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이라는 그릇을 비우세요.

그냥 저냥 요가수트라 1.2

by 최필준

yoga citta vrtti nirodhah

요가 치타 브르티 니로다



요가는 치타 브르티 니로다라는 뜻입니다. '요가'는 요가이고, 치타는 '의식'입니다. 브르티는 '작용'이고, 니로다는 '제어'라는 뜻입니다. 합치면 '요가는 의식 작용의 제어'라는 말입니다.


요가에서 제일 중요한 단어를 하나만 말하라고 한다면 저는 '의식'이라고 하겠습니다. 의식은 그릇입니다. 사람이 기절하면 의식이 있는지부터 확인합니다. 사람의 의식이 완전히 없어지면 식물인간이 되고, 잠깐 없어지면 혼수 상태로 봅니다. 어떤 상태든 의식이 있어야 제정신인거죠. 그만큼 의식은 중요합니다. 그래서 의식을 그릇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담든지 어쨌든 그릇이 있어야 담던지 말던지 하는데, 그릇이 깨지면 답이 없습니다.


브르티는 음식을 그릇에 담는걸 말합니다. 그릇에는 여러가지 종류의 음식을 담을 수 있습니다. 의식도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종류의 내면작용을 담을 수 있습니다.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마음의 작용이 달라집니다.


의식에는 무엇을 담을 수 있을까요? 생각, 감정, 감각, 호흡, 신체의 움직임을 담을 수 있습니다. 내가 의식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내가 의식에 무엇을 담는지에 따라 마음의 작용이 변합니다. 의식은 뷔페 접시같은거라 뭐든지 담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뷔페에 가면 대부분 그릇 자체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무슨 음식을 담을지만 생각합니다. 우리 의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무슨 감각을 느낄지만 생각하지 의식 자체에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요가는 반대로 의식이라는 그릇 자체에 관심을 갖습니다.


정리하면 의식이 그릇이고 생각, 감정, 감각에 의한 마음의 작용은 음식입니다. 그렇다면 제어는 무슨 뜻일까요?


뷔페에 가서 접시에 음식을 쌓아봅시다. 최대한 가득 채우면 어떻게 될까요? 접시 밖으로 음식이 굴러서 툭 떨어지겠죠. 제어가 되는 걸까요? 안되는 겁니다. 내 의식이라는 접시에 생각이든, 감정이든, 감각이든 꽉 채우면 제어 불가능이 됩니다.


뷔페는 음식을 접시에 담아 자리로 가서 포크로 먹어야 합니다. 접시에 음식이 가득 차서 서빙부터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뷔페가 Standing Bar가 아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서서 먹을 순 없습니다. 음식을 덜어내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릇을 완전히 비우거나, 적당하게 채우는게 요가 입니다. 꽉꽉 들어찬 의식상태로는 제어가 불가능하고, 제어가 불가능해지면 통제력을 잃은 상태가 되고, 통제력을 잃으면 어떤것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릇을 들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일조차 힘들어집니다.


생각이 가득차면 그 이상의 생각을 볼 수 없습니다. 감정에 휘말리면 실수가 잦아집니다. 감각에 빠져버리면 중독이나 최면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흔히들 실수를 하고 이런 표현을 씁니다. "내가 내가 아니었어." 그 상태가 바로 의식이 무언가로 꽉 차버린 상태입니다. 꽉찬 음식들이 바닥으로 투두둑 떨어지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음식이 아니라 접시입니다. 음식이 되어버렸으니 내가 내가 아니었다!는 말을 하게 됩니다. 누구나 그럴 수 있습니다. 저도 그러고 삽니다. 하지만 어느쪽이 좀 더 아름다운가에 대한 예술적 선호도를 생각해볼 수는 있습니다.


음식이 범람하는 장면을 예술적이라고 말하기 힘드시다면 이제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그래 그럼 어떻게 그릇을 비울것인가? 라는 질문을 하셔야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어렵습니다. 내가 지금껏 접시에 담아온 맛있는 음식들을 다 갖다 버리거나, 적당히 덜어 내는게 쉬운일이 아닙니다. 매우 불편한 일입니다.


하지만 최대한 한 살이라도 젊을때 많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해결하십시다. 젊을 때 많은 불편을 해결해야 나이 들어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음식이 적당히 범람했지만, 나중에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득 차서 정말로 통제를 벗어날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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