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괴물은 누구

친해지고 싶어

by 기묘염

사회적 약자의 개념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는 얘기다.

사람을 많이 상대하다 보니 뇌와 육신이 분리되는 것 같다. 알고는 있지만, 모르는 듯한 태도. 머리로는 알지만 빡은 머리에서 치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치는 것이라는 깨달음. 그러다 점점 무뎌져서 나중에는 스스로 하는 자기 검열마저 희미해지고 얼굴 표정은 우리 집 현관문보다 완고해진다.


특정 집단을 많이 접촉하면 그 집단에 대한 불신과 분노 그리고 일종의 기피가 생긴다. 아이를 많이 상대하는 직업은 아이가 마냥 예쁘지 않고, 노인을 많이 상대하는 직업은 노인들에게 마냥 공손하지 않다. 그건 어느 인간 군상과 마찬가지로, 집단 안에는 각종 인간들이 있고, 그 인간들의 부정적인 모습이 그 집단의 특성과 결합되면 그 집단 자체의 결함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추상으로 존재했던 집단이 실재가 되면, 그건 모르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이 말이다.

딱히 약자나 강자 주류와 비주류 같은 관계성을 떠나 인간의 보편의 특성이기도 하다.


내 앞의 상대방이 어떤 집단의 일원이 될 때 느껴지는 타자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와 당신이 아닌 나와 그들의 관계에서 오는 몰이해 인지도 모르겠고. 그게 뭐던 간에 내 안의 유교 걸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나는 직업 특성상 어르신들을 많이 상대한다.

어르신들은 느리다. 나는 바쁘다.

어르신들은 잘 안 들린다. 내 목은 쉬고 싶다.

어르신들은 의심이 많다. 나는 사사건건 해명하고 싶지 않다.

어르신들은 폐쇄적이다. 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얼마나 이해하는가와 관계없이 우리는 잘 지내기가 좀 어렵다.


빛바란 결혼사진을 들고 와서 계약서라고 우기는 건 귀여운 류다. 사진 속의 앳된 신부와 내 앞에 한 세기를 넘게 산 것 같은 고난의 얼굴 사이에 흐르는 세월의 메몰참이 서글퍼서 조금 숙연해진다. 그런 분들은 같은 길을 걷는 같은 종의 다정함으로 비교적 친절하게 같은 말을 열세 번 정도 반복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방어적이다 못해 타인에게 공격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못해, 탐욕적이기까지 한 형태의 늙음은 봐도 봐도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명절이 되면 은행에 신권이 풀린다. 워낙 찾는 사람이 많다 보니 한 사람당 바꿔줄 수 있는 돈에 제한을 둔다. 명절에 손주들에게 깨끗한 새 돈을 주고 싶은 사랑을 은행에 가서 내가 더 빨리 왔으니 남은 신권 갖고 있는 신권 다 주라며 남의 자식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걸로 표출하는 노인들이 있다. 대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십오 분간 돈 더 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에게 고객님이 다 가져가시면 다른 분들은 어떡하냐고 여기 있는 신권 다 가져가실 거냐고 응수하자 그분이 "그래 내가 다 가져갈 거다! 남들 뭐! 내가 먼저 왔잖아!"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럴 때면 사실 나이는 의미가 없어진다. 그가 얼마나 약하든 나는 그가 싫다.


어떤 늙음은 사람을 몸서리치게 만든다. 그건 어떤 젊음이나 어떤 어림처럼 한 인간 그 존재 자체의 문제다. 그럼에도 나는 가끔 괴로울 때가 있다.

나의 불손함이 상대가 약자여서 더 쉽게 표출되는 것은 아닐까.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이 일이 나를 괴물로 만드는 걸까. 이 니면 그저 이 옹졸함이 나의 유일한 진정성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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