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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수평근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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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짱이 Oct 31. 2024

포커페이스 2

민낯이 되다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갖가지 모습으로 상황을 연기한다. 극의 분위기에 따라 시시각각 표정을 바꾸며 자신이 맡은 인물의 감정과 개성을 표현한다. 순간순간 변하는 배우의 얼굴은 관객을 줄거리 속으로 끌고 가며 오락성을 배가시킨다. 객석에서 바라볼 땐 극에 대한 흥미와 집중도가 증가하지만, 연기자는 대사를 읊으면서 천의 페르소나로 그 의미를 심도 있게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아무리 힘든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그것을 들키지 않으면서.


  심리학자인 칼 융은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심리를 다중자아라는 말로 표현했다. 연극무대의 배우처럼 나는 왜 항상 여러 개의 포커페이스여야 했을까? 거대한 현실에 맞서 자꾸만 작아지려는 스스로를 감추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대단한 능력이라도 있는 사람인 양 화려하게 포장하려는 마음이 컸을 수도 있겠다. 이제까지 쌓은 것이 모래성처럼 일순간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으리라. 그래서 높은 철옹성을 두르고, 아무도 내 본래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깊숙하게 은둔시킨 건 아닐까. 


  고창 선운사의 민불은 쳐다보기만 해도 저절로 마음이 편해진다. 투박한 비대칭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고 살짝 고개를 기울인 모양은 익살스럽기까지 하다. 가슴에 살짝 얹힌 두 손은 세상 누구라도 안아줄 것처럼 푸근하다. 민불은 백성들 옆에 머무르기 위해 속세로 나온 벅수法首 즉, 미륵을 지칭하는 말이다. 순박한 촌부 같은 민낯은 어떤 권위적인 부처의 상보다 큰 울림을 준다. 어쩌면 연화대좌 위의 차가운 근엄은 인간이 만든 종교라는 이름의 또 다른 포커페이스가 아닐까.


  자연은 민얼굴이다. 태양을 향해 한껏 제 몸을 부풀리고 서 있는 공원의 싱그러운 나무들은 감정을 숨기는 법이 없다. 햇살과 비와 바람을 뭉근하게 버무려 나이테를 채운 그들은 정직하다. 물오른 느티며, 미루나무, 수양버들은 아이들 웃음처럼 가식이 없다. 괭이밥, 패랭이, 꽃양귀비도 본연의 색 외에는 색조화장을 하지 않는다. 뽕나무 가지에 앉아 짝을 부르는 후투티의 목소리 또한 마찬가지다. 저들은 위선과 가식의 인간과 달리 모두 자신의 마음을, 표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한 루소가 아니라도 봄날의 자연은 포커페이스를 걸치지 않는다. 


  가만히 나를 바닥으로 내려놓고 스스로를 돌아본다. 이제부터라도 겹겹이 둘러싼 높은 담장을 허물면, 가면을 내려놓고 본연을 드러내면 어떨까. 저 봄날의 버드나무나 꽃들처럼 거짓을 벗으면 민불처럼 해맑아지리라. 긴장과 위장으로 점철된 외면을 벗고 무장해제한 얼굴로 사람들을 만날 때, 나의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따뜻해질 것이다.


  햇살 아래서 나무의사를 기다리던 벚나무들이 푸른 표정으로 반겨준다. 가만히 다가가 둥치를 안고 눈을 감아본다. 수간을 타고 흐르는 숨소리를 듣는다. 기실 이제까지 내가 나무를 치료한다 생각했지만 그건 오만이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들은 나의 포커페이스를 한 겹 한 겹 벗겨내고 있었는지도. 오늘은 자연의사 앞에 민낯이 된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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