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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호 Mar 14. 2024

치매 5등급 노인유치원 가시고 학부모가 되었다.

이제 000 어르신 보호자님이라 불린다.

어머님이 우리 집에 오신 지 한 달 나의 루틴에 변화가 생겼다.

아침을 간단하게 먹는 우리 식구와 달리 매끼를 밥과 반찬 국을 드셔야 하는 어머님의 식성에 맞추어 두 가지 아침을 차린다.

아이들은 간단한 과일이나 빵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어머님은 밥을 차려드린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반찬을 찾아서 만들기 시작했다.

냉장고에서 반찬 세 가지 정도를 꺼내고 계란 프라이와 국, 밥이 간단하게 차려진 아침상을 이제 별스럽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다.

매일 밥을 드시니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며느리는 매번 반찬을 다르게 하는 게 힘들지만 그것도 드시는 것과 드시지 않는 것을 구별하니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처음 일주일은 안 하던 일을 하려니 아침 시간이 분주하고 바빴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잡혀 있어 일어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몸은 힘들어했다.


일주일 지난 후 주간 보호센터를 알아보기로 했다.

하루종일 혼자 집에 계시니 무료해하시길래 색칠공부를 드렸더니 하루 종일 쉬지 않고 하신다.

미스트롯을 좋아해서 종일 tv에서 트로트 음악이 흘러나온다.

일하시던 분이라 뭔가를 하지 않으면 병이 날 것도 같고 조용한 집 거실에서 트로트가 종일 나오니 아이들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어머님이 집에 계시니 점심 챙겨 드리는 게 쉽지 않다. 일이 있어 나갔다가 점심 때문에 급하게 집으로 들어오곤 했다.

주변에서는 혼자 '점심 차려드시라고 해봐'라고 쉽게 말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집에 냉장고 문 열기도 꺼려하시는 데 점심은 어떻게 차려 드실 수 있을까 싶으니 내 마음이 더 불안하다.


주간 보호 센터에 가려면 장기 요양 등급신청을 해야 한다.

어머님이 혼자 사신지 한 달쯤 되었을 때 혼자도 잘할 수 있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얼굴에 생기가 돌고 목소리도 힘이 있어지셨지만 혼자 계시는 동안 자주 들어다 보지 못하니 이참에 노인 장기요양 등급 신청을 해야겠다고 고모가 늘 말씀하셨다.

장기 요양 등급 신청을 하면 집으로 요양보호사가 매일 찾아와 식사와 청소로 어머님이 힘든 부분을 보살펴주신다.

혼자 계신 어머님께 딱 맞는 서비스이다.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조카가 먼저 건강 보험관리 공단에 장기 요양 등급 신청서를 접수해 주었다.

접수 후 며칠 있으니 건강보험공단에서 전화가 와서 가정방문 날짜를 잡았다.

그때는 보호자가 집에 같이 있어 주어야 한다고 했다.


약속한 날 일찍 어머님 집으로 넘어갔다.

건강보험공단의 직원은 어머님 집안으로 들어와 여러 가지 질문과 테스트를 했다.

오늘이 며칠인지? 지금이 무슨 계절인지? 앉았다 일어날 때 불편하지는 않은 지?

혼자 생활할 수 있는지 없는 지를 보는 것 같았다.

직원은 나에게 질문을 했다. 평소에 행동은 어땠는지 물어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길을 잃어 집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고 밤에 자다가 창문에 사람이 서있다고 하고 헛것이 몇 번 보였다고 했다.

그래서 치매 안심센터에서 치매 검사도 했다.


건강보험공단 직원을 잘 참고 하겠다고 말했다. 다른 건 다 준비되어 있는 데 의사 소견서가 오늘 5시 안에 들어와야 한다고 했다.

갑자 대학병원에 예약도 없이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했다. 소견서를 늦게 내면 심사가 뒤로 밀리게 된다는 것이다.

건강보험 공단 직원이 가고 어머님과 점심을 먹으며 전화로 예약을 5시에 잡고 대학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많이 기다리지 않고 소견서를 받아서 5시가 되기 전에 보낼 수 있었다.

며칠의 기다림에 어머님은 치매 5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등급을 받으면 장기요양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어머님은 코딱지만 한 집에 치울 것도 없고 혼자 할 수 있다면서 요양보호사 방문을 거절하셨다.


혼자 계실 때는 장기 요양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지만 우리 집에 오니 요양보호사를 부를 이유도 없고 주간 보호센터를 이용하는 게 좋을 듯했다.

주간 보호센터가 요양원이라고 생각하시고는 나는 그런 곳에 안 간다고 계속 말씀을 하신다.

예전에 아버님 동생분이 하시던데 가봤다면서 별로 안 좋았던 기억이 있으신지 노인네 있는 데 안 간다고 고집을 부리신다.


"어머님 다니시라는 게 아니고 그냥 한번 구경삼아 가봐요 별로면 안 가셔도 돼요."

"그럼 구경만 한다."

"네 구경만 해요."


시설 좋은 곳으로 알아보고 첫 번째 전화를 하니 대기 인원이 많아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주간 보호센터에 대기를 유치원 어린이집 대기는 들어봤는 데 일단 대기 명단 9번으로 올려 두었다.

두 번째 전화하니 다행히 자리가 남아 있어 견학을 하기로 했다.


오후쯤 방문한 센터는 넓은 규모에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곧 외부 강사님이 와서 장구치고 노래 부르는 시간이라고 보고 가는  게 어떠냐고 했다.

어머님도 보고 가자고 해서 잠시 기다려 관람을 했다. 강사님은 어르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면 춤도 추고 함께 할 수 있는 쉬운 율동도 하며 어머님께 다가와 처음 보시는 분이라며 아는 척을 해주었다.

싫지 않으신지 어머님도 동작을 같이 하셨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머님 어땠어요? 다닐만하시겠어요?"

"아휴 혼을 속 빼놓네 그럼 한번 다녀 볼까"


주간 보호센터에 한번 견학 가시고는 마음에 드셨는지 다녀보기로 했다.


코로나 검사를 하고 결과를 보고 드디어 주간 보호센터에 가셨다. 그곳에서는 쉽게 노인 유치원이라고 말했다.

노인유치원에  보내니 어머님은 학생 나는 학부모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 며칠은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갔다고 하셨다.

이 주일쯤 지나가니 이제 잘 적응하신다.

제법 친구도 사귀시고 갔다 오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예전에는 어머님의 과거 이야기를 주로 하셨다면 이젠 노인유치원이야기를 주로 하신다.

싫증 나서 안 가다고 할까 걱정이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주간 보호센터에 다니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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