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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인형 May 15. 2023

막막하고 먹먹하다

미련한 미련


"......"

"여보세요...... 김보영 선생님 휴대폰 아닌가요?"

잘못 걸었나, 혹시?


분명 전화를 받은 것 같은데 상대방의 길어지는 침묵에 조심스레 먼저 말문을 열었다.


"어디시죠?"

본인이 맞다 아니다 답변도 없이 냉랭한 질문에 또 한 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냥하고 예의 바른 모습의 김보영 선생님의 모습이 내 기억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출근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전화로 퇴사의사를 밝혀오기 전까지는. 


공채를 통해 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데다 입학 후 일주일 만에, 후임을 구하기도 전에 담임교사가 그만두는 상황이 나로서도 자주 겪는 일은 아니었기에 아직도 그날의 통화가 내 기억 속에 또렷했다. 

"정말 죄송하지만 내일부터 출근을 할 수 없게 되었어요. 엄마가 너무 아프셔서 제가 간호를 해야 돼요."

어디가 어떻게 편찮으신 건지, 다른 방법은 없는 건지 의논해 보자는 내 말에도 불구하고 자세한 사정은 설명하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퇴사를 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하던 그녀의 상황이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나로서도 퇴사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김보영 선생님이 그만둔 이후 한동안 빈자리를 메꾸느라 전체 교직원이 모두 애를 먹었다. 그녀를 향한 원망의 마음이 슬며시 올라올 때마다 밝게 웃던 김보영 선생님의 얼굴을 떠올렸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본인이 더 힘들었겠지.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급작스럽게 김보영 선생님이 퇴사를 하는 바람에 임용을 하려고 보관해 둔 그녀의 자격증이 서류함에 남아있는 것을 확인했다.


바보. 진작에 보내줄걸. 

재발급받기에 번거로울 텐데.

전화해서 알려주면 좋아하겠지?...... 는 내 기대였을 뿐.


"어디시냐고요."

재차 묻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인사도 잊은 채 말을 이어갔다.

"아...... 여기 전에 근무하셨던 **인데요......"

"**요? 거기가 어디...... 무슨 일이세요?"

김보영 선생님은 ** 자체를 처음 들어보는 사람처럼 물었다.

"선생님 자격증 원본이 여기 있어서 알려드리려고요. 혹시 필요하시면......"

"버려주세요."

"네?"

김보영 선생님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버려달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아...... 버려요?"

"네. 제가 지금 다른 일 하고 있어서요. 필요 없어요."

"그러시군요, 선생님. 실례지만 무슨 일 하고 계세요?"

"패션 쪽 일 해요. 하하......"

통화 말미에서야 그녀는 나라는 것을 알아챘는지 멋쩍은 웃음소리를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패션 쪽 일을 하고 있었구나...... 다행히 어머님 병은 다 나으셨나 보다.

김보영 선생님의 자격증을 손에 쥔 채 수화기를 내려놓는 나를 지켜보던 강 선생 님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맞죠? 그 선생님, 김보영이라는."

"뭐가요."

"왜, 제가 전에 한번 말씀드렸었는데, sns에 쇼핑몰 홍보글 올린다고. 아마 그거 하려고 갑자기 퇴사한 거 맞을 걸요?"

"에이, 설마 그랬겠어요? 그렇게 책임감 없이?"

"전에 그만둔 양 선생님 있잖아요. 그 선생님 지금 카페 창업하려고 준비 중이래요. 대단하죠? 저는 그만두면 뭘 할지 막막할 것 같은데."

"뭘 하긴...... 하던 것 계속하면 되지."

"음음...... 이 직업은 제가 보기엔 미래가 없어요."

강 선생님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거, 제가 버릴게요."

그리고는 내 손에 쥐고 있던 김보영 선생님의 자격증을 받아 파쇄기에 넣었다.


스르르르르륵륵륵......


파쇄기는 김보영 선생님의 자격증을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이렇게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을 나는 사분의 일 세기가 지나도록 붙들고 있었구나.

힘들다고, 충전이 필요하다고, 스트레스가 심해서 못하겠다고.


떠나는 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 한편이 먹먹하다.

조금 더 노력해 보지 않겠냐고, 그러면 좋은 결과와 보상이 있을 거라고 자신 있게 붙잡아주지 못하는 현실.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자격증을 버릴 것 까지야 없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며

힘들어도 붙들고 있는 내가 미련하고

그럼에도 이 직업에 계속 미련을 갖고 있는 내가 미련하게 느껴지고

버리고 떠나는 이들의 용기가 부러운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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