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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구마구 Dec 20. 2023

대한민국의 98배인 미국에서 뚜벅이로 산다는 것

차 없이는 낙동강 오리알

한국의 대학생이 자차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제 경험으로는 정말 드뭅니다. 아마 누군가가 자차가 있다고 밝히면 "헐 차가 있다고? 대박!"이라는 반응이 자연히 뒤따르겠죠.


절망적인 배차간격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는 서울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긴 하지만, 제 고향은 지하철도 없고, 버스 배차간격도 엉망인 지방입니다. 제 고향에서 대학을 다니는 친구들 모두 차가 없습니다. 차로 10분 걸리는 거리를 1시간에 걸쳐 버스를 타고 가거나, 부모님이 태워주시는 경우도 있고, 그러다 지쳐 학교 주변에서 자취를 하는 친구도 있지만, 차는 사실 선택지에 없는 거나 마찬가지죠.



한국은 수도권 + 광역시 인구를 합치면 인구 절반을 넘습니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 대중교통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대중교통이 구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 뉴욕과, 서부 일부 대도시 정도인데, 많은 인구가 그 밖의 지역에 살고 있죠.



미국 면적은 무려 한국 면적의 98배가 넘습니다. 미국의 주 하나가 한국보다 넓기도 합니다. 이 광활한 땅을 대중교통으로 커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죠. KTX, 고속버스로 전국투어도 가능하고, 시골 곳곳에도 마을버스가 다니는 한국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광활한 도로

미국은 근교 여행이면 기본적으로 차로 3-4시간 정도를 의미합니다. 저도 학교에서 당일치기 여행을 간다길래 따라나섰다가 왕복 7시간을 차에서 보낸 적이 있습니다. 잠깐 졸았는데 1시간이 지나가 있어 “내가 1시간을 넘게 잤어?”라고 물으니 “여기는 우리 학교보다 1시간이 빨라!”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근교’ 여행에서 ‘시차’를 경험하다니.. 나라 끝부터 끝까지 같은 시간을 가진 한국인으로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죠.



덕분에 서울에서 KTX로 1시간 반 걸리는 제 고향이 멀다고 생각했던 제가 이제는 '차로  3시간? 가깝네 뭐~'라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덕분에 서울로 돌아가면 좀 더 자주 고향에 갈 것 같습니다. 1시간 반이면 이젠 껌이죠.




귀여운 버스 스탑 표지판


제가 지금 살고 있는 미국의 시골은 지하철은 꿈도 꿀 수 없고, 마을버스가 있긴 한데, 배차간격도 길고 제멋대로 인 데다가 정류장도 몇 없습니다. 그마저도 일요일과 공휴일은 운행하지 않습니다.



차 없이는 아무 데도 못 가는 환경입니다. 조금  큰 도시로 나가면 버스 시스템이 이것보단 괜찮다고 들었지만, 사실 어딜 가나 땅이 너~무 넓어서 모든 곳에 정류장을 설치하기도 힘들고 우리나라처럼 제때, 그리고 자주 운영하지도 않지요.


패스트푸드점의 드라이브 스루

대부분이 차를 가지고 있다 보니 모든 패스트푸드, 커피숍이 드라이브 스루가 가능합니다. 요즘에는 한국에도 드라이브 스루가 많이 자리 잡았는데요, 미국은 마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듯 드라이브 스루를 합니다.





저는 학교 건물이 모여있는 곳에서 도보 15분 거리의 기숙사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제 기숙사 위치를 말하면 항상 듣는 질문이 "너 거기서 걸어서 학교 다녀? “입니다.



이젠 그 반응에 익숙해져서 기숙사가 어디냐는 질문을 들으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내 기숙사가 조금 먼데~ 셔틀버스 탈 때도 있고, 걸어 다닐 때도 있어~"하고 사족을 붙이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저를 안쓰럽게 바라보곤 합니다.



한국에서는 학교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산다고 하면 가깝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지요. 등교 수단이 두 다리인 것은 당연한 사항이고요. 도보 15분 등교로 주목받고 싶다면 미국으로 오시면 됩니다^^




길가다 마주친 사슴

저는 간혹 10분 정도 걸어서 햄버거를 테이크아웃하거나, 커피를 사러 가곤 합니다. 5번 넘게 그 길을 걸었지만, 단 한 번도 걸어 다니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자동차만 쌩쌩 달리는 그곳을 걷다 보면 분명 인도를 걷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차도를 걷고 있는 기분입니다. 황랑한 사막에 홀로 남은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운동을 극도로 싫어하는 저는 지금까지 제가 운동량이 제로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미국에서 일주일을 살아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한국에서 저는 운동을 시간 내서 한 적은 없지만, 끊임없이 걸으며 최소한의 운동을 하며 살았음을 느꼈습니다.



일상에서 등하교하며 걷고, 지하철역을 향해 걷고, 편의점을 가며 걷는 등 일상이 운동이더라고요. 그러나 이곳에선 의도해야만 걸을 수  있습니다. "자 오늘은 걷자!"하고 다짐을 한 후, 차를 타고 걷기 위한 장소에 간 후에야 걸을 수 있습니다.



두 달 전쯤, 친구들이 저에게 간단한 하이킹을 하러 가지 않겠냐고 묻길래, 저는 Of course! 를 외쳤습니다. 그리고는 물과 초코바를 야무지게 챙기고 평소에는 바르지 않던 선크림까지 바르고 떠났습니다. 하이킹 장소 입구에는 기념품까지 팔더라고요.



그렇게 입구에서 20분 정도 갔을까요? 저는 언제 본격적인 산이 시작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가니 익숙한 곳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한 바퀴를 돌아 출발점에 도착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미국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하이킹이 40분 만에 끝이 나버렸습니다.



미국에서의 하이킹이 한국에서의 등산이라고 착각해 일어난 소소한 에피소드입니다. 모든 하이킹 코스가 저리 짧은 건 아니지만, 대부분 평지를 걸으며 자연을 즐기는 시간을 하이킹으로 칭하더라고요. 집에 돌아오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난 매일 하이킹에 버금가는 운동을 하고 있었구나."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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