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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Feb 08. 2024

주제 : 동물 혹은 반려동물

미션 : 수동태 쓰지 않기

어린이집에서 받아온 막구피 한쌍을 난감해하며 들고 있던 옆집 아줌마를 만난 게 인연이었다.
빵빵하게 부푼 비닐 안에 뽀얀 물속을 흐물거리듯 움직이는 구피 두 마리. 꼬리가 어찌나 길고 색은 곱던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아우. 왜 이런 걸 주지? 하필... 살아 있는...."
그렇다. 살아있는 생명체였다.
어린이집에서 고구마 캐기, 감 따기, 김장하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한 후, 결과물을 가져오면 그 옆집 엄마는 "언니, 먹을래요?"라고 묻는다.
내가 안 먹는다 하면 곧바로 음식쓰레기통으로 버리러 가는 아기 엄마라 구피 두 마리를 어찌할지 걱정됐다.

막구피를 받고 난감해하던 아기엄마.
먹는 거면 나한테 묻기라도 했을 텐데, 그래도 살아있는 구피여서인지 "언니, 가져갈래요?"라고 묻지는 않았다. 근데, 이 구피들의 생사를 내가 왜 걱정하고 있는 건지.

음식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수많은 먹거리들을 봐서인지도 모르겠다.
그 구피들의 목숨줄이 위태로워 보이던 차에, 왜 이런 걸 주냐며 엄지와 검지로 간신히 비닐 끝만 붙잡고 있는 그녀를 보니 더 걱정스러웠다.

'저 손가락의 힘이 빠지면 비닐이 바닥으로 떨어질 텐데, 그럼 구피들이 충격받을 텐데.'
그때였다.
"어머나, 너무 귀엽다. 혹시 안 키울 거면 내가 키울까?"




헉, 실언을 하고 말았다.
어항도 없고 먹이도 없는데 왜 키우겠다고 했는지 나는 시간을 되돌려 말을 주워 담고 싶었다.
두 번 고민도 없이, 냉큼 나한테 비닐을 넘기고 바람같이 사라져 버리는 아기엄마.
그렇게 구피 두 마리와의 인연은 시작됐다.


혹시 구피를 보신 적이 있나요?
꼬리가 넓고 화려하고 날렵한 몸매를 가진 아이가 수컷, 수수한 색상에 알주머니가 꽉 차 배가 볼록하고 꼬리는 단출한 아이가 암컷이다.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물속을 부드럽게 오고 가는 녀석들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 시름이 다 사라졌다.
물질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를 '물멍'이라고 한다.


 아침 일찍 아이들이 먹다 남은 먹이와 밤새 싼 똥을 청소해 주고 부족한 물을 채워준다.
우리가 평소에 수돗물로 보는 물은 투명하다 느껴지는데, 구피나 물고기가 사는 물은 약간 반투명한 셀로판지 빛깔로 보인다.
비닐 속에서 보았단 뽀얀 물의 정체는 물잡이가 잘 된 물이었다는 걸, 이젠 안다.

구피들은 오늘도 속 시끄러운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별 거 없어. 뭐... 그러다 말 거야. 그 기분도 곧 괜찮아질 거야.'
'오늘 내 꼬리 발색이 좀 덜 한 거 같지 않아?'
'먹이가 맛이 없어. 예전에 먹던 걸 주면 안 돼?'

그날의 기분에 따라 귀여운 상상도 해보면서 물멍을 하곤 한다.

물갈이를 해주고 먹이를 챙겨주는 일 밖에 해주는 게 없는 나에게 늘 위로를 건넨다.

가끔은 인생 상담도 해주면서.

가끔은 까탈도 부리면서.


반려라는 말이 주는 느낌이 참 좋다. 언제나 내 편인 누군가가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단어.

반려묘, 반려견이라고 강아지나 고양이를 부르는 단어 있지만, 구피를 부르는 말이 없어 아쉽다.

반려구? 반려피?

에잇. 어울리지 않아 그냥 여전히 구피라고 부르지만, 귀여운 닉네임이 생기면 좋겠다고 소원했다.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까지 쭉 함께 하는 구피들.

물론 아기엄마에게 받은 두 마리는 용궁으로 갔지만, 두 마리 사이에서 낳은 새끼들이 커서 또 새끼를 낳았다.

끊임없이 물질을 이어가게 해주는 그들의 생명력에 감사할 따름이다. 

물멍으로 위로받는 귀한 시간. 생각만 해도 행복하까.


"앞으로도 잘 부탁해. 우리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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