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도 내가 허언증 환자 같아?"
세상 제일 사랑하는 큰 조카의 말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솔직히 조카를 허언증 환자로 생각했던적이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우리 집안에서 조카는 특별했기 때문이었다.
스페인어를 전공한 조카는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한국어 등 4개 국어가 동시 통역이 가능할 정도로 최상급 수준이다. 외국에 나가본 적도 없는 조카가 어떻게 그렇게 여러 개의 외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었을까? 모든 것이 평범한 나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들 모두 큰 조카의 재능을 긴가민가하며 의심했었다.
하지만 그 뒤로 조카와 친구처럼 딸처럼 지내면서 내가 조카를 허언증 환자라 생각했던 것이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조카는 정말 신세계에 살고 있었다. 조카의 세상은 이제껏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였다. 이는 세대차이와는 달랐다. 그러면서 어떻게 평범한 우리 집안에 조카같은 언어 천재가 만들어졌을까 궁금했다. 그랬다. 나는 조카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우리 가족의 어떤 생활 환경이 조카를 다중언어자로 만들었음이 분명했다. 이러한 믿음은 둘째조카마저 다중언어자가 되면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참고로 둘째 조카는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현재는 일본에서 직장 생활 중이다.
우리와 너무나 다른 조카를 보며 나는 우리 가족의 어떤 점이 조카들을 다중언어자로 만들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 궁금증은 자연스레 뇌과학과 우리의 생활 습관에 대한 관심으로 향했다.하지만 뇌과학에 관련된 책을 읽고 유튜브에서 다중언어자에 대한 영상을 아무리 봐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조카들이 클 때 의도적으로 뭔가를 한 가르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어비디오? 그래, 영어비디오는 좀 봤다. '톡톡'이라는 눈높이에서 나오는 영어비디오를 좋아했으니까. 큰 조카는 영어라도 좋아했다고 하지만 작은 조카는? 어느 한쪽이 설명되면 다른 한쪽은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원인을 찾는 것은 포기했다. 대신 다중언어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는가로 목표를 바꿨다.
다중언어자인 조카들을 보면서 언어가 사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언어를 아는 것은 그 언어가 가지는 문화를 습득하는 것이었다. 큰 조카는 영어를 할 때 영국인 같았고, 중국어를 할 땐 중국인, 스페인어를 할 때 스페인 사람 같았다. 딱 '이것 때문에 그렇다'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미묘하게 차이나는 분위기가 있었다.
다양한 문화를 제약없이 접하는 조카들이 너무 부러웠다. 조카와의 대화는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와 마주한 듯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지식과 열린 태도에 매번 놀라곤 했다. 우리나라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도 영국인의 입장, 스페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되었다. 넓디 넓어 모든 것을 포용하는 느낌! 이는 단순히 아는 지식이 많은 것과는 달랐다. 다양한 가치관이었다. 한 주제에 대해 다양한 문화권의 의견 접할 수 있다보니 지식의 폭이 세배, 네배 넓어졌다. 알고 있는 지식이 서로 시너지 효과가 생겨 하나를 볼 때 다양한 관점으로 볼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편견이 적고, 그래서 종종 '특이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지만, 세상과 마주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런 자유로움이 항상 조카를 감싸고 있었다.
한번은 내가 조카에게 물어본적이 있다.
"진짜,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스페인어를 하면 전두엽에서 번쩍하고, 영어를 하면 왼쪽 측두엽에서 번쩍하고, 중국어를 하면 후두엽에서 반짝거리거나 그래?"
"아니, 진짜 고모 또라이다. 도대체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해? 그냥 한국어 생각하는 것과 똑같아."
정말로 나는 궁금했다. 다양한 외국어를 할 때 머릿속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말이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자동차를 보면 어떤 언어가 가장 먼저 떠올라?"
"그건 그때 어느 언어를 가장 많이 쓰냐에 따라 달라. 중국어 공부를 많이 하면 중국어, 스페인어 공부를 많이 하면 스페인어가 먼저 떠올라'"
내가 영어 원서를 읽는 목적은 꼭 책을 읽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하나의 언어를 하면 하나의 세상이 온다'고 하니 더 넓은 세상을 만나고 싶다. 내가 모르는. 내가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영어라는 언어가 알려 줄 수도 있었다. 그러면 세상은 또 얼마나 다채롭고 흥미로울까?
인터넷에 검색하거나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면 '영어 원서를 읽으면 좋은 점'이 끝도 없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영어 원서를 읽으면 좋은 점'은 '새로운 세상이 내게 온다'였다. 이제껏 내가 경험하지 못한 멋진 세상이 내게 오는 것이다.
영어 원서를 읽는다는 것은 책 한 권을 넘기는 일이 아니라, 또 하나의 세계를 여는 일이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 낯선 문화가, 다른 가치관이 내게 스며드는 일이다. 여러분도 지금, 그 문을 열어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