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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과 과학의 조화, 한옥

한옥의 비밀 코드

by 윤슬

한옥은 우리나라의 자연 지형을 이용한 가장 과학적이면서 아름다운 전통 주택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한옥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갖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춥고 불편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옥은 햇빛과 바람을 잘 활용하면 여름엔 에어컨이 없어도 시원하게, 겨울엔 의외로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한옥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옥은 그저 아름답기만 할 뿐 춥고 불편한 집일까? 한옥은 과연 비과학적인 건축물일까? 최근에는 한옥의 전통미와 현대 건축의 실용성을 조합한 도심 속 신개념 한옥도 늘고 있다. 문화재로서의 전통 한옥과 도시의 현대 한옥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자연 풍경을 빌려오되 소유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반영된 한옥. 자연을 빌려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집 한옥, 미학과 과학의 조화를 이루는 한옥을 탐방해 본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면서 겨울에는 북서풍이 불고, 여름에는 남동풍이 부는 자연환경을 갖고 있다. 한옥은 이러한 자연환경에 맞춰 탄생한 건축 양식이다. 한편 한옥이라는 용어는 대한제국 시기, 정동에 많이 지어졌던 서양식 건물 즉 양옥과 구분해서 가리키는 말이다.




삼국시대 온돌방 유구

우리는 흔히 한옥이라 하면 기와를 얹고 나무와 흙

등을 이용해 집은 조선시대의 가옥 건축물을 떠올리기 쉽다. 그렇다면, 초가집은 한옥이 아닌 걸까. 조선시대 이전의 가옥들은 한옥이 아닌 것일까.

한옥은 고조선 이후부터 지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의 유구나 유물 등을 살펴보면, 이 시대의 건물에도 기와가 사용되었으며, 맞배지붕, 팔작지붕 등이 올려졌다. 또한 온돌을 사용했던 흔적도 나타난다.


조선시대에는 사대부가의 택지 면적을 축소하는 가사 제한령을 실시한다. 이 법령은 총 4차례에 걸쳐 개정됐다. 성종 시대의 4차 개정령의 경우, 대군의 집은 60칸, 왕자와 제군 및 공주의 집은 50칸, 옹주 및 2품 이상의 집은 40칸, 3품 이하는 30칸과 같은 식이었다. 하지만 법은 법일뿐, 사대부가에서는 화려한 집을 짓고자 치장을 하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왕실에서조차 이 법규를 지키지 않았다.

국가 차원에서 가옥 규모를 규제하는 관행은 신라시대에도 있었다. 이 시대에는 가옥의 규모뿐만 아니라 기와 장식, 담장의 높이, 심지어 병풍 장식까지 신분에 근거하여 차등을 두었다. 그런데 이러한 규제 사항들은 모두 상류계층에 국한되었을 뿐이다. 서민들은 10칸짜리 집이라는 제도적 상한선에도 미치지 못하는 집을 짓고 살았다.


양동마을 전경

양동마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만큼 조선시대의 전통이 고스란히 간직된 곳이다. 주산인 설창산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의 여러 능선과 그 사이 골짜기들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을이 위치하는 능선과 골짜기들은 한자의 ‘물(勿)’자와 닮았다고 하여 명당 중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 집들은 이러한 ‘물’자 형태의 지형을 그대로 살려 지었다. 그중에서도 관가정이 대표적이다.




한옥의 중첩된 지붕선

자연의 지형을 훼손하지 않고, 지형에 맞춰 집을 짓는 것. 이는 우리나라 전통건축 양식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다. 관가정의 중첩된 지붕선에서도 그러한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이에 관해 한옥 전문가인 경국대 건축공학과 정연상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렇게 합각 부분이 생기는 이유는 좌우 측 용마루 높이가 다르죠? 그래서 서까래 끝이 서로 안 만나고 올라타 있잖아요. 왜냐하면 이 땅의 높이가 경사져 있기 때문에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그 기둥의 편차를 잡아나가는 거예요, 계획적으로”


한옥의 리드미컬한 담장

한옥 건축 미학의 최고봉으로 인정받고 있는 담장에서도 그러한 요소들이 반영되어 있다.

일직선이 아니라 마치 계단처럼 만든 담에서 한옥의 ‘리듬’이 발견된다. 이러한 리듬은 땅의 형태에 의해 만들어진다. 땅의 형태를 훼손하지 않고 그에 맞춰서 담장을 놓기 때문에 담장의 선과 구조에 반영되는 것이다.



양동마을 집들의 담장은 대체로 낮다. 성인이 섰을 때 허리춤 정도의 높이다. 이는 자연 풍경을 집 안으로 들이기 위해서다.

자연 풍경을 집안으로 들인다는 것. 이것이 바로 한옥이 주는 또 다른 매력이다. 주변 아시아 국가들의 전통주택과 달리, 한옥에서는 집 안에 인위적으로 꽃을 꺾어 들여오거나 나무를 심어 자연 풍경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그저 자연이 그대로 존재하도록 두되, 소유하지 않고 빌려와 감상하는 것. 그것이 바로 차경이며, 우리 전통미의 정수다.


한옥 중정

한옥에서 풍경 감상은 창을 통해서만 하지 않는다. 중정 마당을 통해서는 하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처마와 처마가 잇닿아 만들어놓은 틀 안에서 계절이 오고 가는 것과 해와 달, 별들의 운행을 감상할 수 있다. 우주의 신비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풍경을 자연에서 빌려온다지만, 마당이 너무 휑하다. 그 흔한 꽃나무는커녕 변변한 잔디조차 깔려 있지 않다. 거기엔 보온성이 떨어지는 한옥의 단점을 상쇄하기 위한 원리가 숨어있다. 이에 관해 한옥 전문가인 경국대 건축공학과 정연상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마당이 깨끗해야 돼요. 그래야 간접조명이 이렇게 들어와요. 햇빛이 떨어져서 이렇게 비쳐줘야 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선 이 마당에 백토가 깔려야 합니다. 잔디가 깔려있으면 빛이 안 들어오죠. 그러한 과학적 계산에 의해 조성한 겁니다. 빛 조절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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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비워두는 것은, 여름을 시원하게 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마당의 공기가 열을 받아 더워지면 위로 올라가고 그 자리에 진공 상태가 만들어진다. 이 진공 상태를 채우기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데, 이렇게 되면 마당에 찬 공기주머니가 만들어진다. 찬 공기주머니가 만들어지는 것은 돌출된 지붕 처마 덕분이다. 처마 덕분에 찬 공기가 위로 올라가지 않고 마당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관가정 안채가 바로 그러한 원리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의 기후는 여름과 겨울에 양 극단을 오간다. 여름엔 따가운 햇볕 대신 시원한 바람이 필요하고, 겨울엔 찬바람 대신 따뜻한 햇볕이 필요하다. 한옥은 이러한 햇볕과 바람을 받아들여 이용하는 데 매우 뛰어난 가옥구조를 자랑한다.


한옥 처마 길이의 과학적 원리

이에 관해 다시 전문가의 말을 들어본다.

“건축가가 이제 계획을 잘해야 되겠죠. 가장 중요한 게 처마 길이에요. 여름 햇빛하고 겨울의 햇빛은 가치가 다른 거잖아요. 가뜩이나 더운 여름에 햇빛은 마루 안으로 들어오면 안 돼요. 처마 끝에서 떨어져야 돼요. 겨울에는 최대한 안으로 많이 들어가야 하죠. 그래서 과학적으로 하지 때 남중고도가 얼마인지, 동지 때 남중고도가 얼마인지 그런 태양의 각도를 고려해서 처마 길이를 빼내는 겁니다.”


이 원리를 다시 그림과 함께 살펴보자. 지붕 처마를 여름의 햇빛 각도와 겨울의 햇빛 각도 사이에 위치시켜 짓는다. 이렇게 하면 여름 햇빛은 막아서 튕겨내고 겨울 햇빛은 통과시켜 대청마루 깊숙이 들어오게 할 수 있다. 이렇게 받아들인 겨울 햇빛을 몇 배로 증폭시키는 절묘한 장치들도 있다. 바로, 창의 크기와 위치를 이용하는 것이다. 한옥에서는 창의 크기를 중간 상태로 적절하게 유지한다. 창이 너무 크면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기 때문이다.

겨울 해는 최대한 받아들이고 여름 해는 튕겨내기 위해 창의 위치도 역시 중간쯤에 낸다. 이때 동짓날 햇빛이 처마 끝에 걸린 각도를 기준으로 삼는다. 방의 깊이와 천장 높이 또한 겨울 햇볕이 방안 깊숙이 들어오도록 적당한 깊이로 만든다.


한옥은 난방에 취약하다는 편견을 단박에 해소하는 것이 바로 온돌이다. 온돌은 열 보존과 열전도에서 매우 뛰어난 난방 방식이다. 복사와 대류의 원리에 그 비밀이 있다. 더워진 공기가 바닥에서 시작해 방 안 전체를 거쳐 천장까지 올라간다. 이는 공기 회전을 촉진해 열전도율을 최대로 높여준다. 이는 물리학에서 말하는 베르누이의 정리에 해당된다.


한옥의 지붕은 보통 그 속을 흙으로 채우거나 일부를 공기층으로 두기도 한다. 혹자는 이 흙 때문에 습기가 생성돼 서까래나 지붕의 다른 나무 구조물을 썩게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흙과 공기층은 모두 단열효과가 매우 뛰어나서 한옥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다. 흙은 벽에도 사용된다. 흙벽은 여름에 시원하다. 뜨거운 햇볕이 흙 속의 습기를 증발시켜 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겨울인데, 이를 우리 조상들은 슬기롭게 해결했다. 벽 바깥쪽에 흰 회를 칠해서 햇볕을 듬뿍 받게 하고 방 안에는 한지를 발라 찹쌀풀을 입힌다. 이럴 경우 벽의 단열효과가 올라간다. 단열에서 불리한 창문은 미닫이문과 여닫이문을 함께 달면 창틀 사이에 꺾임과 막힘이 일어나서 외풍이 드나들지 못한다. 일부 한옥에서는 삼중창까지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옥이 추운 이유는 한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편견을 보기 좋게 깨 주는 실험결과가 있다. 창호지가 오히려 유리보다 단열효과가 우수한 것으로 밝혀진 것.

표에서 보는 것처럼, 유리창만 있을 때보다 한지 창호지를 덧댔을 때의 열 통과율이 더 낮다. 이때 사용된 단위 K값이란, 면적당, 시간당 1°C를 올리는 데 필요한 에너지로서 값이 작을수록 성능이 높다.


한옥의 진정한 가치는 무더운 여름에 발견할 수 있다. 에어컨이 없어도 한옥에서 여름을 날 수 있는 비결이 있다. 바로 바람길이다. 한옥에서는 앞뒤의 방문과 창문을 모두 열면 바람길이 생긴다. 이렇듯 열린 구조는 집안에 환기와 통풍을 최대로 늘려주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열린 구조는 가족 사이에도 열린 마음 즉 소통을 불러온다. 한옥은 한마디로 소통하는 집이다.


양동마을 서백당은 이러한 한옥이 특성을 오롯이 품고 있는 집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조선시대 가옥이자 사대부가의 규모와 격식을 갖춘 대규모 가옥이다. 서백당의 사랑채에는 조선시대 한옥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 이 집의 사랑채는 ‘ㅁ’ 자형 정침의 동남쪽 앞에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평면 구조는 한옥에서 흔한 형태이긴 하지만 막상 실제 개별 가옥에 가보면 완전히 똑같은 구조는 하나도 없다. 이것이 한옥의 매력이고 가옥마다의 개성이다.


구례 운조루

구례 운조루는, 1776년 영조 52년에 당시 삼수 부사를 지낸 류이주가 세운 것으로, 99칸짜리 대규모 주택이다. 조선시대 선비의 품격을 상징하는 품자형의 배치 형식을 보이고 있다.

이 집은 T자 형의 사랑채와 ㄷ자형의 안채, 안마당의 곡간채가 팔작지붕, 박공지붕, 모임지붕으로 연결되어 있는 일체형 구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경주 양동마을의 한옥들은 아직까지도 주민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주거 공간이기도 하지만 보존 가치가 높은 문화재의 성격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도시의 한옥은 전통한옥과 무엇이 같고 어떤 부분이 다를까. 도시 한옥, 또는 현대한옥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해석해야 할까.


도시의 현대 한옥

골목 가득 햇빛이 찾아오는 서울의 한 한옥마을. 한눈에 보기에도 경주 양동마을의 전통적인 한옥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개량된 흔적이 역력하다. 한옥을 원형 그대로 보존할 것인가, 현대인의 삶에 맞게 개량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사실 도시의 한옥은 문화재라기보다, 실제로 사람이 몸을 맞대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주거 공간이다. 그렇다면 춥고 불편한 요소들을 감수하며 전통을 지킬 것인가, 단점을 보완해서 살 것인가 하는 질문 앞에 직면하게 된다.

이에 관해, 한옥 전문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과거에는 60년대 한옥을 기준으로 보면 60년대 한옥은 벽돌을 썼고 단열이 아예 없었죠. 유리도 한 겹만 썼습니다. 그래서 정말 추웠죠. 하지만 지금은 벽채를 목조건축, 서양 목조건축에서 들여온 첨단의 소재들이 있습니다. 첨단의 소재들로 벽체를 구성하고 유리도 로이유리라고 하는 요즘 현대 건축에서 쓰는 아주 에너지를 절감하고 단열도 잘 되는 그런 유리로 과감하게 채택을 하고 있고요. 시스템 한식 창호도 아주 발전하고 있습니다.”


은평구에 있는 어느 단아하고 정갈한 한옥. 이 집은 전통한옥의 멋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현대 건축 재료들을 이용해 한옥의 단점을 보완했다. 전형적인 도시 한옥이다. 이 집은 바깥쪽은 전통 한옥의 요소를 살려 전통 문양을 갖춘 창을 갖췄지만 안쪽은 단열 창을, 바깥쪽은 단열 유리를 사용했다. 안쪽은 전통적인 창호지를 발라서 고풍스러운 느낌을 충분히 살렸다.


특히, 전통 한옥 특유의 중정을 이 집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중정은 1층부터 2층까지 이어져 있다. 이와 같은 중정을 만든 이유는 빛과 채광이 동시에 이뤄지는 효과를 위해서다.


이 집은 2층 구조로 되어 있다. 이는 2층이 없는 전통 한옥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2층 침실 역시 전면에 유리창과 창호지문을 이중으로 설치해 전통 한옥과 현대건축 소재의 장점을 동시에 취했다. 집안에 따로 꽃나무를 심지 않아도 북한산 풍경을 집안에 빌려오는 차경효과를 살리기도 했다.

이 집이 전통 한옥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가족 구성원이 복도를 통해서 각 방에 들어갈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 이는 가족 간에도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현대인의 특성을 살린 것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자칫하면 가족 간에 소통이 부족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요소는 넓은 창과 열린 중정을 통해 필요할 때마다 열고 드나듬으로써 해결했다.




이제 한옥은 더 이상 관광의 기능만을 가진 문화재로 머무르지 않는다. 수원화성이 당대의 첨단 재료였던 벽돌을 사용한 것처럼, 생활공간으로서의 현대 한옥 나아가 미래의 한옥은 첨단 재료나 공법, 현대인의 생활에 맞는 배치방식 등을 받아들이며 또 다른 진화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한옥은 바람과 햇빛을 즐기는 집이다. 막힘없이 사방으로 열린 문을 통해 여름엔 바람이 거닐고 겨울엔 햇빛이 방문하는 집이다. 반가운 손님 같은 바람과 햇빛을 즐길 줄 알 때 한옥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무엇보다 한옥은 소통하는 집이다. 사람과 자연이 소통하고 사람과 사람이 소통을 한다. 그래서 한옥은 살아있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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