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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희 Sep 25. 2022

봄과 화해하다

 집안에 피아노 한 대를 들였다. 햇볕 잘 드는 거실 한쪽 벽면에 자리를 잡았다. 건반 위에서 한참을 헤매던 내 손가락이 제법 음을 찾아냈다. ‘고향의 봄’ 그 속에서 놀던 때가 먹먹하게 떠올랐다.

 

 내가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 아니라 봄이면 농사 준비로 바빴던 시골 마을이었다. 봄이 오기까지 농촌의 겨울은 한가로웠다. 옆집 아주머니도 뒷집 할아버지도 느긋하게 마실을 다녔다. 대문을 나서면 집 앞 공터에서 자치기를 하는 아이들과 토끼 잡으러 뒷동산에 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찬 공기를 갈랐다. 나는 농촌의 겨울이 좋았다.


 해마다 봄 햇살은 속없이 찾아왔다. 그리곤 남은 안중에도 없이 제 고집대로 계절을 바꾸고 싶어 했다. 겨울을 그만 끝내도 되겠냐고 나에게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제 딴에는 꽁꽁 언 대지에 생명을 불어넣어 준다고 자부했을지도 모른다. 땅 속에서 잠이나 자고 있을 동물들을 깨울 수 있는 것은 자신 뿐이라고 큰소리쳤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봄 햇살이 몰아낸 겨울은 엄마의 달콤한 휴식기였다. 나는 엄마의 겨울이 길기를 바랐다. 얼굴에 크림을 바르고 입술에 연지를 찍는 엄마를 오랫동안 보고 싶었다. 엄마가 농부가 아니라 여자로 사는 것이 좋았다.

 

 엄마는 건강한 체질이 아니었다. 너무 말라 보여 부끄럽다며 외출하실 때면 스타킹을 세 개나 덧신으시고 어깨가 봉긋 솟아 보이는 옷을 입으셨다. 외출 후 집에 오면 한두 시간은 누워 계셔야 했다. 체력이 안 따라주니 회복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엄마가 좀 편히 사시길 바랐다.

 

 나의 바람 따위는 무시한 채 해마다 논밭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엄마의 쉬는 시간에 끝 종이 울렸다. 봄 햇살이 한 짓이었다. 모범생이었던 엄마는 더 쉬고 싶다고 보채는 법이 없었다. 잰걸음으로 들락날락하는 엄마를 보는 어린 마음은 날이 갈수록 고단해졌다. 

 

 모범생으로 치자면 아버지를 제칠 사람은 드물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봄 햇살과 제법 합이 맞으신 것 같았다. 아버지는 쉬는 시간이 무료하셨는지 시작종이 울리기도 전에 수업 준비를 하셨다. 준비성과 태도 면에서 아버지는 우등생이셨다. 나는 우등생과 한 조가 된 엄마가 덩달아 우등생이 되어야 하는 부당함이 싫었다. “나까지 꼭 잘할 필요는 없다.”라고 야무지게 말하지 않는 엄마가 답답했다.

 

 대부분의 우등생들이 그렇듯 아버지도 계획과 실행을 중요하게 여기셨다. 생각한 것과 다르게 일이 틀어지는 것을 아주 싫어하셨다.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가 농약을 뿌리려고 준비하고 계셨다. 경운기에 농약통과 호스를 싣고 나갈 채비를 끝냈는데, 내내 맑던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비가 쏟아졌다. 갑자기 쏴아 쏴아 쏟아지는 비에 신이 나서 나는 마당을 뛰어다니고 싶었는데  아버지는 하늘을 보며 얼굴이 벌게지도록 화를 내셨다. 아버지가 대꾸도 없는 하늘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빗소리 때문에 듣지는 못했다. 다만 하늘을 노려보며 서 계신 아버지의 고집스러운 뒷모습이 봄 햇살과 닮았다고 느꼈다.


 고향 집을 떠나 온 지 여러 해가 지난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평소와는 사뭇 다른 엄마의 목소리. 엄마가 계신 병원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창밖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눈이 마주쳤다. 이 인정이라고는 없는 봄. 엄마에게 닥친 불행이 꼭 봄 때문인 것 같아서 화가 났다. 이렇게 서러운 내 눈에 그렇게 시리도록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야 할 것인가. 측은지심이 뭔지도 모르는 무지한 계절 같으니….


 항암 치료의 횟수가 늘면서 엄마의 얼굴이 점점 거뭇해졌다. 마치 봄볕에 그을린 엄마의 얼굴 같았다. 겨울 휴식 기간 동안 회복된 엄마의 밝은 낯빛이 봄햇살에 그을려 가는 걸 보면서 나는 얼마나 속상했던가. 모자를 쓰고 수건을 둘러도 기어코 뚫고 들어가서 엄마의 얼굴에 자신의 존재를 새겨놓은 봄볕을 나는 얼마나 미워했던가.

 

 엄마의 투병은 계절이 두 번 바뀔 때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언제나 엄마의 휴식이 시작되었던 늦가을이었다. 억새 한 줌을 병원 침대 맡에 꽂았다.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억새를 엄마랑 함께 보고 싶었다. 엄마가 소녀처럼 웃었다.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가을이 좋지?” 

 “봄이 좋지.”

 “….”

 

 엄마의 대답이 너무나 뜻밖이라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언제부터 봄이 좋았냐고 물었다. 엄마는 내내 봄을 좋아하셨다고 했다. 봄볕의 흔적이 사라진 엄마의 맑은 얼굴이 잠시 낯설게 느껴졌다.

 

 엄마는 이듬해 봄을 보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나셨다. 자연스레 혼자 계신 아버지를 뵈러 가는 일이 잦아졌다. 봄 햇살처럼 강하게 느껴졌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힘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엄마의 발병과 함께 농사일을 접으신 아버지께 평생 하던 일을 그만 두니 허전하시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하셨다.

 

 “네 엄마가 있으니 농사를 지었지.”

 “엄마가 무슨 힘이 있어서요?”

 “남자는 아내가 힘이다.”

 

 아버지의 대답은 봄이 좋았다는 엄마의 말을 들었을 때와 똑같은 세기로 내 머리를 때렸다. 엄마가 계셨기에 아버지는 우등생이고 싶으셨던 걸까. 엄마가 계셨기에 하늘과 싸우셨던 걸까. 힘이 됐던 엄마가 안 계시니 아버지의 쓸쓸함이 얼마나 클까 싶어 다시 물었다.

 

 “많이 외로우시지요?”

 “그래도 네 엄마가 먼저 가서 다행이지. 장에라도 가면 뭔 일이라도 날까 봐 돌아올 때까지 걱정이 됐는데…. 몸 약한 사람이 혼자 남았으면 어쩔 뻔했냐.”

 “….”

 

 아버지가 엄마를 사랑하셨다.

 

 엄마가 마당 한편에 살뜰하게 가꾸어 놓으신 꽃밭이 내 눈에 들어왔다. 한 낮 뙤약볕에 수건을 두른 엄마가 꽃을 심고 계셨다. 엄마의 등 뒤에 있던 어린 딸은 엄마가 웃고 계신 것을 몰랐다.      

 

 오늘도 봄 햇살이 피아노 위에 멈춘다. 나는 또 고향의 봄을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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