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 옵저버, 관조자

그냥 저냥 요가수트라 1.3

by 최필준

Tada Drastuh Svarupe Avasthanam

타다 드라스투 스바루페 아바스타남


마음이 제어되는 그 때, 관조자는 본성에 머문다


tada - at the time → 그 때

drastuh - looker → 관조자

svarupe - nature → 자연, 본성

avastha - dwelling → 머물다

*Spokensanskrit.org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무엇일까요? 저에겐 관조자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본성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오늘부터 쪼깨 어렵습니다.


본성은 두 가지 카테고리에 사용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하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을 제외한 모든 것'입니다.


사람을 제외한 모든 것을 그냥 '사물'이라 표현하겠습니다. 사물 중에서도 스마트폰을 사물의 대표라고 합시다. 스마트폰의 본성은 무엇일까요? 없어서는 안되는 본질적인 부분이 무엇일까요? 전화기능과 어플리케이션 입니다.


스마트폰은 전화기능과 어플리케이션이 없으면 스마폰이 아니게 됩니다. 다른 예로 TV는 화면과 TV프로그램이 없으면 TV가 아니게 됩니다. 사물은 본성을 규정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본성은 규정하기 쉽지 않습니다. 철학이라는 학문은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가에서 시작합니다. 철학이 시작된지 몇 천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인간의 본질은 국제표준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신이든 외계인이든 누가 좀 정해주면 좋겠습니다. 다들 각자의 주장을 할 뿐입니다.


요가, 기독교, 불교, 도교, 유교, 고대 그리스 철학이 말하는 인간의 본질이 각각 다릅니다.


이 철학들을 다시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본성을 칼로 잰듯이 딱딱 규정하는 철학과, 본성을 최대한 상대적으로 모호하게 이야기 하는 철학이 있습니다.


전자를 본질론적 철학, 후자를 관계론적 철학이라고 합니다.


요가를 비롯한 힌두교 철학, 기독교, 유교, 고대 그리스 철학은 본질론에 가깝습니다. 불교, 도교는 관계론에 가깝습니다.


너무 많으면 머리 아프니까 요가와 불교만 이야기 해봅시다. 요가는 본질을 규정하는 철학 '본질론'입니다. 불교는 본질을 규정하지 않는 철학 '관계론' 입니다. 두 철학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요가는 인간의 본성을 아트만이라고 합니다. 불교는 본성? 그런거 없다고 합니다. 저는 선택적입니다. 선택적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불교에 가깝다 할 수 있겠네요.


요가는 인간의 본성이 있고, 우주의 영혼과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개인의 아트만을 '지바트마'라고 하고, 우주의 영혼은 '파라마트라'라합니다.


요가를 기업으로 비유하자면 '파라마트마'는 본사이고 '지바트마'는 대리점 정도 입니다. 우리는 본사에 소속된 대리점인데,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불교는 이런 체계 자체를 거부합니다. 불교는 인연설 또는 관계설이라고 합니다. 너와 나는 관계에 의해 본성도 변한다. 최선을 다해 대충 설명하면 "나는 너의 친구지만, 너희 부모님에겐 자식 아니냐, 그러니까 본성을 규정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불교를 기업으로 비유하자면 일단 본사 같은거 없습니다. 브랜드도 간판도 없습니다. 대리점 없습니다. 그냥 제품이랑 판매사원만 있습니다. 특이점은 제품을 사는 사람에 따라 가격이 달라집니다. 편하게 장사하는거죠.


정리하자면 요가는 인간의 본성이 '파라마트마, 지바트마, 아트만'이다. 간판이 있다!는 입장입니다. 반대로 불교는 "인간의 본성 같은건 규정될 수 없다" 간판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둘 다 좋은 이론입니다. 선택은 각자가 합시다. 아무튼 두 철학이 이런 차이가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됩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시다. 요가는 마음이 제어되면 본성이 보인다는 입장입니다.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마음이 꽉 차면 그릇이 보이지 않습니다. 접시에 음식이 들어차면 접시의 브랜드가 뭔지 모르게 됩니다. 우리 접시의 브랜드는 '파라마트마' 이고, 시리즈는 '지바트마- 에디션'입니다.


탈무드에 '신이 가장 소중한 것을 마음에 숨겼다'라는 이야기 기억하시나요? 비슷한 이야기 입니다. 담은 음식 다 치우고, 접시를 뒤집으면, 접시의 브랜드가 보입니다. 내가 먹고 있던 뷔페음식은 그저 그렇고, 맨날 먹던 그 맛인데, 접시를 뒤집으니 에르메스였다. 그런 느낌입니다.


배가 많이 고픈 상태로 뷔페에 입장한 우리는 음식이나 포크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진짜 에르메스인지 아닌지는 수행을 통해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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