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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Jan 08. 2024

가장 사적인 관계를 위한 다정한 철학책

이충녕 / 클레이하우스

p47
얼마 전 우연히 외할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을 봤다. 이십 대 시절의 할머니는 요즘 젊은 사람들처럼 멋지게 차려입고 계셨다. 뭔가를 기념하려 하셨을 수도 있고, 그냥 증명용 사진을 찍으신 걸 수도 있다. 별거 아닌 이 흑백사진 한 장이 왜 그렇게 내 마음을 움직였을까.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을 경계했던 나.

사진 속 나는

엄마 등 뒤에 숨는 것으로

세상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


가장 안전하다 느끼는 곳,

가장 강하다고 느끼게 되는 곳.

엄마의 등 뒤.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깨달았다.

나보다 어린 나이의 엄마?

30대의 새초롬한 아기엄마가 낯설.

기억 속 어딘가 그녀와의 꽃다운 추억이 있을 텐데,

도무지 기억나질 않는다.


친구 부모님 장례식장,

급하게 선택한 친구 부모님의 영정 사진은

엄마의 마지막 영정 사진을 미리 정해둬야 할까라는

작은 고민을 하게 했다.


순간 놀랐다.

엄마가 영원히 내 곁에 있어주길 바라면서,

마지막 순간을 상상하는 아이러니라니.


우산 하나에 두 어깨가 젖도록

남포동을 누비고 다니던 엄마와 나.

슬리퍼에 반바지만 입어도 좋았던 둘만의 데이트.

진심으로 환하게 웃던 엄마 얼굴을

그 어떤 사진에 비할까.


"있을 때 잘하자."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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