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내면의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내가 만족하는 나를 찾기 위해서.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질문에 한결같이 나오는 대답 중 하나가 '자신의 이야기'를 써보라는 조언이다. 오케이. 나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래, 써 보자.
한참을 생각해 보아도, 화면 위에서 커서만 깜빡일 뿐, 한 글자도 쓰지 못한 건 매한가지였다.
엄마, 아빠는 늘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셨다. 아빠는 하루 종일 일해도 박봉이었고, 생활비를 보태려는 엄마는 늘 부업을 하셨다. 어린 나와 남동생을 두고 나갈 수 없어서 선택한 일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엄마는 나에게 은빛 목걸이에 집열쇠를 걸어 선물하셨다.
"이제 국민학교 다니는 제일 큰 누나네."
"엄마 일하고 올 동안 숙제 해놓고 동생이랑 사이좋게 놀고 있을 수 있지? 저녁밥 먹기 전엔 올 거야. 엄마 돈 많이 벌어서 과자 사줄게"
7살 아이가 5살 아이와 단 둘이 있는 저녁은, 창 밖으로 들리는 바람소리가 괴물 숨소리처럼 들렸다.
"괜찮아. 난 제일 큰 누나니까. 하나도 안 무서워."
숙제도 하지 않고 낮잠을 자다 깼더니 동생이 안 보였다. 동생을 못 찾을까 염려되는 마음보다 엄마한테 혼날 일이 더 큰일이었다.
"엄마 오기 전에 빨리 찾자."
문 잠그는 것도 잊은 채, 온 동네를 뛰어다녔는데, 동생은 이불장에서 잠들어 있었다. 동생 혼자 집에 두고 돌아다녔다고 꾸지람을 들었지만, 숙제도 안 하고 잠들었다는 사실을 말하면 더 혼날까 봐 입술에 잔뜩 힘을 주고 말을 아꼈다.
느끼는 감정과 표현되는 감정이 늘 달랐다. 슬퍼도 괜찮았고, 아파도 견딜만해야 했다. 무서운 건 나답지 않은 일이었고, 우울한 건 누나답지 못한 행동이었다. 빠른 년생으로 입학한 국민학교 1학년, 내 나이 7살 때부터 나는 나로 살지 못했다.
엄마가 바라는 착실한 딸. 선생님이 좋아하는 바른 학생. 동생이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누나. 집안 사정이 안 좋을 땐 도움이 돼야 하는 살림 밑천. 내가 만족하는 나는 없었다.
간신히 끄집어낸 기억 속의 나는 엄마가 들려준 추억 속의 나와 달랐다. 실수한 건 없는지 잔뜩 긴장한 나와 맡은 일을 착실히 해내는 착한 딸이라는 갭.
어떤 내가 진짜 나인지, 어떤 나를 써야 할지, 한동안 빈 페이지를 채우지 못했다.
우연히 읽은 심리서적을 통해 내면의 나라는 표현을 알게 됐다. 들킬까 봐 긴장한 내가 거기에 있었다. 아는 척하면 눈물부터 날 것 같아 온몸으로 거부하는 아이가.
부끄럽다. 부럽다. 질투 난다. 무섭다. 화난다.
다양한 감정을 쏟아낸 종이 위에서 해방감을 느꼈을 때, 숨통이 틔었다.
글쓰기는 내면의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아직도 가봐야 할 곳이 많으니 지치지 말고 천천히 전진해 봐야겠다. 내가 만족하는 나를 찾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