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싸 엄마와 인싸 아들의 뉴질랜드 스쿨링
나는 극내향형 인간이다. 사람들과 왁자지껄하게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조용히 있는 것을 좋아한다. 나이 사십의 짬밥으로 없는 사회성을 한껏 끌어올려 ‘하하 호호’ 기본적인 사교활동은 가능하지만, 마치 오래된 핸드폰처럼 지속시간이 길지 않다.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틈에서 어느 타이밍에 일어나 집에 갈지 늘 마음속으로 계산하고 있다. 특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오면 몇 시간은 드러누워 있어야 충전이 된다.
친해지고 나서는 기묘한 말과 행동으로 개그 욕심을 내는 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상당히 시간이 걸린다. 그런 나를 두고 남편은 길고양이 같다고 했다. 먹이도 주고 이제 좀 친해졌다 싶었는데, 또 과하게 아는 척을 하고 만지려고 하면 호다닥 뒤로 물러나는 겁쟁이 고양이라나. 길을 가다 얼굴은 아는데 별로 친하지 않은 엄마가 보이면 일부러 빙 돌아갈 정도로 나의 사교성은 돌쟁이 낯가림 수준이다.
그런 내가 외국에서는 그 나라 맞춤 성격으로 변한다고 하면 과연 믿으실랑가? 물론 내 본성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 나라 국민성에 맞추어 조금 연기가 가능한 정도다. 마치 카멜레온이 주변 색에 맞추어 자신의 몸 색깔을 바꾸듯이 말이다. 전에 언급했다시피 나의 본성은 덜렁덜렁 자유로운 P인데, 일본에만 가면 세상 계획적이고 깔끔한 J 코스프레가 가능하다. 예의 바름과 시간 약속을 중시하는 일본인들 틈에서 욕먹지 않기 위해 저절로 장착된 기술이다.
뉴질랜드는 영어권 국가답게 외향형 인간들이 많았다. 처음 만난 사이에서도 스몰톡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마치 무인도에서 몇 년간 홀로 지내다가 드디어 대화 상대를 찾은 것처럼 너무나도 반갑게 말을 걸어왔다. “How are you?” 난생처음 보는 나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그냥 으레 하는 인사말인 줄 알면서도 갑자기 실전 영어 회화를 하자니 당황해서 입이 얼어붙었다. 비행기 옆자리, 카페, 공원, 마트 등등 장소를 불문하고 스몰톡의 대가들이 나타났다. 내향형 인간들에겐 너무나도 가혹한 환경이었다. 마치 수학여행 가는 버스의 맨 뒷자리-반에서 잘 나가는 애들 사이에 어쩌다 낑겨 탄 조용한 아이. 그게 바로 나였다.
하지만 이대로 기 빨려 찌그러져 있을 순 없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릿속에서 지구멸망의 시나리오를 썼다 지웠다 하며 행동강령을 점검하는, 망상의 대가 INFP가 아닌가. 현실의 나는 햄버거 주문 하나 하는 것도 떨리지만, 상상 속의 나는 미드 속 잘생긴 남주를 들었다 놨다 하는 팜므파탈이 된다. ‘좋아, 미드 속에 들어갔다고 생각하고 아무 말이나 막 씨부려 보자!’ 컨셉을 이렇게 잡으니 뉴질랜드 맞춤 외향인 연기가 가능해졌다.
‘마타마타’라는 지역에 머물고 있을 때의 일이다. 반지의 제왕 촬영지로 유명한 곳인데 그것 외에는 별 특색이 없는 매우 한가한 시골 마을이었다. 심지어 놀이터도 넓디넓은 잔디에 놀이기구가 딱 3개밖에 없는 심심한 모습이었다. 해질 무렵 딱히 할 일이 없어 철봉에 매달려 있는데, 웬 SUV 한 대가 쿵짝쿵짝 요란한 노랫소리와 함께 놀이터 잔디밭 위로 질주해 왔다. 치안 좋고 평화로운 뉴질랜드지만, 간혹 마약 한 것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혹시 미친놈이 시비 걸러 온 것 아닌가 싶어 긴장하고 있었는데, 차에서 애들 4명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3개밖에 안 되는 놀이기구로 함께 어울려 놀다가 내가 먼저 스몰톡을 시도해 봤다. 아직 어른에게 말 걸기는 좀 부담스러운데 애들은 상대도 잘해주고, 비교적 쉬운 말을 쓰니까 나의 뉴질랜드 한정 외향인 연기를 펼치기에 딱이었다. 미드에서 본, 교외에 사는 중산층 주부에 빙의하여 미소 띤 얼굴로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이 동네에 제일 큰 놀이터가 어디냐, 추천할 만한 재밌는 장소가 있냐 물어봤더니 뭐라고 쫑알쫑알하다가 차 안에 있던 엄마를 불러왔다. 그렇게 내 첫 뉴질랜드 친구 한나(Hanna)를 만났다.
그녀에게는 스페인과 마오리 족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유럽에서 이주해 온 백인들의 관점으로만 뉴질랜드를 보다가 한나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느낌이 달랐다. 뉴질랜드에서는 마오리어와 영어가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고, 학교에서도 마오리 문화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세금 혜택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원주민의 입장에서는 역시 침략일 수밖에 없다. 한나는 마오리의 언어와 문화가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말과 문화를 빼앗겼던 것이 떠올라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무척 흥미로워했다. 빼앗겨 본 자의 설움을 이 먼 나라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와 나누다니 내가 말해놓고도 기분이 묘했다.
한나는 호산나, 샬럿, 요이, 준, 메이 이렇게 다섯 아이의 엄마였다. 게다가 근처의 승마 클럽에서 말을 돌보는 일도 하고 있었다. 나는 전업주부로 아들 하나 키우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한나는 다섯 아이와 다섯 마리의 고양이 그리고 두 마리의 소까지 총 열둘의 생명을 키우고 있는 슈퍼 파워 워킹맘이었다. 한나가 ‘내일 소 밥 주러 우리 집에 와 볼래?’ 하고 떡밥을 던져서 냉큼 물었다. 놀이터에서 처음 만난 현지인의 집에 놀러 가다니 한국에서의 나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인데, 미드 컨셉 외향인 메소드 연기에 심취하다 보니 여기까지 와버렸다.
한나의 집은 넓은 초원 위에 있었다. 소한테 밥을 준다고 그래서 건초나 사료 따위를 주는 건가 했는데, 예상외로 인간들이 먹는 비스킷, 초콜릿 과자를 먹이라고 줬다. 소의 혀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길었고, 흥분한 소들은 콧김을 흥흥 내뿜고 침을 질질 흘렸다. 반려견처럼 귀여워하며 키우는 소인데, 무섭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아 태연한 척 과자를 줬지만 사실은 꽤 겁이 났다.
우리의 관심사는 소보다 고양이였다. 기민이도 나도 고양이를 무척 좋아하는데 아파트에 살아서 감히 키울 생각은 못하고 가끔 고양이카페에 가는 걸로 만족했다. 한나네 집은 그야말로 고양이 천국이었다. 집 안팎으로 자유롭게 다니는 고양이들이 참 행복해 보였다. 역시 애들도 동물도 자연에 풀어놓고 키우는 것이 제일인가 보다. 그러고 보니 개들도 사납게 짖는 것을 한 번도 못 봤다. 대형견 소형견 가리지 않고 다들 느긋하고 순둥 했다. 뉴질랜드 개들은 스트레스를 안 받아서 성격이 좋은 건가? 아무튼 열심히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실컷 사심을 채웠다.
여름이라 해가 길어서 같이 수영장에 놀러 가기로 했다. 이 집 아들 요이가 마침 기민이와 같은 또래라 서로 잘 놀았다. 엄마가 좋은 사람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모두 다정하고 친절했다. 수영장에 좀 이상한 사람이 있어서 가까이 가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주의를 줬는데, 딸내미가 뭐라고 투덜거렸다. 그러자 한나가 “Just listen!” 하고 짧게 한마디 했는데, 역시 다섯 아이를 둔 엄마의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어느 나라든 엄마들은 다 비슷하다. 마트에서 어떤 애가 바닥에 드러누워 징징대고 있었는데, 그때 뉴질랜드 엄마들도 숫자를 센다는 걸 알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나라 엄마들은 “쓰읍~!”하고 위협적인 매미 소리를 내며 “셋 셀 동안 일어서 하나.... 둘.... 셋....!!!” 이렇게 하는데, 여기 엄마들은 “Five... Four... Three... Two... one!” 하고 숫자를 거꾸로 센다. 징징대는 아이에게 5초나 주다니 역시 넓은 초원에 살아서 뉴질랜드 엄마들이 더 관대한가 보다.
수영장에서 재밌게 놀고, 다시 한나네 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현지인 집에서 같이 밥을 먹다니 그야말로 미드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처음엔 외향적인 척 연기한 거였지만, 자꾸 하다 보니 그것도 익숙해져서 편안하게 진심으로 대화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영어가 서툰 기민이를 배려해 가며 함께 보드게임도 하고 닌텐도도 했다. 뉴질랜드 여행 중 아이에게 한 마디라도 더 영어를 쓰게 하려고 ‘네가 아이스크림 주문해 봐’, ‘가서 한번 말 걸어봐’ 하고 엄마가 시킬 때는 소극적이었는데, 한나네 아이들과 놀 때는 아는 영어를 총동원하고 손짓 발짓까지 더해서 의사소통하려고 애썼다. 그러취! 내가 바라던 게 바로 이거였다. 아들아, 엄마가 쌩돈 써가며 멀리까지 온 보람이 있구나. 나에게도 기민이에게도 뉴질랜드에 와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다. 열린 마음으로 따뜻하게 우리를 맞아준 한나와 가족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