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키오스크>를 읽고
작은 공간에 대한 호기심은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되어서까지 식지 않고 있다.
첫 기억은 유년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밑 외딴집 부엌 위엔 다락방이 있었다. 먼지 쌓인 그곳은 뒤적거릴 수 있는, 열어보고 싶은 상자나 궤짝들로 가득했다. 다락에 낸 A4용지만 한 크기의 유리창은 동화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작은 창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볼 때면 다락이 판타지 공간처럼 여겨지곤 했다.
유리슐레비츠의 그림책 <비 오는 날>을 보았을 때 난 어린 시절 나를 만난 듯했다. 다락에 앉은 소녀는 바로 나였다. 난 그 소녀가 무얼 느끼고 어떤 걸 하고 싶은지 다 알 것만 같았다.
그림책 <넉점반>에는 정겨운 구멍가게가 나온다.
보기만 해도 꿈꾸듯 행복해지는, 신데렐라에 나오는 여섯 난쟁이가 살면 알맞을 듯한 가게다.
그런 구멍가게가 유년기 내가 살던 동네에도 있었다. 영수네 가게다. 그 가게는 동네에서 제일 먼저 생긴 가게다. 영수는 큰오빠 친구 이름이다. 영수네 가게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담배를 파는 작은 미닫이 창문이었다.
그 창가에서 어른이 고개 숙여 청자 주세요, 하면 주인아주머니는 미닫이 창을 드르륵 밀고는 담배를 내밀고 돈을 받았다.
그 일은 재미난 놀이처럼 보였다. 그 창문 앞에서 물건을 꼭 한번 사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기에 영영 그 미닫이 창에서 물건을 사보지 못했다.
산너머 전파사도 좋아하는 공간이었다. 동네보다 번화한 산너머 동네엔 직매소나 간장 공장, 방앗간과 목욕탕, 솜틀가게가 있었는데 그중 자그마한 전파사가 맘에 들었다.
전파사 안 등 굽은 아저씨가 일하는 책상은 늘 노란 전구가 밝은 빛을 내고 있었다. 아저씨는 두부 두모 크기의 작은 라디오를 고치곤 했는데 인두로 뭔가를 지지면 하얀 연기가 나곤 했다.
그럴 때면 내 눈에 아저씨는 마법사처럼 보였다. 나도 아저씨처럼 그 작은 책상에 앉아 뭔가를 고치고 싶었다. 어머니 심부름으로 간장 공장에 가거나 석유 사러 갈 때면 꼭 전파사 앞에서 아저씨가 하는 일을 구경했다. 어머니와 전구를 사러 갔던 적도 있었는데 들어가 보니 전파사는 생각이상으로 작았다. 작아서 더 끌렸다.
그림책 키오스크를 보는 순간 주인공 올가가 부러웠다. 한 번쯤 그런 공간에 들어가 물건을 팔고 싶었는데 올가는 그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그림책 표지 일부가 키오스크의 쪽창처럼 네모나게 뚫려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독자로 하여금 창밖에 서서 물건 사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재치 있는 디자인이다.
주인공 올가는 간이매점이라 할 수 있는 키오스크에서 살았다. 키오스크는 올가에게 일터이자 먹고 자는 집이다. 이 좁은 공간에서 잠까지 잔다는 건 조금 놀라웠다. 몸집 큰 올가가 몸을 눕혀 잠을 청하기에 키오스크는 너무도 작은 공간이었다.
-저기, 변기도 있어요. 정말 여기서 자나 봐요
어린이들은 키오스크 내부의 판매 물품과 생활 용품을 꼼꼼하게 뜯어보고 있었다. 미니어처처럼 작은 세면대, 커피포트...... 어쩌면 1인용 소파 뒤에는 전자레인지나 토스터기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
1인용 소파는 의자이면서 침대였다. 밤에는 박스 등을 놓고 다리 펼 자리를 만들 것이다. 키오스크 내부를 보자 무수한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올가가 되어 1인극을 하기에, 개인의 서사를 상상하기에 좋은 스토리다.
키오스크를 찾는 이는 많았다. 단골손님, 처음 오는 손님, 길을 묻는 사람들도 키오스크에 들렀다. 올가는 이제 사람만 보아도 뭐가 필요한지 알아챈다. 알아서 사람들 문제를 해결해 준다.
저녁엔 산책을 하며 운동이나 하면 좋으련만 올가는 일이 끝나면 기진맥진해서 소파에 쓰러진다. 그리고는 여행 잡지를 읽으며 상상 속에서 키오스크를 벗어난다. 올가가 꿈꾸는 공간은 잡지 속, 석양이 아름다운 바다였다,
올가에게 변화는 뜻밖의 사건으로 찾아왔다. 과자 훔치는 아이들을 쫒으려던 올가는 그만 키오스크와 함께 넘어지게 되고 순간 키오스크를 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올가는 일을 멈추고 산책을 해본다.
감히 키오스크를 떠날 생각을 못했던 올가는 키오스크와 움직이면서 변화를 맞이한다. 움직이고 이동할 수 있다는 낯선 경험은 올가 내면의 갈망과 용기를 꿈틀거리게 만들었다. 소망을 행동으로 구현하게 이끌었다.
올가의 발이 강아지 목줄에 발이 친진 감기면서 개천으로 떨어지고 둥둥 떠서 흘러가도 올가는 놀라지 않았다. 거스르지 않고 흘러가 보려는 것이다.
오래도록 한 곳에 붙박여 있던 삶, 더없이 성실했던 일상은 방향 없이 흘러간다. 넓은 강을 따라 강의 하구로, 바다로 흘러가는 올가와 키오스크는 이상하리만치 평온해 보인다. 올가는 웃고 있었다. 키오스크와 도달할 지점을 알고 있다는 듯이.
올가는 그토록 갈망하던 바다에 이른다. 그곳에서 꿈꾸던 바다와 놀을 보며 아이스크림을 판다.
올가는 여전히 일을 한다. 도시 속 키오스크가 아닌 바닷가 키오스크에서. 생필품이 아닌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팔며.
올가는 일을 하면서 꿈과 자유를 얻었다
올가의 다음 키오스크는 어디일까
히말라야 산장일까.....
올가를 보며 나의 키오스크를 생각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