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도 병이 되는 세상에서.

김혼비 - 다정소감

by 기묘염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다 보면, 다정한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삶을 견디는 일은 누구에게나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인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감정을 분출하고 솔직을 가장하여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건 사실 큰 노력이 필요한 일은 아니다. 노력보다는 오히려 포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어떤 인간성에 대한 포기, 나와 아무 관련 없는 타인에게 기꺼이 지옥이 되겠다는 체념. 그 와중에 타인을 배려하고 다정함을 나눠주는 사람들을 보면 그 노력에 작은 감동을 느낄 때가 있다. 그건 명백히 노력이다. 내 감정의 남루한 파편을 타인에게 튀기지 않으려는 노력, 내 삶을 돌보기만도 벅찬 세상에서 타인의 삶도 존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제목만큼이나 다정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종류의 다정함이 다 좋지만 무엇보다 이 책을 끌고 나가는 힘은 바로 작가 본인의 다정함이다. 다정은 타고난 성품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다정함은 인내와 공감이 필요한 지능적인 행위다.


김 혼비 작가의 글에서는 철학과 사유의 힘이 느껴진다. '아무튼 술'에서도 느꼈지만, 농담을 즐기는 여유와 흐름을 끊지 않는 필력이 대단하다. 폭력과 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민감하고 그 민감함은 아마도 고뇌와 사유의 흔적일 것이다. 가까이하고 알아가고 싶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론 그녀의 책을 종종 찾아 읽게 될 것 같다. 아 나도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이걸 이런 식으로 풀어나갈 수 있구나 싶은 감탄과, 이건 나랑 관점이 조금 다르지만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싶은 확장성을 다 가지고 있는 책이다. 나는 이런 글을 만날 때마다 좀 설렌다. 특히나 요즘처럼 혐오와 차별이 난무하며 그게 잘못되었다는 인식조차 없이 마구 험오를 퍼뜨리는 이런 시대에 말이다.


<편견을 갖기 쉬운 몇 가지 키워드에 의해 어떤 사람들이 '한 묶음'으로 정리되어 버리면 그 속에 제각각 다른 감정과 사연, 불가피한 사정과 한계가 있는 개별 인간이 있다는 걸 떠올리기 힘들어지니까>


이 한 문단이 이 책 전체에 깔려있는 작가의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나는 문단인 것 같다. 작은 사례들을 통해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이런 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유행처럼 퍼지는 혐오에 찬물을 끼얹는 책. 나도 모르게 담그고 있던 한쪽 발을 깜짝 놀라 빼게 만드는 온도를 가진 서늘한 책. 그러나 차갑지 않고 다정한 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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