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도 Oct 11. 2024

글쓰기는 내면의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내가 만족하는 나를 찾기 위해서.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질문에 한결같이 나오는 대답 중 하나가 '자신의 이야기'를 써보라는 조언이다. 오케이. 나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래, 써 보자.

한참을 생각해 보아도, 화면 위에서 커서만 깜빡일 뿐, 한 글자도 쓰지 못한 건 매한가지였다.


엄마, 아빠는 늘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셨다. 아빠는 하루 종일 일해도 박봉이었고, 생활비를 보태려는 엄마는 늘 부업을 하셨다. 어린 나와 남동생을 두고 나갈 수 없어서 선택한 일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엄마는 나에게 은빛 목걸이에 집열쇠를 걸어 선물하셨다.

"이제 국민학교 다니는 제일 큰 누나네."

"엄마 일하고 올 동안 숙제 해놓고 동생이랑 사이좋게 놀고 있을 수 있지? 저녁밥 먹기 전엔 올 거야. 엄마 돈 많이 벌어서 과자 사줄게"


7살 아이가 5살 아이와 단 둘이 있는 저녁은, 창 밖으로 들리는 바람소리가 괴물 숨소리처럼 들렸다.

"괜찮아. 난 제일 큰 누나니까. 하나도 안 무서워."

숙제도 하지 않고 낮잠을 자다 깼더니 동생이 안 보였다. 동생을 못 찾을까 염려되는 마음보다 엄마한테 혼날 일이 더 큰일이었다.

"엄마 오기 전에 빨리 찾자."

문 잠그는 것도 잊은 채, 온 동네를 뛰어다녔는데, 동생은 이불장에서 잠들어 있었다. 동생 혼자 집에 두고 돌아다녔다고 꾸지람을 들었지만, 숙제도 안 하고 잠들었다는 사실을 말하면 더 혼날까 봐 입술에 잔뜩 힘을 주고 말을 아꼈다.


느끼는 감정과 표현되는 감정이 늘 달랐다. 슬퍼도 괜찮았고, 아파도 견딜만해야 했다. 무서운 건 나답지 않은 일이었고, 우울한 건 누나답지 못한 행동이었다. 빠른 년생으로 입학한 국민학교 1학년, 내 나이 7살 때부터 나는 나로 살지 못했다.

엄마가 바라는 착실한 딸. 선생님이 좋아하는 바른 학생. 동생이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누나. 집안 사정이 안 좋을 땐 도움이 돼야 하는 살림 밑천. 내가 만족하는 나는 없었다.


간신히 끄집어낸 기억 속의 나는 엄마가 들려준 추억 속의 나와 달랐다. 실수한 건 없는지 잔뜩 긴장한 나와 맡은 일을 착실히 해내는 착한 딸이라는 갭.

어떤 내가 진짜 나인지, 어떤 나를 써야 할지, 한동안 빈 페이지를 채우지 못했다.

우연히 읽은 심리서적을 통해 내면의 나라는 표현을 알게 됐다. 들킬까 봐 긴장한 내가 거기에 있었다. 아는 척하면 눈물부터 날 것 같아 온몸으로 거부하는 아이가.

부끄럽다. 부럽다. 질투 난다. 무섭다. 화난다.

다양한 감정을 쏟아낸 종이 위에서 해방감을 느꼈을 때, 숨통이 틔었다.

글쓰기는 내면의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아직도 가봐야 할 곳이 많으니 지치지 말고 천천히 전진해 봐야겠다. 내가 만족하는 나를 찾기 위해서.

이전 08화 쓰레기 같은 글이라도 쓰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