.
그러면서도 30일 이후의 내 삶이 너무 심심할까 봐 조바심이 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피식 웃음이 난다.
그리고 눈물도 찔끔 났다.
이제는 직업을 벗어던진 나 자신과 마주할 시간.
컴컴한 우물생활을 청산하고 미지의 세상에 첫발을 내디딜 순간.
햇볕을 향해 서면, 눈부심에 눈물이 나게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