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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희 Sep 07. 2022

그놈 목소리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뚝. 띠띠띠.

 

 또 장난 전화였다. 며칠 동안 계속되는 전화에 나는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당시엔 온 가족이 집에 있는 유선전화 하나로 통화하던 시절인 데다가 나는 고등학교 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걸려오는 전화를 모른 체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나는 매번 그 전화를 받았다.

 

 아이들 사이에 장난 전화가 유행이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아무 번호나 눌러서 상대방이 전화를 받으면 말없이 뚝 끊어버리는 것이다. 친구 집에 갔다가 재미있으니 해보라며 친구가 번호를 눌러주는 바람에 나도 장난 전화에 동참한 적이 있었다. 통화 연결음이 울리는 내내 가슴이 얼마나 뛰던지,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마자 놀라서 끊어버렸다. 친구는 “저쪽에서 말을 하면 그때 끊어야지.”라며 내게 장난 전화의 맛을 모른다고 놀렸지만, 나는 그 맛을 즐길 만큼 배포 큰 아이가 아니었다.


 우리 집에 며칠 동안 전화를 거는 이가 한 사람인지 아니면 여러 사람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 길이 없었다. 다만 비슷한 시간대에 전화가 걸려오니 같은 사람의 짓이 아닐까 추측했다. 만약 한 사람이 거는 전화라면 모르는 번호를 마구잡이로 누른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집에 혼자 있을 때 전화가 걸려오는 것으로 보아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생각해 보니 전화가 끊기기 전 잠시 동안 남자의 숨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나는 점점 무서워졌다. 

 

 ‘그놈’을 피하기 위해 전화를 받지 않는 일이 잦아졌다. 피해를 보는 애먼 사람만 늘어갔다. 장을 본 짐이 무겁다며 나눠 들자고 전화한 엄마도, 학교 숙제를 물어보려고 전화한 친구도, 내가 왜 전화를 받지 않는지 이유를 몰랐다. 나는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 집에 사는 것 같았다. 누군가의 관찰 대상이 된 것만 같아서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급기야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움찔 놀라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날도 나는 집에 혼자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 전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전화하신다던 엄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

 역시 말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쪽에서 전화를 바로 끊지 않았다. 나는 그게 더 무서웠다. 짐짓 센 척하려고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자꾸 장난 전화하면 신고할 거예요.”

 “저기, 엄마 계시니?”

 의외의 목소리에 내 몸의 긴장이 탁 풀렸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앳되면서도 상냥한 목소리였다. 어린 목소리가 마음에 걸렸지만, 엄마의 지인이려니 생각한 나는 예의를 갖춰서 말했다.

 “엄마는 지금 외출하셨어요. 누구라고 전해 드릴까요?”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음, 음, 음. 소리를 가다듬더니 점잔을 빼며 말했다.

  “그래? 엄마 들어오시면…. 옆집 꼬마한테서 장난 전화 왔었다고 전해드려.”

 뚝. 띠띠띠.

 

 그놈이었다. 드디어 그놈 목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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