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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말해연 Apr 26. 2023

‘관계’는 ‘나’를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퇴사하고, 아르바이트하며, 아침에 108배 하는 29살

#4월25일 화요일 (아르바이트 6주 차/ 108배 24일째)

동거인과의 관계에서 지금 당장 풀리지 않는 숙제를 받은 탓에, 하루에도 마음이 수 백 번 오락가락해서 멀미가 날 지경이다. 그래도 언젠간 그 문제를 풀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오늘도 108배를 해나간다. 오늘의 기도문은 어제와 같다. ‘마음은 요동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을 게 못 됩니다.’


동거인과의 관계가 어딘가 잘못된 것 같은데, 어느 부분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점점 더 막막해진다. 내 속에 서운함이 쌓이고, 서운함은 화로 변한다. 화는 내 안에서 나에게 독성을 뿜어내 나를 점점 병들게 만든다. 그런데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그저 요동치는 마음을 바라보는데, 잠잠해지지 않고 몸이 열병을 앓는다. 그래도 108배를 하며 기도문을 외우니 그 감정에 빠져들지 않고, 가까스로 아주 가까이서 그 감정을 바라보고 있다.


(좌) 아침 / (우) 점심

108배를 하고, 아침을 먹고, 스트레칭을 하고, 씻고 아침에 글을 썼다. 글 쓰기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나의 방법이고, 훗날 평온해진 마음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내가 됐을 땐 돌이켜 보지 않을 기록이다. 살기 위한 방법이자 과정 그 자체다. 사실 누가 이런 글을 보고 싶을까 두려워서 더 잘 살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마음처럼 그렇게 잘 되지 않는다. 마음이 괜찮지가 않은 날들이 괜찮은 날들보다 많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이유를 찾으려고 쓰고, 아직 과거를 돌아보는 인간으로 살기에 내가 쓴 글은 나에게 위로가 된다.


글을 다 쓰고, 점심을 먹고, 남자친구와 함께 이비인후과에 갔다. 나는 요 근래 몸에 열이 오르면서 귀가 간지러운데, 자다가도 귀가 간지러워서 깨고는 한참을 후비고 파서 귀가 아프고, 남자친구는 비염 수술 경과를 지켜보는 중이라 함께 내원했다. 원래 병원에 갔다가 함께 카페에 가서 각자 할 일을 할 계획으로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갔는데, 버스에서 대화를 하다가 나는 또 서운해졌고, 그 서운함을 다시 참았고, 이내 위가 쓰려와서 명치를 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진료 후 집에 돌아왔다.


저녁 도시락

집에 돌아와서 자다가 일어나서 도시락을 챙겨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몸과 마음이 일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는데,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것이니 나는 가면을 쓰고 일하는 카페로 향했다.


매니저님들의 선물

그래도 이곳은 내게 숨 쉴 구멍이 되어 주었다. 퇴근을 기다리는 매니저님 한 분과 오늘 나와 함께 마감을 할 매니저님 한 분이 나를 맞아주었는데, 각각 나에게 선물을 줬다. 누군가에게는 서운하고 속상한 감정을 느끼지만, 누군가에게는 감사하고 따뜻한 마음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상대를 바꿔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니까 그 모든 것을 평균내면 내 삶은 꽤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비도 오고, 추워서 그런지 손님이 정말 별로 없었다. 그래서 손님을 맞이하는 일도 수월했고, 마감 업무도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심란했다. 무언가 속에서 폭발할 것만 같았고,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소리 지르고 싶었다. 그런 감정과 나오려는 눈물을 꾹꾹 참고 무사히 퇴근을 하는데, 평소 데리러 오는 남자친구에게서 ‘피곤해서 데리러 가지 못 할 것 같다.’는 연락이 와 있었다. 그때 마음에서 무언가 폭발해 버렸다. 내 감정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차분한 상태로 말하고 싶어서 마음을 가라앉히며 집으로 돌아갔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니 ‘다녀왔어요?’라는 말이 침대에서 들려왔다. 나는 대답하고, 양치질을 하고, 씻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사라지는 것 같다고도 이야기했다. 우리는 새벽 1시 30분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에도 헤어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헤어지지 않았다. 둘 다 서로를 향해 쥐고 있는 끈을 놓지 못했다. 그래서 또다시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는 솔직하게 말하는 연습을 하기로 약속했다. 감정이 상했을 때 감정이 상했다고 이야기하고, 감정이 상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면 설명하되 당시에는 정리가 되지 않는다면 일단 ‘모르겠다.’고 답하는 연습. 감정은 요동치는 것이 맞는데, 그렇다고 무시해서도 안 되는 것 같다. 나는 지금껏 감정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휘둘릴 것이 무서워 쳐다보려 하지 않는 편에 가까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감정은 내게 존중받지 못했고, 그것은 내가 나를 존중하지 못하는 태도였다. 그러니 내가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좋은 관계를 위해 타인을 생각하고 위하기에 앞서,
각자 나는 나부터 존중하고 위해야 타인도 존중하고 위해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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