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같은 글이라도 쓰고 싶다
브런치 작가가 된 후, 시작된 고민들.
인스타그램에서 브런치 작가가 되기만 하면 쓰레기 같은 글만 잔뜩 쓸 거라며 우스갯소리를 하신 분이 계셨다. 댓글을 보면서 마음껏 웃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나온 한마디.
"쓰레기 같은 글이라도 쓰고 싶다."
승인 메일을 받고서야 시작된 고민들.
"왜 글을 쓰고 싶은 걸까?"
"어떤 글을 쓰고 싶은 걸까?"
"글 써서 뭐 할 건데?"
한 계단씩 걸음을 옮기듯, 책을 읽다 보니 말하고 싶어 졌고, 온라인으로 소통이 잦아지면서 글을 잘 쓰고 싶어졌다. 실컷 신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던 손가락이 막상 멍석 깔아주니 꼼짝하지 않았다.
새하얀 화면에 커서는 깜빡거리고, 첫 글자를 시작하고 싶은데, 어찌 된 영문인지 실수로라도 자판을 누르지 못했다.
브런치에 올려진 많은 글을 본 후, 증상은 더 심해졌다. 한동안 브런치에 들어가지 않았다. 에세이는 읽어본 적도 없는 내가, 일기도 써 본 적 없는 내가, 가진 거라곤 자신감 하나였는데 그마저도 사라지기 일보직전. 브런치 앱을 클릭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매일 쓰던 서평까지 안 써지고 글을 쓴다는 생각만으로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일단 멈춤. 글을 쓰려는 생각도 멈추고 우선 일상을 살았다. 뭐라도 빨리 써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이 오히려 더 긴장감을 높였기에 '글쓰기'라는 생각을 아예 멈춰버렸다.
또다시 시작된 독서. 이번엔 목표가 있었다. 에세이만 읽어보자. 에세이, 어떻게 쓰는 건데? 좀 배워보자라는 마음으로 읽었다.
이전의 난, 에세이를 한 번도 완독해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타인의 삶을 읽으며 공감하는 일은 나에겐 힘든 일이었다. 내가 사는 일이 드라마고, 막장이라, 다른 사람의 인생은 관심밖이었으니까.
에세이만 읽은 지 어언 1년. 나는 울고 웃으며 에세이에 젖어들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발견하고 어떤 상처를 안고 사는지 깨닫기도 했고, 사춘기 아들을 키우는 선배맘의 살아있는 조언을 듣기도 했다. 글을 쓰는 일을 통해 얻고 싶은 목표도 발견했다. 에세이는 치유였다.
어린 시절을 아주 세세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늘 부러웠다. 나도 분명 좋은 추억 하나는 잊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쓸쓸했다. 곱씹을 게 없을 만큼 좋지 못했을까. 크는 동안 감정 표현을 참고 사느라, 옅어진 기억이 빛을 잃은 걸까. 에세이를 읽으며 나는 내가 궁금해졌다. 40년을 넘게 살고서야 던진 질문.
"나는 누구지?"
지금도 나는 나를 완전히 모른다. 내면의 나를 꺼내보는 일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나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건 누구지? 괴리감에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니.
하지만, 불편한 마음을 끄집어내 바라보고 글로 쓰면서 나는 나를 다듬어갔다. 커다란 흙덩이를 주무르고 매만지며 형상을 만들어가듯, 무작정 좋은 사람이고 싶었던 마음도 내려놓고, 욕심 많은 나를 꺼내보기도 했다.
그제야 내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 첫발 내딛는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이젠 꾸준히 걷는 일만 남았다. 덩실덩실 춤추는 그날까지 계속 써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