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수평근 08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짱이 Aug 06. 2024

카모메 식당처럼 1

삶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레 스며들기를

  헬싱키 어느 골목에 새로 생긴 식당에서 일본식 주먹밥을 파는 사치에. 가게를 오픈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손님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동네 주민들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선뜻 들어오지 않는다.   

   

  파리만 날리던 가게에 일본 만화를 좋아하는 청년 토미가 애니메이션 ‘갓차맨’의 주제가를 물으며 첫 손님으로 온다. 노래의 가사를 알려준 미도리는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마음에 세계지도에서 찍은 곳이 헬싱키였다고 한다. 특별히 갈 곳도 할 일도 없는 그녀에게 사치에는 하고 싶은 것이 생길 때까지 식당 일을 도와달라 부탁한다. 항공사에서 짐을 분실해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마사코도 일과처럼 가게를 방문한다. 영화 <카모메 식당>에는 평범하지만 결핍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 서로의 허전함을 채운다.


  지난달 독일로 여행을 다녀왔다. 모국어를 사용하지 않는 곳에서 보낸 시간은 설렘의 연속이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대륙이 주는 신선함이 신경세포를 자극했다. 오래된 건물이 즐비한 골목길이나 고성의 어느 언저리, 박물관이 된 대문호의 집은 아찔한 전율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문학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 여행이라 그림형제에서 시작해 괴테를 만나고 돌아오는 동안 나의 오감은 새로운 자극에 하루하루 행복했다. 좋은 벗을 사귀었다는 것도, 인상적인 사람을 만났다는 것도 큰 수확이었다.


  여행 중에 <카모메 식당>을 떠올린 것은 우리와 일정을 함께 한 가이드 탓이다. ‘여기라면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어디든 상관없어서, 무작정 떠나고 싶어서.’ 영화의 세 주인공이 헬싱키에 있는 이유처럼 인생의 중요한 일들이 생각보다 사소한 것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영화처럼 사소한 이유로 그도 프라하에서 살고 있다. 


<계속>

     


이전 07화 포커페이스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