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싸 엄마와 인싸 아들의 뉴질랜드 스쿨링
우리가 스쿨링 할 지역인 타우랑가는 오클랜드보다 외곽에 있긴 하지만, 나름 휴양지라 집 렌트 비용이 비쌌다. 당근마켓에 카봇 팔아가며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허투루 쓸 순 없었다. 그래서 돈을 절약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숙박비가 저렴한 소도시에서 지내다가 타우랑가로 이동하는 계획을 세웠다. 아이랑 묵기에는 호텔보다 에어비앤비가 편했다. 공간이 넓고 취사가 가능한 데다 비용도 저렴했다. 로토루아, 타우포, 마타마타까지는 모두 예쁘고 깨끗한 숙소라 어디서 어떻게 찍어도 사진이 예술이었고, 우리는 외국 집에서 살아보는 경험을 만끽했다. 그랬기 때문에 이번 해밀턴 숙소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작부터 느낌이 쎄 했는데 내가 애써 부정하려 했던 것 같다.
보통의 에어비앤비는 프라이빗하게 쉬고 갈 수 있도록 호스트와 메시지로만 의사소통한다. 열쇠함을 통해 무인 체크인, 체크아웃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얼굴을 마주할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해밀턴의 에어비앤비에서는 처음부터 호스트가 집 앞에 뙇! 나와 있었다. 엘리자베스 여왕만큼이나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할머니였다. ‘역시 할머니들이 다정하신 건 만국 공통인가 보다. 우리를 환영해 주려고 일부러 나오셨구나’ 생각했다. 나의 착각이었다.
할머니는 그냥 아무나 붙잡고 얘기가 하고 싶으신 거였다. 환영의 말이나 숙소 이용 규칙이 아닌 돌아가신 남편 얘기, 자식 얘기, 손자 얘기, 자기가 영국에서 어떻게 뉴질랜드에 왔는지 등등 유구한 역사를 마당에 서서 울타리를 하나 두고 계속 이야기했다. 중간에 끊고 들어가려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씀하셨다. ‘저기요, 우리 너무 피곤하고 아직 체크인도 못 했거든요?’ 차마 마음의 소리를 내뱉지 못하고 건성으로 흘려들으며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꺼냈다. 그런데 갑자기 할머니가 아이에게 네가 남자니까 엄마를 도와야 한다면서 캐리어를 들으라고 강요했다. 아니, 애 몸무게보다 더 나가는 짐인데 들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라고. 이상한 오지랖을 강경한 어투로 하니 나도 기민이도 어안이 벙벙했다. 어디든 꼰대가 존재하는 것도 만국 공통인가 보다.
찰거머리 같은 할머니를 겨우 떼어 내고 숙소에 들어갔는데, 개 비린내가 쓰나미처럼 덮쳐왔다. 귀여운 멍멍이의 발바닥 꼬순내가 아니었다. 비 오는 날에 산책하고 1년 동안 목욕 안 한 개 100마리가 모여서 털 뿜뿜 파티를 하는 느낌이었다. 예약 페이지 설명에 ‘반려동물 친화 숙소’라고 작게 쓰여 있긴 했지만, 그건 반려동물을 데려와도 좋다는 뜻이지, 숙소에서 냄새가 나고 더러워도 이해하라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정말 기본적인 청소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여기저기 개털투성이에 마치 할로윈 장식처럼 커다란 거미줄이 천장 구석구석마다 달려있었다. 뭘 먹고 그렇게 커졌는지 통통한 거미들이 금방이라도 스파이더맨으로 변신할 지경이었다. 새 수건 위에는 바싹 말라죽은 거미들의 잔해가 쌓여있어 오랫동안 숙소 관리를 안 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주방 시설이 있다 해서 쌀밥을 해 먹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하나같이 낡고 더러워서 도저히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아마도 이 청동기 시대 유물 같은 냄비에 밥을 하면, 여러 미네랄과 중금속 섭취가 가능했을 것이다. 충격과 공포로 소용돌이치는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민이는 천진난만하게 호스트 할머니가 빌려준 먼지투성이 레고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고, 한국에서 가져온 돌돌이 테이프로 최대한 개털을 떼어 냈다. 문제는 거미였다. 작은 거미는 평소에도 잘 잡았지만, 거의 포도알 만 한 거미는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렸다. 한국에서라면 남편에게 맡기고 옆에서 꺅꺅 소리만 질렀을 텐데. 여태 별로 생각나지 않았던 남편이 갑자기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일본에서 새내기 교사였을 시절, 자취방에 바퀴벌레가 나왔는데 도저히 잡을 용기가 나지 않아 학교에서 당직 중인 나이 지긋하신 교감 선생님께 SOS를 청할 정도로 나는 벌레를 무서워했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내 새끼를 보호해야 하는 ‘엄마’가 아닌가. 어른으로서 아이를 안심시키고 위험 요소를 제거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창고를 뒤져 에프킬라 같은 스프레이와 긴 빗자루를 찾았다. 아이는 다른 방에 피신시키고 나는 중무장을 했다. 긴 팔 긴 바지에 후드를 뒤집어쓰고, 마스크를 쓰고, 고무장갑을 꼈다. 나는 용감하다 용감하다를 속으로 백번 외쳤다. 실눈을 뜨고 타겟을 확인한 뒤, 와들와들 떨리는 손으로 빗자루를 뻗어 천장에 있는 거미를 바닥으로 패대기쳤다. 그와 동시에 재빨리 스프레이를 분사했다.
“취이이이이이익~!!!”
스프레이 버튼을 누르는 검지 손가락이 뻣뻣해질 정도로 한참을 뿌려댔다. 보통 이 정도 뿌리면 대부분의 벌레는 죽다 못해 녹아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된다. 스프레이의 연기가 걷히고 조심스레 들여다보니 대왕 거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서... 성공인가? 그래, 아무리 커 봤자 벌레는 벌레지.’ 의기양양해진 나는 한껏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아이를 불렀다.
“기민아! 엄마가 거미 잡았어! 이제 나와도 돼.”
쓸어서 밖에 버리기만 하면 되니 큰 숙제를 끝낸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했다. 그. 런. 데 빳빳한 빗자루가 대왕 거미에 닿는 순간, 8개의 다리가 동시에 깨어났다.
‘발발발발발발발발!!!’
그것은 분명 소리 없는 움직임이었지만, 의태어만으로 표현하기엔 부족했다. “꾸에에에에엑!”하는 의성어가 들어가 줘야 내가 들은 거미의 내적 비명을 조금은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거미가 내 몸을 기어 올라간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시각적 자극만으로 촉각이 느껴지는 기이한 체험.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공감각적 심상’인가.
5박이나 예약했는데 이대로는 도저히 있을 수가 없었다. 숙박 일수를 줄여보려고 예약 내역을 확인해 보니 다행히 에어비앤비 정책상 당일인 오늘을 제외하고 나머지 4박은 환불 가능한 상태였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거미랑 개털 이야기는 안 하고 최대한 정중히, 다른 곳을 더 여행하고 싶어서 숙박 일수를 변경하려 한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랬더니 호스트 할머니가 막 화를 냈다. 너 때문에 주말 예약을 다 놓쳤다면서 절대로 환불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어이가 없어서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니 에어비앤비 정책이 곧 법은 아니라 호스트가 환불 안 해주면 별도리가 없다는 말만 있었다.
아이는 쿨쿨 잠이 들었는데, 난 열불이 나서 도저히 잠이 안 왔다. 호스트 할머니와의 일로 기분이 무척 상했다. 이 더러운 집에 조금도 있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김은숙 작가의 ‘더 글로리’ 대사가 생각났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제일 쉬운 일이다.” 드라마의 상황과는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나에게 너무 필요한 말이었다. 물론 돈을 아끼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과 위생 그리고 나의 정신 건강이니까. 그냥 돈 좀 날렸다 생각하고 다른 숙소를 구해서 나가면 되는 거 아닌가? 그리 생각하니 용암같이 들끓었던 마음이 차분해지고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착착 떠올랐다.
나는 갈등이 생기는 것이 두려워 솔직한 자기주장을 하지 못하고 회피만 하는 사람이었다. 나 하나만 참으면 서로 얼굴 붉힐 일 없이 지나갈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거였다. 참고 억누른 감정은 결코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어떻게든 튀어나와 나 자신과 내 주변 사람을 괴롭힌다. 나는 숙소에 정당한 비용을 지불했고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을 제공받을 권리가 있었다. 무섭고 더러운 것을 꾹꾹 참아가며 내 손으로 거미를 잡고 개털을 치우는 게 아니었다. 다른 곳을 더 여행하고 싶다는 핑계로 숙박 일수를 줄여달라 요청할 게 아니었다. 할머니의 나이가 몇이든 간에 즉각 숙소 상태에 대해 항의하고 환불을 요구했어야 했다. 이 빌어먹을 유교걸! 뉴질랜드까지 와서 어른 공경한답시고 할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애랑 거미 소굴에서 덜덜 떨며 잠도 못 자는 게 말이 되냐고!!
호스트의 나이? 못 받은 환불금? 나의 짧은 영어 실력? 갑자기 새로운 숙소를 구해야 하는 막막함? 어떤 논리적 이유도 핑계도 다 필요 없었다. 나는 이제라도 모든 것을 바로잡기로 마음먹었다. 그냥 본능적인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갔다. ‘나는 진심 이곳에서 일 분 일 초도 더 머물고 싶지 않다. 아침이 밝으면 여기서 나가자.’ 오직 이 생각뿐이었다. 새벽에 닥치는 대로 짐을 쌌다. 집이 워낙 찝찝해서 별로 풀어놓지도 않아 금방 정리가 되었다. 그리고 에어비앤비 앱을 켜서 새로운 숙소를 검색했다. 조건은 반려동물 입실 금지, 호스트의 연령이 너무 높지 않은 곳, 바닥이 카펫이 아닌 곳, 이불이나 벽지에 꽃무늬가 없을 것. (경험상 인테리어가 미니멀할수록 환경이 깨끗했다) 곧 적당한 곳을 찾아냈다. 금액은 거미 할머니 집보다 높았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렇게 나에 대해 또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나는 여행할 때 숙소가 정말 중요한 사람이구나. 후각이 무척 예민한 사람이구나. 40년을 살고도 나는 나를 잘 돌볼 줄 몰랐다. 참는 것만이 미덕이 아닌데 이제부터 그러지 말아야지.
새로운 숙소 예약까지 마치고 나니 안심이 되고 자신감도 생겼다. 처음에 거미집 숙소 비용은 그냥 날리겠구나 생각했는데, 하룻밤밖에 안 잤고, 아직 환불 가능 기간인데 내가 왜 그냥 가야 하지? 의문이 들었다. 잠은 한숨도 안 잤는데 급 정신이 맑아지면서 전투력이 상승했다. 당장 에어비앤비 고객센터에 더러운 숙소 사진을 올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호스트에게도 정중하지만 솔직하게 상황을 이야기했다. 한 푼도 환불해 줄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던 할머니가 고객센터의 압박을 받았는지 반액을 환불해 주었다. 돈은 좀 뜯겼지만, 늦게라도 참지 않고 자기주장을 하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무척 기분이 좋았다. 처음으로 내가 든든한 내 편이 되어 준 느낌이었다. 인생의 수업료를 이렇게 내는구나. 가벼워진 마음으로 빛나는 아침 햇살을 맞으며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