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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Mar 04. 2024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

박애희 / 걷는 나무

p156
나를 낳던 날, 엄마는 내가 딸이라는 걸 알자마자 이런 마음부터 들었단다.
'이 아이도 나처럼 이 처절한 고통을 겪겠구나.'
엄마의 그 마음을 자라면서 자주 느꼈다. 어쩌다 뒤통수가 뜨끈해지는 느낌이 나서 돌아보면 엄마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애틋한 눈빛에는 기대와 걱정과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섞여 있었다.


갓난아이를 품에 안을 때마다

느끼곤 했다.

너무 연약한 너가,

이 세상 살아가는 일이 너무 어렵지 않기를.


너를 품에 안을 때,

이제 막 뒤집었을 때,

첫발을 내디뎠을 때,

'엄마'라고 불렀을 때,

처음을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할 때,

더 이상 행복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행복했다.


너를 만난 일이 가장 큰 기쁨이었다.


모두가 잠든 시간,

나 홀로 보채는 널 달랠 때,

졸리는 눈을 간신히 떠 너를 보면서 생각했다.

'너도 이 고단한 시간을 버티겠구나.'


그때 너와 함께 하는 이가 다정하길.

아주 든든한 마음으로 너를 지켜주길.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에게 빌었다.

꼭 그렇게 해주시길.


나의 엄마도 그랬을까.

천둥 치는 밤.

오랜 진통 끝에 태어난 내가 여자아이여서

할머니에게 혼났다며 웃곤 하시던 엄마.


엄마는 그런 내가 밉지 않았을까.

고생했다는 말도 못 듣게 했던 나를 원망하지 않았을까.

어린 나는 가만히 물었다.

"엄마, 그래서 나 미워?"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짝 놀라시던 엄마.

이내 깔깔깔 웃으시며 호탕하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귀하게 태어난 애가 너야."

"엄마가 목숨 걸고 낳았으니까 너는 다 잘 될 거야."


내가 딸아이를 보며 밤새 빌던 마음이나,

꼭 그렇게 되리라 믿어 주던 친정엄마의 마음이나,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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