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못하지만, 영어 원서는 읽고 싶어

by 조카사랑

한때 나는 내가 천재일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학생 때 검사한 IQ도 꽤 높았고, 나름 공부를 잘하는 축에 들었다. 학생 때 열심히 공부를 하면 머릿속에서 사진 슬라이드가 넘어가듯 교과서의 페이지가 넘어갔다. 고려시대 정치부분에 대한 공부를 하면 고려시대 정치가 나오는 교과서 페이지가 사진처럼 머릿속에서 튀어나왔고, 마치 손으로 교과서를 넘기듯 머릿속에서 교과서의 페이지가 넘어갔다. 언젠가 봤던 ‘영재들의 공부법’에 관한 영상에서 영재들은 배운 것들을 이미지화 한다는 것을 본 뒤로 ‘혹시 나도?’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교육학과 심리학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이건 그냥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재를 너무 많이 보니 반복된 학습 끝에 자연스럽게 외워졌을 뿐이었다. 여러 번 교재를 봤으니 머릿속에 각인되었겠지. 이러한 '슬라이드 효과'(이 현상을 부르는 나만의 단어다)는 나의 한계를 알게 되고, 나의 노력 정도를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웬만큼 노력하지 않으면 성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어떠한 성과를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해야 되는지 나름 판단이 서기 때문에 처음부터 겁을 먹고 시도를 안하기도 했다. 이 정도만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여전히 머릿속이 안개 낀 것처럼 뿌옇게 느껴질 때, 도대체 얼마나 더 해야 될까 지치기도 했다.


특히 나를 가장 심하게 좌절시킨 것은 영어였다. ‘이 죽일 놈의 영어’는 매년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장벽을 넘을 수가 없었다. 어떤 때는 토플교재로 하고, 어떤 때는 영어원서를 읽고, 어떤 때는 영화나 애니로 이번만은 제대로 해보자고 결심하지만 한달정도 하고 나면 지쳐서 나가떨어졌다. 그래서 영어를 포기하고 타외국어(스페인어, 일본어, 독일어 등)로 갈아타기도 했지만, 결국 영어는 기본이라는 생각에 다시 돌아오곤 했다.


지날 주말 책장을 정리하면서 영어 공부에 관한 책들을 추려냈다. 어차피 안되는 거 이제 그만 정리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영어는 못 하지만 영어 원서는 읽고 싶어(부경진, 미래문화사, 2019)》, 《영포자 문과장은 어떻게 영어 달인이 됐을까(문성현, 넥서스BOOKS, 2019)》, 《쉬운 단어로 1분 영어 말하기(에스텔(권소진), 넥서서S, 2020)》 등 영어회화책과 영어문법책을 전에도 제법 정리했는데도 아직도 많이 남아있었다.

한번씩 읽었던 책이지만 갑자기 내용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이 책의 작가들은 어떻게 공부했길래 영어를 잘 할까? 왜 나는 아직도 ‘영어 잘하기’를 실현하지 못한 채, 꿈으로만 간직하고 있을까? 속는셈치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책을 읽었다.


‘이미지 연상’!


책에서 얘기하는 영어를 잘하는 방법이었다. 이미지 연상? 내가 공부하던 방식인데? 그랬다. 영어도 다른 공부와 마찬가지로 반복 학습을 통해 이미지가 연상 될 때까지 공부를 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했지? 챕터북 위주로 그냥 읽기만 했다. 아니면 중고등학생 때 공부하던 식으로 영어시험교재(예를 들면 토플 교재)를 가지고 문제풀이식으로 공부를 했었다.


그러면서 내가 시험 공부말고 가장 열심히 영어공부를 했던 것이 어떤 방식인지 기억해봤다. 영어원서 읽기였구나. 작년에 영어 원서를 많이 읽기는 했지. 《Oxford Book worms Library 시리즈》에 푹 빠져서 지냈으니까. 올 초까지는 열심히 읽었지만, 업무가 바뀌면서 또 손을 놓았었는데 속는 셈 치고 해보자.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해볼자. 또다시 실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두려움에 멈춘다면, 나는 결국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외국 리조트에서 영어 원서를 읽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언젠가 꼭 이루고 말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다시 영어 원서 읽기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