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으로 사는 외로움을 알까
직장을 그만둔 뒤 이민을 결심하고 그가 처음 한 생각은 한국 사람이 많지 않은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것이었다. 마음의 결정을 하자마자 갑작스러운 급류를 탄 삶은 그를 프라하로 데려다 놓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길모퉁이 카페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첫 몇 달은 손님이 전혀 없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무작정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영화 속 동네 사람들처럼 이방인과 낯선 장소에 대한 긴 탐색 끝에 카페는 차츰 자리를 잡아갔지만 만성적인 적자를 면할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가게를 정리하고 여행 가이드가 되었다.
열흘 동안 유럽의 한나라만 여행한 여행객도 처음이거니와 문학기행을 안내하는 것도 처음이라는 그에게서 전혜린과 이미륵의 소설을, 나이를 뛰어넘은 괴테와 실러의 우정을 들었다.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와 홀로코스트 메모리얼파크에서 느끼는 감정을 함께 나누었다. 화술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말과 행동에서 언뜻언뜻 보이던 이민자의 삶이, 그 헛헛함이 여행 후에도 그를 기억하게 만들었다.
모국어를 사용하지 않는 곳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외로움을 알 수 있을까. 오래전 일 년여를 외국에서 지낸 적이 있다. 바쁜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는 저녁이면 하루를 살아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배고픔이 몰려왔지만, 힘들었던 오늘을 털어놓으며 간단한 저녁이라도 먹자고 불러낼 친구가 없었다. 상점의 문은 왜 그리도 빨리 닫는지. 극야의 밤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었다. 라디오라도 틀지 않으면 소음조차 없는 방에 앉아있다 보면 또닥또닥 창밖에서 빗소리가 들리곤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