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구마구 Dec 25. 2023

미국에도, 한국에도, 그 어디에도 없는 유토피아

중요한 건 '어디에'가 아니라 '어떻게'

미국에 오기 전, 아시아 밖으로 나가본 적도, 혼자 해외를 가본 적도 없는 저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아직 아기 같다고 말하시며  "진짜 혼자 갈 수 있겠어? 우리 딸 대견한데 너무 걱정된다."라고 말씀하셨죠.



엄마 아빠를 걱정시키기 싫었던 저는 "서울에서 혼자 사는 거나 미국에서 혼자 사는 거나 똑같지 뭐~"라고 말했지만 사실 마음이 콩닥콩닥거렸죠. 괜히 인터넷에 '교환학생 장단점' 이런 것들을 검색하기도 했습니다. 무섭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뒤섞였던 것 같습니다.


인천을 떠났던 비행기


공항에서 인사를 나누고, 혼자 게이트를 들어갈 땐 아주 조금 실감이 났던 것 같습니다. 내가 진짜 가는구나, 말로만 듣던 그 미국에 가는구나. 하고요.



그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제 미국 생활도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어찌나 빨리 흐르는지 마치 바람 속에 몸을 맡기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제 미국 생활은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행복했다든가, 특별히 우울하지도 않았지요. 일상은 일상일 뿐이더라고요. 도착해서 1달간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파티에도 자주 가고, 학교 행사도 주기적으로 체크하며 새로움에 휩싸였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결국 일상은 반복되었습니다.


밤새 봤던 영화들

흥이 많지 않은 저는 파티가 버거웠고, 학교 행사에도 흥미를 잃었습니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몇 없는 커피숍 투어를 하고, 밤새 영화를 본다든가, 각자의 문화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국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온 것이죠.



미국에 오기 전 알바, 학업, 대외활동 등으로 시달렸던 저는 오랜만에  찾아온 '지루함'에 몸을 맡겼습니다. 알람 없이 느지막이 일어나 점심을 먹고. 드라마도 보고, 인스턴트만 먹던 제가 직접 요리해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휴식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비로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침대에 늘어져 멍 때리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게으른 삶을 사는 게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 손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삶 말이죠.




내 두 눈의 초점을 내가 아니라 남에게 맞추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불안으로 다가옵니다. 한계치를 넘어버려 숨이 너무나 가쁘지만 발을 멈추는 법을 몰라 그저 앞으로 달릴 뿐입니다. 그러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한순간에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마는 것이죠. 그게 바로 번아웃 같습니다.



저는 번아웃 직전에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삶의 방향이 어찌나 다양한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많은 것을 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트랙 밖을 벗어나니 이제는 방향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이라면 이미 하고 있어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찬찬히 제 일상을 되짚어보았습니다. 저는 일상에서 항상 글을 쓰고 있더라고요. 미국에서 느낀 것들을 메모장에 정리하고, 블로그에 끄적이는 등, 어떤 대가 없이, 무의식적으로 글을 써왔습니다.


첫 브런치북


그렇게 3년 정도 잊고 살았던 브런치 어플을 디시 다운로드하였습니다. 라이킷이 하나둘씩 달릴 때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더라고요. 팁 문화를 다룬 11화, 미국에서 뚜벅이로 살며 느낀 글인 13화가 조회수가 높게 뛰는 신기한 경험도 했습니다.



"너는 뭘 좋아해?"라는 물음에 "글쎄, 이제 찾아봐야지"라고 답했던 제가 이젠 "난 글 쓰는 게 좋아"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넓은 땅에서, 너무나 다른 사람들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유일한 '내'가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개성 가득한,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는 삶들 속에 녹아들다 보니 저도 제 것을 찾고 싶어 졌습니다.



여유로운 학교

저는 무언가를 얻을 것을 기대하고 비행기에 올랐지만 잃은 것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꽉 찬 일상을 잃었고, 불안을 잃었고, 비교를 잃었습니다. 완벽하게 보이는 것을 포기했고, 빠르게 달리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딱 한 가지를 배웠네요. 중요한 건 어디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라는 것, 시야에 따라 같은 것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지만 그렇기에 내일이 기다려지는 것 아닐까요?



완벽이라는 허상의 목표를 세우고 무작정 달렸던 제가 실패하고 경험하고 성공하고 좌절하고, 웃다가 우는 그 모든 과정이 인생임을 배우고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이전 14화 미국에서 계속 살 생각있어? 절대 없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