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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Oct 20. 2023

3. 문제는 돈이다

아싸 엄마와 인싸 아들의 뉴질랜드 스쿨링

문제는 돈이다


  갈 나라도 정했고, 갈 학교도 정했다. 이제 문제는 돈이다. 처음엔 천만 원 정도로 예산을 잡았다. 스쿨링 할 지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여행도 다녀야 하는데 관광지 물가는 꽤 높았다. 숙박비만으로 600만 원~ 빠밤! 우리나라에서 뉴질랜드까지는 비행기로 대략 11시간이 소요되는데, 찡찡이 대마왕인 아들을 데리고 가만히 앉아서 장거리 비행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비즈니스석을 타고 가기엔 지갑에 출혈이 너무 컸다. 그래서 알아본 것이 에어뉴질랜드의 ‘스카이 카우치’였다. 3개 좌석의 다리받침 부분을 평평하게 변신시키고, 간단한 침구를 제공하여 옆으로 누워갈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였다. 편안한 만큼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 그렇게 왕복 항공료 400만 원~ 빠밤! 이미 천만 원 돌파! 짝짝짝.     


 그 밖에 학비 150만 원, 학교 등록 대행 수수료 30만 원, 렌터카 100만 원. 렌터카는 그냥 굴러가나? 유류비 필요하고, 11시간 비행기 타고 여기까지 왔는데 재밌다는 건 다 해봐야지. 각종 액티비티 비용 필요하고, 쿨하게 보내주신 시부모님 포함 가족, 친구들 작은 기념품이라도 사다 주려면 선물비도 책정해야 하고, 자잘하게 먹고 쓰고 하는 기본 생활비까지 합하면 최소 1500만 원은 필요했다.      


  아이의 영어 동기부여를 위해 해외 스쿨링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남편도 수긍했지만, 그 비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의한 적이 없었다. 우리가 재벌 집도 아니고 ‘여보, 나 뉴질랜드 가게 천오백만 주라 ^^’ 하면 가지 말라고 할 게 뻔했다. 반대할 빌미를 주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 비용을 마련해 놓고 얘기를 꺼내야 한다. 하지만 나는 파워 전업주부.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은커녕 비자금도 없다. 남편 카드로 생활비를 쓰기 때문에 모든 내역은 투명하게 공개된다.


   사실 부부간에 네 돈 내 돈이 따로 없긴 하지만, 이때만큼은 ‘내 돈’이 너무 절실했다. 내 돈이라고는 10년 전, 직장 그만둘 때 받았던 쥐꼬리만 한 퇴직금, 명절이나 생일에 받았던 용돈 모아둔 것이 다였다. 아르바이트를 해보려고 해도 아이가 1시 반이면 하교하기 때문에 마땅치가 않았다. 아침에 정신없이 밥 먹여서 등교시키고, 집안일 좀 하고, 씻고 점심 먹으면 애가 오는데 뭘 할 수 있겠는가. 돈 나올 구석이 없어 절망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경쾌한 알림음이 울려 퍼졌다. “당근~!”      



당근 마켓의 달인


  그래! 당근이다. 당근마켓에 안 쓰는 물건을 팔면 현금을 마련할 수 있다. 요즘은 티끌 모아 티끌이라고 하지만 일단은 모아 보고 생각하자. 그동안 귀찮아서 쌓아만 뒀던 물건들이 갑자기 다 돈으로 보였다. 명품이라고 모셔만 뒀던 무거운 가방, 지금은 쳐다만 봐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10센티짜리 하이힐, 뱃살 빼면 입어야지 하고 계속 소장 중이던 예쁜 원피스들, 남편이 쇠젓가락으로 라면이라도 끓이면 혹시나 코팅 벗겨질까 봐 난리 난리 쳤던 르쿠르제 무쇠 냄비들. 모두 후련한 마음으로 새 주인을 찾아줬다.


   내 물건을 다 팔고 나니 이번에 아이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몰래 팔거나 버리면 그거 어디 갔냐고 귀신같이 찾는 녀석이라 반드시 협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이제 변신 로봇 갖고 노는 건 좀 아기 같다고 생각했는지 선뜻 장난감을 내놓았다. 끊임없이 새로운 캐릭터가 나와 아이들을 유혹하는 바람에 많은 부모들이 피눈물을 흘렸던 그 ‘카봇’을 이제야 졸업하는구나. 살 때는 금값, 팔 때는 똥값이지만 나에겐 그 똥값도 소중했다. 내가 당근에 판 카봇이 다른 후배 부모님들의 부담을 조금은 덜어주었길.


   찾아보니 팔 물건은 많았다. 자전거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밀려난 킥보드,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박스에 설명서까지 야무지게 챙겨놓은 각종 레고들.(섞이지 않게 관리하느라 힘들었다) 아이 물건 중에 가장 효자 상품이었던 것은 바로 영어 교재였다. 우리나라에서 영어 교육은 영원히 식지 않는 인기를 자랑하기 때문에 새것 같은 중고는 항상 수요가 있었다. 영어책은 중고로 사서 보고 또 중고로 올려도 잘 팔렸다. 나는 점점 당근거래의 달인이 되어갔고 올라가는 매너 온도만큼 내 지갑도 마음도 따뜻해졌다.     


당근으로 뉴질랜드 간 썰 푼다






남편에게는 비밀


  돈을 모으기 위한 나의 잔머리는 점점 더 진화했다. 남편에게는 반드시 비밀로 하고 싶은 이것.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보험사기? 보험깡? 사회적으로 불법은 아니지만, 왠지 마음이 켕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나는 타고나길 약골이라 잔병치레가 많다. 한 달에 두 번 독감에 걸리기도 하고, 대장과 위장에 용종이 생겨서 시술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돼지갈비 먹고 토하다가 토사물이 폐로 들어가 어이없이 폐렴에 걸려 입원까지 했다. 이런 식으로 지출한 의료비가 꽤 많았는데, 나에겐 든든한 실손 보험이 있었다. 의료비는 생활비 카드로 내고, 돌려받은 보험금은 내 개인 계좌로 받는 식으로 조금, 아주 조금 부정축재를 했다. 내 몸 아파서 받은 보험금이니 내 돈이라고 주장하면 너무 양심에 털 난 것처럼 보일까. 남편이 이 글은 안 읽었으면 좋겠다.^^     


  기존에 모아뒀던 돈과 당근마켓, 보험깡 덕분에 목표한 천만 원을 모을 수 있었다. 생돈 들여서 가는 거면 눈치가 보였을 텐데, 어느 정도 돈을 모아서 가는 거라 당당하게 계획을 말할 수 있었다. 아내가 보험사기꾼인지 꿈에도 모르는 우리 착한 남편은 한국에 있으나 뉴질랜드에 있으나 생활비 들어가는 건 마찬가지니까 가서 괜히 돈 아끼지 말고 쓰라고 카드를 줬다. 아, 당신이 이러면 내가 더 찔리잖아. 여보 사랑해.     




         

P 엄마의 여행 계획     


   나의 MBTI는 INFP이다. P답게 느긋한 성격이라 시간관념이 느슨하고 즉흥적으로 이것저것 들여다보다가 공상에 빠진다. 그러다 내가 원래 하려던 일이 뭐였는지 잊어버리는 것이 주요 패턴이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어린아이를 키우면서 아주 조금은 J에 가까워졌다. 어느 정도 계획을 해놓아야 돌발 상황에 대처가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J들이 보면 이것도 계획이냐고 코웃음 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나의 여행 코스를 공개하겠다.      


   뉴질랜드는 북섬과 남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북섬은 어느 정도 도시화가 된 곳이고, 남섬은 아름다운 자연의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우선은 남섬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고, 보름 정도 북섬을 여행하다가 최종 목적지인 타우랑가에서 4주 스쿨링을 하는 것으로 정했다. 남섬은 도로가 험하고, 땅 스케일이 우리나라와 달라서 다음 관광 스팟으로 이동하려면 네다섯 시간씩 운전을 해야 했다. 아이와 나의 체력으로는 무리였다. 그래서 제일 가고 싶은 곳인 ‘퀸스타운’에 6일 동안 머물기로 했다. 6에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그냥 그 정도면 시간에 쫓기지 않고 놀 수 있겠지 해서 나온 숫자였다. 관광객보다는 현지인의 느낌으로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하루 이틀은 실컷 게으름을 피우며 여독을 풀고, 하루는 자전거를 빌려서 호수 주변에서 놀고, 또 하루는 곤돌라랑 루지 타면서 산 경치를 감상하고, 다음 날은 조금 심심해서 고속버스 타고 옆 동네 글로우 웜 동굴에 다녀왔다.


아름다운 퀸스타운



   매일매일 출근 도장 찍듯이 동네 놀이터에 갔더니 친구도 사귀었다. 처음으로 사귄 친구 이름은 제이비어. 얘도 퀸스타운에 여행을 왔다고 했다. 아빠는 호주 사람, 엄마는 한국 사람이란다. 어쩐지 얼굴이 친숙하더라니. 한국말은 거의 못했지만, 리스닝은 조금 되는 편이라 제이비어와 기민이는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의사소통을 했다. 기민이는 100% 영어로 말한 것 같은 착각 속에 자신감이 붙었다. 둘은 하염없이 땅을 파고 물을 붓고 미끄럼틀을 백번씩 타면서 놀았다. 같은 행동에 같은 말을 반복하니 저절로 놀이터 영어가 늘었다. ‘나이스~ 바로 이거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기민이가 처음 사귄 친구


   퀸스타운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북섬 타우랑가에 왔다. 본격적으로 스쿨링 하기 전에 동네를 염탐해 놓고 싶은 마음에 오긴 했는데, 하루 숙박비가 20만 원을 넘었다. 오클랜드만큼 번화한 도시는 아니지만, 은퇴하신 분들의 로망인 바닷가 휴양지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가격이었다. 그래서 이틀만 머물고 렌터카를 빌려 얼른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온천이 유명하고 유황 때문에 계란 방귀 냄새가 진동하는 ‘로토루아’에서 1박을 하고, 뉴질랜드 최대의 호수가 있는 ‘타우포’에서 1박을 했다. 그리고 반지의 제왕 촬영지인 ‘마타마타’에서 3박을 머물렀다. 여기에서 3박을 한 이유는 깔끔하고 넓은 숙소가 하루에 10만 원도 안 했기 때문이다. 나름 중소도시인 타우랑가에서 스쿨링을 하여 비용을 절감했다고 좋아했는데, 더 시골로 가도 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뉴질랜드에서 가장 긴 강인 와이카토강이 흐르는 ‘해밀턴’에서 5박을 하는 것으로 북섬 여행을 마쳤다. 어떠한가? 의식의 흐름대로 쓴 나의 여행 코스가. 아무래도 앞에서 조금 J에 가까워졌다고 말한 부분은 취소해야겠다. 하하.       

             

완벽한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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