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삶- 마르타바탈랴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쓴 책에서 데자뷔를 느끼는 경우는 딱 하나. 바로 억압받는 여성들의 역사를 다룰 때다. 억압받는 모든 것들의 역사는 언제나 닮은 데가 있다. 지배층에게 억압받는 민중의 이야기. 부자들에게 멸시받는 가난한 자의 이야기. 무심한 어른들에 의해 상처받는 아이들의 이야기. 인간이 모여 사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보이는 그 공통의 이야기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바로 인간 그 자체의 역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여성들의 이야기는 놀랍도록 한결같다. 특히나 여성들의 이야기가 다른 억압의 이야기보다 더 호소력 있는 것은, 그것이 나와 정서적으로 크게 연결되어있지 않는 타인에 의한 억압이 아니라 내가 가장 사랑하고 의지하는 가족 내에서의 억압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마 나의 이야기일 것이고 내 어머니의 이야기이고 내 할머니의 이야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하고 의식이 변하고 모든 것이 변해 이제 모든 것이 과거가 된 것처럼 보여도 그 제도는 언제나 공고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뿌리박고 있는 개념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여성가족부라는 이름에서 단지 그 '여성'을 빼기 위해 모든 남성이 전투를 벌이는 것처럼 보이는 이 시대에 여성들의 인권이 뭐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신장되었다고 내가 이 소설을 공감하지 못하겠는가. 아주 먼 나라에서 일어난 동떨어진 이야기라니. 이건 우리의 이야기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이 세상에 모든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위한, 그 보이지 않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다. 재능 있는 여성이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이야기. 여성의 신체와 영혼에 여전히 공고하게 폭력을 행사하는 권력의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신사임당으로 대표되는 이 세상 모든 여성의 역사. 물론 신사임당의 조상에 조상에 조상도 당연히 알고 있을 그 역사 말이다. 몇 세대를 지나 오만 원권에 남기지 못한 무명의 발자취들 말이다. 아마 나의 손녀에 손녀에 손녀도 미처 자유롭지 못할 이야기. 어쩌면 오존층보다 느리게 파괴되는 가부장제의 견고함 때문에 지구는 평등이라는 걸 구경도 못하고 인류가 먼저 절멸할지도 모르는 그 이야기 말이다.
그럼에도,
삶은 그렇게 계속됐고, 단 하나의 소리만이 자리를 계속 지켰다. 탁탁탁 탁탁탁 탁탁탁.... 그녀들의 삶은 아직 그렇게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채로 타자기 밑 서랍 안에 차곡차곡 쌓여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만일 누군가, 언젠가 '보이지 않음의 역사'라는 제목이 적힌 제본 책의 첫 장을 만나게 된다면 , 그리고 그중 몇 장을 읽을 만한 지혜를 갖고 있다면, 그것이 단 한 곳의 도서관에만 소장되기에는 아까운 책이라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나의 삶과 에우리지시의 삶을 함께 생각해 보았다. 객관적인 누군가가 후대에 나에 대해 글을 쓰게 된다면 그건 에우리지시보다는 어쩌면 이따금 등장해서 허드렛일을 도와주는 다스도라스의 삶에 더 가까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다스도리스의 삶 또한 다른 작가가 다른 관점에서 그녀의 이야기만 가지고 '보이지 않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그녀가 주인공인 단 한 편의 글을 쓸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