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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희 Sep 12. 2022

그 아이가 사는 집

     

 자동차 창문을 열었다. 차창을 두드리는 햇살을 외면할 수 없었다. 햇살과 함께 밀려 들어와 내 볼을 간질이는 미풍이 싱그러웠다. 횡단보도 앞에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보였다. 아마도 근처의 중학교 학생들일 터였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미풍보다 더 싱그럽게 내 귀를 간질였다.


 웃음소리를 따라 그쪽을 바라보다가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교복 치마를 한껏 위로 당겨서 다소 민망한 길이로 입은 채 짝다리를 짚고 있는 소녀. 내가 아는 아이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에 내 눈이 커졌다.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그 아이도 웃음기를 거두고 내 눈을 피했다.


 그 아이와 나는 몇 년 전에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 열 살이었던 아이는 집에서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처음이라며 활짝 웃었다. 나는 여러 해 동안 많은 아이들과 만나왔지만, 그 아이는 재능 기부라는 명목 하에 내가 자원해서 만난 첫 아이였다. 양옥집 이층에 세 들어 사는 아이의 집에 처음 들어섰던 날, 나를 먼저 맞이한 것은 어둡고 쾨쾨한 기운이었다. 거실 창문을 가리고 있는 커튼만 걷어도 밝은 햇살이 집안을 가득 메울 것 같은데…. 적잖이 날이 더워지고 있던 터라 나는 하마터면 첫 만남에 남의 집 창문부터 열고 다닐 뻔했다. 


 아이와 공부할 책상은 이미 옷가지들이며 내용물을 알 수 없는 상자 등에 점령되어 있었다. 내 물건도 아닌 것을 함부로 손댈 수 없어서 밥상을 펴자고 했다. 한쪽 귀퉁이가 쪼개져 나간 밥상엔 여기저기 고춧가루가 묻어있었다. 아이가 무안해할까 봐 닦으라는 말은 차마 못 하고 수업하는 내내 고춧가루의 위치를 확인했다. 


 수업이 끝날 즈음에야 부스스한 머리를 묶으며 아이의 어머니가 안방에서 나왔다. 새벽일을 마치고 한낮까지 주무셔야 한다는 어머니. 그 집안의 모든 커튼이 햇볕을 막고 있어야 하는 이유를 비로소 알았다. 아이의 어머니는 자식을 가르치러 온 내가 탐탁지 않은 것 같았다. 


 “지가 하고 싶다고 졸라서 신청은 했지만 벌써부터 남의 말을 뭐 할라고 배워요.” 

 “배워놓으니까 쓸데가 꽤 많더라고요. 아이에게 도움이 될 거예요.”

 나는 바라는 것 없이 내 시간을 들여서 그저 누군가에게 내가 가진 지식을 나눠줄 수 있다는 뿌듯함을 기대했으나, 내 시간과 지식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바쳐야 하는 안타까운 일에 직면해 버렸다.


 한 주 한 번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 어머니의 달갑지 않은 얼굴을 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주무셨으면 하고 바랐지만 끝날 무렵에는 어김없이 머리를 묶으며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곤 늘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선생님도 참 주말에 쉬실 일이지 사서 고생하십니다요.”


 나는 사서 하는 내 고생에 대해 별로 불만이 없었지만, 엄마의 부정적인 말에 아이의 사기가 꺾일까 그것이 염려되었다. 하지만 아이의 눈은 언제나 의욕적이었다.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그 아이의 눈을 볼 때마다 나는 긴장과 함께 감동을 느꼈다. ‘다음엔 더 많이 준비해 올게. 더 정확히 알아올게.’ 마음속으로 다짐하곤 했다. 


 시간이 쌓여갈수록 나는 아이와 나이를 초월한 일종의 우정 같은 것을 느꼈다. 위로 언니와 밑으로 동생이 있는 아이는 중간에 끼인 채 그야말로 천덕꾸러기 신세였지만 밝은 에너지를 쉼 없이 발산했다. 나는 열 살 어린아이가 친구를 괴롭히는 짓궂은 남자아이를 혼내줬다는 무용담을 들으며 박수를 쳤다. 종종 아이의 집 앞 골목에 있는 분식집에서도 무용담은 이어졌다. 떡볶이 한 접시에 세상 부러울 것 없다는 미소를 짓는 아이. 나는 오래도록 아이와 같이 떡볶이를 먹고 싶었다. 


 아이를 만난 지 두 해가 훌쩍 지난 어느 가을, 아이의 집에 들어서던 나는 현관문 앞까지 막고 있는 짐 보따리에 막혀 걸음을 멈췄다. 비스듬히 빼놓은 가구들 사이로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이의 어머니가 말했다.

 “말 안 했던가요? 우리 이사 가요.” 

 “어디로 가세요? 타지로 가시는 거 아니면 수업은 계속할 수 있어요.”

 “여태 배웠으면 됐지 뭐 됐어요.”

 아이들은 이미 새 집으로 갔다며 등을 돌리는 그 어머니에게 나는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했다. 부디 아이가 햇살 들어오는 집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공손한 인사에 실었다.


 몇 달 전, 나는 한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연히 그 아이를 만났다. 중학교 교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모습이 너무 예뻐서 나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양손의 길게 물들인 새끼손가락 손톱이 아이가 사춘기 소녀임을 짐작하게 했다.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빛은 여전한데 어쩐지 밝은 에너지는 줄어든 것 같았다. 공부하느라 많이 지쳐서 그러려니 생각하며 물었다.


 “영어는 여전히 열심히 하고 있지?”

 “저 이제 학원 다녀요. 엄마가 재혼했거든요.”

왠지 가시 돋친 말투가 느껴졌다. 학원에 다니는 것이 불만인가 엄마의 재혼이 불만인가.

아이는 예전에 아이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먼저 등을 돌렸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아이의 등에 대고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집에 햇볕 잘 들어오니?”

 “걱정 마세요. 이제 가난하지 않아요.”

서서히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틈으로 가난하지 않다는 아이의 말이 메아리처럼 울려 나오는 듯했다. 아이에게 나는 가난한 시절을 기억나게 하는 불편한 존재였을까. 


 닫힌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떡볶이를 앞에 두고 신나서 조잘대던 열 살 아이의 얼굴과 길게 물들인 새끼손톱이 어우러져 내 눈앞에 아른거렸다.



 신호등의 불이 바뀌었다. 나는 차창을 올렸다. 아이의 불편한 과거 속에 나는 그냥 머물러 있기로 했다. 아이가 과거를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지금은 아이가 햇볕 잘 드는 집에 살고 있으니 그것으로 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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