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능 1세대다. 가끔은 내가 학력고사를 봤다면 더 좋은 대학에 갔을까 상상해보곤 한다. 개인적으로 바뀐 대입입시제도의 피해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서 크게 후회하지는 않는다. 뭐, 후회를 잘 하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입시제도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공부 방식이 크게 바뀌었던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교과서 중심의 암기 위주였다. 특히 영어는 단어와 문법을 외우고, 문제풀이 교재로 공부했다. 그런 공부 방식은 토익과 토플을 공부할 때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도 변함이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영어는 꼭 배워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짐은 했지만, 막상 실천은 늘 어려웠다. 몇 번이나 영어를 배우려고 시도는 했지만, 항상 어휘가 걸리고 문법이 걸렸다. 미드도, 영화도, 영어원서도 모두 시도해 봤지만 매번 시작만 거창했을 뿐 실천은 오래 가지 못했다. 영어 원서를 추천해 달라는 댓글에 '해리포터'를 추천한 답글을 보고 시작도 못하고 겁먹어 포기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공부하면서 막힐 때 물어볼 사람 하나 없어, 음식 먹다 체한 것처럼 속이 꽉 막힌 듯한 답답함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다'라는 마음으로 다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먼저 판타지와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내 성향에 맞는 쉬운 영어 원서를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내가 찾은 원서는 <Oxford Bookworms 시리즈>, <Magic tree house 시리즈>, <Dragon Masters 시리즈> 였다. 처음에는 모르는 내용만 이해가 되면 그냥 넘어가고 우선 끝까지 읽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그렇게 한 권, 두 권 읽다 보니 책은 쌓여가도 읽기만 해서 영어 실력이 늘까? 의문이 들었다.
안되겠다. 한권을 읽어도 제대로 읽어보자!
방법을 바꿨다. 내가 이러한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챗GPT였다. 영어원서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단어는 아는데 해석이 안되는, 구동사 부분이었다. 그렇다고 단어 외우듯 구동사를 외울 수도 없었고, 문장 내에서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되다 보니 늘 벽이 있었다. 파파고에 번역을 해봐도 정확한 해석이 안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챗GPT는 달랐다.
챗GPT에 영어 문장을 입력하고 문장구조분석, 정확한 해석을 해달라고 했다. 분사나 절같은 문장 속 문법 요소도 함께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챗GPT 맞춤 설정'에서 ‘응답 후 3가지 추가 질문을 자동으로 생성’하도록 설정해 두었다. 챗GPT 특강에 참석했을 때 강사분이 추천하신 이 기능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나의 사고를 확장시켜 주었다.
이 설정은 특히 내가 놓친 핵심을 질문 형태로 되짚어 주어 중요 포인트나 맥락을 다시 인식하게 해준다. 또한 그 질문들에 따라가면 어떤 답이 나올까 궁금하기도 해서 더 적극적으로 지식을 탐색하거나 나의 생각을 점검하게 된다. 챗GPT 설명의 마지막에 나오는 세가지 질문(Q1, Q2, Q3)은 내가 놓쳤던 부분에 대한 질문도 있었고, 어떤 부분을 더 알아야 하는지도 알 수 있게 해줬다.
마치 '소크라테스 질문법'으로 공부하는 것 같았다. 질문에 질문을 타고 나의 궁금함이 해소될까지 계속 질문을 했다. 물론 챗GPT도 해석이 어색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크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예를 들어, 《Dragon Masters #1》에서 한 문장을 가지고 와보자.
Griffith gave her a hard look.(출처: 《Dragon Masters #1》(p.33)
이 문장을 챗GPT에 문장구조분석과 정확한 해석을 요청했다. 그러자 마지막에 아래와 같은 질문 3개가 제시되었다.
나는 'Q2 "a hard look" 같은 표현에서 "hard"의 의미가 어떻게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지 구체적인 예문으로 살펴볼 수 있을까?'가 더 알아보고 싶었다.
챗GPT는 아래와 같은 예문을 제시해 주었고 처음과 마찬가지로 Q1, Q2, Q3의 질문을 제시해 주었다.
이 질문들 중 다시 Q1 '"hard"처럼 여러 의미를 지닌 형용사를 효율적으로 학습하고 기억에 남기는 방법은 무엇일까?'을 검색해 봤다.
이렇게 검색하다보면 마치 내가 바다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이었다. 입력만 하면 너울대는 물결처럼 답이 흘러나왔다. 그 답이 맞는지 틀린지는 별개로 하고서 말이다. 때문에 나는 질문에 질문을 거쳐 내가 궁금한 것을 모두 물어 볼 수 있었고, 지식을 갈구하는 나의 갈증을 챗GPT는 많은 부분 해소해 주었다.
하지만 챗GPT를 활용할 때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챗GPT는 유튜브 쇼츠 영상과 같았다. INPUT(입력) 안해도 OUTPUT(출력)이 나왔다. 유튜브 쇼츠 영상이 가만히 있어도 자동 재생되는 것처럼 Q1, Q2, Q3 중 아무거나 복사해서 붙여넣기만 하면 결과는 쏟아졌다. 이렇게 질문을 하다보면 어느새 시간은 훌쩍 지나가고, 처음 내가 무엇을 물어봤는지 기억이 안 나기도 했다.
따라서 챗GPT를 사용할 때는 한번에 모든 것을 배울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꼭 필요한 것만 검색해야 한다. 또한 챗GPT 무료 버전은 하루 검색할 수 있는 개수가 제한되어 있으므로 검색 횟수도 고려해야 한다. 자칫 횟수 제한에 걸려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쳐버릴 수도 있다.
지금까지 챗GPT를 활용한 영어 원서 읽는 방법을 말했다. 솔직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방법을 못해서 뭔가를 못하는 경우는 없다. 단지 시간이 없어서, 남의 눈이 신경쓰여서, 비용이 많이 들어서 등 더 그럴 듯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법만 알면 성공할까? 그렇다면 나도 이 시리즈의 제목을 [30일만에 영어원서 읽기]나 [이대로만 하면 누구나 영어원서 읽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바꿔야 하겠지만, 그건 현실과는 또 다른 이야기다. 결국 영어 원서 읽기는 태도의 문제다. 방법을 알아도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어떤 방법이든 하나를 붙잡고 지칠때까지 한번 해보는 것, 그것이 영어 원서를 읽을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50대가 영어원서 공부하기에 좋을 지도 모른다.
예전엔 '영어 원서 읽기'가 숙제 같았다면 지금은 놀이 같다. 챗GPT 덕분에 영어 원서를 읽는 시간이 즐겁다. 비록 공부량이 많지 않고 진도도 천천히 나가지만, 한페이지만 읽어도 뿌듯한 기분이다. 이렇게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 순간 일취월장한 영어 실력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나 혼자 비행기를 해외로 나가, 처음 보는 거리에서 영어로 길을 묻는 나를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