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간 직장인의 마음

by 기묘염

하루다. 하루 남았다. 몇 주 전부터 연휴만 기다렸는데 역시나 이렇게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5일이 긴 것 같지만 막상 닥치면 그렇게 길지도 않다. 그래서 평소에 일하는 5일을 그렇게 견뎌낼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태초에 인간을 만들 때, 6일 일하고 하루 쉬라고 했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인류의 조상님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던 거다. 폭발 직전의 미친자들을 동료로 두지 않기 위해서는 한계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반대로 육일을 일하고 하루를 쉬게 하지 않은 이유도 알겠다. 육일을 쉬다가 일하러 가는 자 또한 폭발 직전의 미친자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가 바로 그렇다. 아! 회사 가기 싫다.


결혼 전의 명절과 결혼 후의 명절은 다르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결혼 전에는 죙일 집에서 뒹굴다가 친구 한 번씩 만나러 다녔다면 지금은 내내 집구석에서 뒹굴다가도 밥시간 가까워지면 무거운 몸뚱이를 일으켜 양가 에 밥을 먹으러 한 번씩은 간다는 것 정도가 바뀌었다. 어느 집이나 명절 음식은 종류가 다 비슷하고 약간의 디테일한 손맛의 차이만 있을 뿐 밥상을 복사해서 붙여 넣은 것 같다. 전통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합쳐지고 어느 지점에서 똑같아지는지 좀 궁금해지기도 한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두 어머니가 만들어낸 비슷한 재질의 밥상이 서글플 때가 있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진 그 끈질긴 무엇인가가 결혼 전 전혀 달랐던 그녀들을 결혼 후 비슷한 풍경의 명절 부엌으로 내몰았을 것임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들의 과거 이야기에는 겹치는 부분이 있다. 나한테 내비치는 과거 이야기의 서막이 모두 시집살이에서부터 시작되고, 듣다 보면 우리 엄마랑 남편의 엄마가 혹시 같은 시부모를 모신 건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이 밥상이, 이 밥상 위에 전시된 비슷한 반찬들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잘 모르겠다. 김치 한 번도 비벼보지 않은 내 세대에서 이 모든 것들이 끝났으면 한다. 김치든 떡국이든 잡채든 갈비든 맛있는 음식은 그 자체의 생명력으로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오늘은 짜장면 어때 하듯이 어느 날 그냥 생각나서 먹는 음식일 뿐이었으면 좋겠다. 한날한시에 한상에서 만나고 싶지 않다. 특정인 (거의 특정 성별일 가능성이 높다)의 노동력을 과도하게 갈아 넣은 음식들을 앞에 두고 소화불량으로 꺽꺽대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뻔뻔함도 우리 세대에서 끝났으면 좋겠다. 평소와 같은 간소한 밥상에도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 먹을 수 있다.


양심의 가책 운운했지만 나야말로 양심이라곤 없다. 어렸을 때도 엄마가 해준 명절 밥상 앞에서 게걸스럽게 먹어대기만 했는데, 지금은 우리 엄마뿐만 아니라 남의 엄마가 차려준 밥상 앞에서까지 게걸스럽게 먹기만 한다. 나는 늘 입으로는 "어우 하나만 하세요 하나만, 간단하게 좀 하세요 힘드세요" 하면서도 차려준 밥상 앞에 앉은 자식으로서 게걸스럽게 먹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렇다고 미리 가서 음식을 함께 준비하고 싶지는 않다. 여럿이 하다 보면 판이 더 커지고 더 많아지고 더 견고해질 것이다. 나는 그 부엌 풍경의 일부가 되어 학습하고 전수하고 싶지 않다. 내 아들에게, 심지어 남의 딸에게는 더더욱 물려주고 싶지 않은 풍경이다. 그저 명절엔 딱 한 끼 정도만 같이 먹으려고 한다. 한 끼 먹을 거만 하다 보면 어쨌든 양적으로든 심적으로든 좀 가벼워지겠지. 그러다 보면 점점 줄어들고 작아지다가 사라질 것이다. 나중에는 서로 아무 부담 없이 만나고 싶을 때 만나서 가벼운 상에 숟가락만 더해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내일은 뭐할지 고민이다. 나한테 명절은 결혼이 아니라 출산 그 전, 그 후로 나뉜다. 마지막 연휴를 찢어야 하는데 아이와 같이 찢어야 한다. 가끔 육아가 더 힘드냐 출근이 더 힘드냐 묻는 사람들이 있다. 연휴 내내 육아를 하면서도 출근하기 싫은걸 보면 출근이 더 힘든가 보다. 애는 예쁘기라도 하지 고객님들은 안 예쁘다. 연휴가 하루 남았다. 다시 생각해봐도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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