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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희 Sep 04. 2022

우린 신이 아니야

 딸아이와 동화책을 읽었다. 동물들이 주인공인 책이었다. 책 겉표지에 사마귀 한 마리가 있었다.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사마귀. 겉표지의 그림이 흥미로워서 얼른 책을 펼쳤다.


 사마귀가 하늘을 보며 기도하고 있었다. 사마귀는 너무나도 별에 가보고 싶었다. 뛰어도 날아도 별에 닿을 수 없었던 사마귀는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길고 긴 사다리를 만들었다. 숲 속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사다리를 세워 보았지만 별에 닿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숲 속 동물들은 사마귀가 결국 그만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마귀는 포기하지 않고 더 간절히 기도했다. 하늘도 감동했는지 어느 밤 큰 별이 숲에 떨어졌다. 사마귀는 별에 올라갈 수는 없었지만 아주 가까이에서 별을 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동화책을 함께 읽던 딸아이는 사마귀에게 감동한 것 같았다. 숲 속 친구들로 등장한 제법 근사한 동물들이 많았지만 아이의 마음엔 이 작은 곤충이 제일 빛나 보였으리라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었다. 사마귀에 대한 ‘곤충계의 포식자’ 같은 무서운 이미지는 동화 속에 없었다. 간절히 꿈을 꾸고 좇았으며 이뤄진 꿈에 감동하는 작은 생명체가 있었을 뿐이다.


 나와 사마귀의 첫 만남이 동화 속이었다면 어땠을까. 


 예닐곱 살 즈음이었다. 방문을 나서는데 마루 끝에 뭔가 작은 것이 서 있었다. 자세히 보려고 몸을 기울이는 순간 작은 물체가 내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절도 있는 동작에 놀라 내 몸이 얼어붙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어서 명확히 보이진 않았지만 작은 곤충 같았다. 나는 분명히 그 곤충과 내 눈이 마주쳤다고 느꼈다. 그 곤충의 눈 속으로 내가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얼마 후 나는 그 곤충이 사마귀라는 것을 알았다. 우연히 본 책에서 곤충의 무법자, 포식자로 소개되어 있는 사마귀를 보았다. 나를 노려보던 사마귀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아서 무서웠다. 나는 사마귀 기피자가 되어버렸다.


 서너 해가 지난 어느 날, 대문 앞에 서 있는 사마귀와 다시 마주쳤다. 맞서 물리칠 힘은 고사하고 용기도 없어서 나는 그저 그 녀석이 길을 비켜주기를 기다렸다. 제나라의 장공은 자신의 수레 앞을 막아선 이 겁 없는 곤충의 기백을 높이 사 수레를 옆으로 비켜 지나갔다 하니 사마귀의 자존심을 지켜주려 한 배려였는지 모르겠다. 장공의 배려는 자신이 상대보다 우월하다는 자신감에서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도무지 그 직립 곤충에 대해 우월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배려는커녕 비켜주기를 공손하게 기다린 것이다. 


 사마귀와의 원치 않은 대면은 몇 번 더 있었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 자신의 존재를 재확인시키는 것 같았다. 매번 나는 그 녀석과의 기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꽁무니를 빼기 일쑤였다. 나를 쫓아오는 건 아닐까 뒤돌아보면 그 녀석은 아무 일 없는 듯 고고하게 앞만 보고 있는 것이었다. 녀석의 고개를 내 쪽으로 휙 꺾을 까 겁이 나서 나는 또 서둘러 자리를 피하곤 했다. 


 딸아이에게 ‘엄마는 어릴 때 사마귀를 무서워했다.’고 말하자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나를 바라보는 사마귀의 눈이 무서웠다는 말에 아이는 사마귀의 큰 눈이 똑똑해 보인다고 했다. 똑똑하니까 꿈을 포기하지 않고 이룬 것이라고. 사마귀가 고개를 휙 돌리는 것도 무서웠다고 하자 아이는 자신의 고개를 돌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사마귀는 나처럼 고개를 천천히 돌릴 수 없나 봐. 불쌍해.”


 나는 사마귀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본 적이 없다. 단 몇 초 동안의 첫인상으로 사마귀의 성향을 단정해 버렸다. 가히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은 신의 경지에 다다른 나의 판단으로 사마귀는 ‘무서운 놈’이 되어버린 것이다. 


  첫 만남에서 자신에 대한 선입견을 갖게 된 나에게 사마귀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날 대문 앞에서 오해를 풀고자 오랜 시간 나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너는 신이 아니야. 단번에 나를 다 알 수는 없어. 한 번 더 나를 자세히 보란 말이야.” 

 

 그런 사마귀에게 자존심이네 우월감이네 이런 타령이나 하고 있었으니 사마귀는 얼마나 속이 탔을까. 어쩌면 마주친 눈빛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두려움은 사마귀도 느꼈을지 모른다. 자세히 보려고 다가서는 내 몸짓에 기겁을 했을 수도 있다. 아주 무서운 아이라고 공포에 떨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사마귀는 그 아이를 다시 찾아왔다. 

 

 “우린 신이 아니야. 서로에 대해 다시 알아볼 필요가 있어.” 

 

 그 말을 하고 싶어 사마귀는 그렇게 간절히 손을 모았을지도 모른다.

 그래 너도 나도 신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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