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 어디에나 흔하게 있어서 그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들이 있다. 가구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현대 가구의 재료는 원목을 비롯하여 금속, 플라스틱, 가죽 등으로 매우 다양하지만, 옛사람들은 오로지 나무를 이용해서 가구를 만들었다. 다른 재료들을 덧대 장식했지만 기본 재료는 나무였다. 잘 만든 목가구에서는 깊고 은은한 나무 향을 맡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가구를 만든 장인의 마음까지도 느낄 수 있다. 하나의 가구를 만드는 데에도 수천수만 번의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죽어있던 나무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장인의 손끝에서 나무는 긴 세월 품고 있던 무늬와 결을 드러낸다. 여기에 오래오래 살라고 옻칠로 옷을 입히고 조개껍데기로 장식을 해준다. 때로는 겉에 금속 장식을 붙이기도 한다. 차가운 금속 안에 숨어 있었던 것일까. 마법처럼 쇠는 새가 되고 나비가 되고 꽃이 된다. 그렇게 비로소 나무는 천년을 가는 가구로 거듭나 우리 곁에 머문다.
우리나라에서 목공예품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그 명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문헌 기록과 출토된 유물로 미루어볼 때 적어도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해 우리는 나무 평상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백제시대에도 옻칠을 한 목가구를 사용했다는 것을 출토된 유물로 확인할 수 있다. 신라시대 고분에서는 식기들이 발견되었다.
우리나라 전통 목가구의 특징은 무엇일까. 조선시대에 들어 온돌이 전국적으로 보급되고 좌식 생활이 일반화되면서 크기가 작고 높이가 낮은 가구들이 일반적인 모양을 띄게 되었다. 작기 때문에 내부 공간을 오밀조밀하게 만들면서 쓰임새 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전통 목가구는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걸까?
먼저 가구로 쓸만한 나무를 골라 베어오는데, 최소한 300년에서 500년 정도 된 나무를 고른다. 나무를 베었다고 해서 바로 가구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밖에서 3년, 안에서 2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숙성기간을 거쳐야 한다. 이유가 뭘까.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박명배 소목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좋은 무늬를 가진 나무는 성질이 고약해요. 그래서 잘 뒤틀리고 휘고 갈라지고 터지는 그런 성질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목재는 수분에 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여요. 그래서 여름에 늘고, 겨울에 줄기 때문에 이런 과정을 여러 번 여러 해에 거친 자재가 이런 우리 전통 가구를 만드는 최적의 소재가 되는 거죠.”
좋은 나무로 만든 목가구는 자연의 숨결을 품고 있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이르기까지 아주 튼실한 구조로 짜여 있으며, 그 짜임과 이음의 기법이 매우 치밀하다.
우리 전통 목가구는 못을 사용하지 않고 짜맞춤 기법으로 제작한다. 그 기법이 대략 60~70 여 가지에 이른다. 이렇게 짜맞춤 기법으로 제작할 경우 못을 사용했을 때보다 지지력이 훨씬 강하다.
그런데 가구를 만들 때 나무판을 불로 지지는 과정이 있다. 나무판의 겉을 태워 무늬가 나타나도록 하는 기법으로, 소나무일 경우 ‘낙송기법’, 오동나무일 경우엔 ‘낙동기법’이라고 한다. 오동나무는 무른 부분과 단단한 부분이 있는데 무른 부분은 타서 밑으로 내려가고 단단한 건 남아 있는데 이렇게 해서 무늬가 도드라지도록 표현하는 것이 바로 낙동기법이다.
수백 년 묵은 나무 안에는 다양한 무늬가 숨어 있다. 때문에 전통 목가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무의 생리와 특성 등을 먼저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이에 관해 박명배 소목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나무속에 담겨 있는 무늬를 장인의 솜씨로써 겉으로 표현해 내는 기법 중의 하나거든요. 그래서 나무를 결 방향을 본다거나 나무속에 담겨 있는 문양을 미리 읽고 나중에 그걸 찾아냈을 때 상당한 어떤 희열감을 갖게 되죠.”
그렇게 하나의 나무를 건조하고 자르고 다듬는 고된 과정을 거쳐 가구 하나가 최종 완성되기까지는 약 10여 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그야말로 긴 세월 산고의 세월을 겪고 탄생시킨 자식 같은 작품들이니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같은 장인의 손으로 만든 목가구라 해도 형태나 문양이 모두 제각각이다. 나무가 갖고 있는 고유의 결과 무늬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무를 이용해 가구 하나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아직은 맨 몸인 가구를 보호할 수 있는 옷을 입혀야 한다.
목가구의 의상, 즉 옻칠을 입히는 곳은 따로 있다. 옻은 목가구에 입히는 천연수지 도료다. 옻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다루기 까다로운 소재다. 온도와 습도에 민감해 적절한 조건에서만 건조가 되기 때문이다. 옻나무에서 수액을 채취하고 정제하는 과정만 해도 수개월이 걸린다. 옻을 칠하고 건조하기를 여러 번 반복하는데 이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목재를 보호하고 광택을 낼 수 있다. 보기엔 단순해 보이지만 옻칠은 대략 34가지의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고된 작업이다. 그야말로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화학 재료로 칠을 하면 반사가 되는 빛이 나지만 옻은 깊이 있는 질감이 나는데 여러 번 덧칠할수록 깊고 고급스러운 윤택이 난다.
옻칠이 다 된 후에는 나전에 문양을 그리고 오려서 이것을 가구에 꾹꾹 눌러 붙인다. 나전 혹은 자개란, 조개껍데기나 거북 등껍질 등을 칠기에 붙인 것을 말한다. 이때 껍질을 오리고 갈아서 작게는 1mm 미만의 조각을 수천에서 수만 개 만들고, 이를 일일이 붙여 원하는 문양을 만든다. 옻칠 과정만큼이나 나전칠기 제작 과정도 인내심과 예술혼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나전칠기는 고려시대에 완성된 기술로, 칠기에 장식을 하는 기법은 중국이나 일본에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기법과는 다르다. 우리는 칠기에 장식품을 붙이는 데, 중국은 겹겹이 옻칠을 한 후에 이것을 파내 문양을 표현하는 조칠 기법을 사용한다. 이와 달리 일본은 옻칠로 무늬를 그리고 굳기 전에 금이나 은가루 등을 뿌려 칠기 표면에 붙인다.
옻칠을 한 목가구에 나전 외에 장식을 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바로 금속을 이용하는 것. 이를 ‘두석’이라 한다. 엄밀히 말하면, 두석은 장식이 아니라 장석이다. 단지 밋밋한 목가구에 장신구를 붙여 화려함을 더하기 위한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구의 기능을 보강하기 위해 붙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문을 열고 닫는 기능, 내용물을 보호하는 잠금장치 기능, 이동을 위한 손잡이 등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이렇듯 여러 장인들의 솜씨가 어우러져야 비로소 하나의 목가구가 완성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목가구들에는 어떤 종류가 있으며 또 우리 조상들은 이를 어떻게 사용했을까?
우리나라 전통 목가구는 거처하는 공간에 따라, 성별에 따라, 그리고 용도에 따라 구분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반닫이다. 반닫이는 앞면의 반만 여닫도록 만든 수납용 목가구를 일컫는다. TV 사극에서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것이 바로 반닫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반닫이는 각 지역마다 높낮이나 재질과 형태, 내부구조, 장석 꾸밈 등 그 스타일이 지역마다 각각 다르다.
먼저, 평안도 반닫이는 장석의 크기가 크고 화려하며 외형은 방형, 나비, 꽃 등의 형태를 단순화했다. 강원도 반닫이의 특징은 테두리가 바깥으로 돌출되어 있고 안쪽은 푹 들어가 있다. 그래서 마치 액자처럼 보여서 액자형 반닫이라고도 한다. 경기도 반닫이는 우아하며 여러 지역에서 생산된 반닫이 가운데 가장 세련된 것으로 평가된다. 특징은 장석에 비교적 복잡한 문양이 투각 장식된 것이 많다.
충청도 반닫이는 소나무와 오동나무를 사용하고 장석의 수가 적은 편이며 경첩의 모양은 약간 넓은 제비초리 형태가 많다. 경상도 반닫이는 세로에 비해 가로의 폭이 넓어서 전체적으로 낮아 보이며 나무의 질감을 살린 것이 많다. 장석으로는 매미형, 부엉이형, 박쥐형, 제비초리형으로 잘라 정교하게 투각한 것들이 많다. 전라도 반닫이는 나뭇결을 잘 살린 것이 특징이며 내부에는 서랍이 세 개 달린 경우가 많다.
이처럼 지역별로 반닫이의 특징이 달랐던 이유는 뭘까? 이에 관해 문화재청 김미라 위원은 이렇게 말한다.
“기후와 큰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기후에 따라서 나무가 성질이 다르잖아요. 그런 성질에 따라서 나주반 같은 경우에는 휘는 성질이 강한 거죠. 나주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가 성질이 강하기 때문에, 판 위에 변죽을 대서 여러 조각을 붙여 만드는데 비해서 해주반이나 통영반처럼 조금 따뜻한 기후, 기온이 순한 곳에서 자라는 나무는 세지 않으니까 통판을 사용해서 만드는 경우 이렇게 구조적인 차이를 보이기도 하고 반닫이 같은 경우에는 지역적 특성이 장식에서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철의 생산이 많은 지방에서는 철을 조금 많이 사용해서 두껍게 붙이거든요.”
말하자면, 그 지방에서만 나는 특산 목재와 천연자원, 지방 특유의 생활양식 등에 따라 각기 다른 지방색을 띈 가구들이 제작된 것이다. 지역뿐만 아니라, 사랑방과 안방 가구들이 각기 다른 기능과 특징을 갖고 있다. 이 또한 우리 전통 목가구만의 독특한 점이다.
예를 들어, 선비들의 공간인 사랑방에는 문방 가구들이 발달했다. 글을 읽고 쓰기 위한 서안을 비롯하여 지필묵을 보관하기 위한 연상, 책을 보관하는 책장과 책궤, 각종 서류를 보관하던 문갑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사랑방 가구는 서책을 올려놓고 읽는 책상 즉 경상이다. 그런데 경상은 양쪽 끝부분이 위로 살짝 휘어져 있다. 이유가 뭘까. 조선시대에는 주로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를 읽었는데, 두루마리를 펼쳤을 때 상의 끝부분으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경상의 다리는 주로 대나무를 사용했는데 이는 선비의 지조와 기개를 상징한다.
여성들의 공간이었던 안방 가구들은 대개 의복을 넣어두는 장과 농이 주류를 이뤘으며 그 외에 물건들을 보관하는 문갑이나 머릿장, 몸단장을 위한 빗접, 좌경 등이 있다.
지금은 장롱을 통칭해 사용하지만 옛날에는 장과 농을 구분해 사용했다. 각 층이 분리되는 것은 농이며 분리되지 않는 것을 장이라 한다. 농은 쌓아서 사용하기도 했지만 사용자의 상황에 따라 나란히 두고 사용하기도 했다.
여성들의 공간인 안방 가구들은 대개 문양이 화려하다. 여성 특유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조선시대에 외출이 자유롭지 않았던 여성들을 위해 꽃과 새, 나비와 같은 자연 문양들을 새겨 넣었기 때문이다. 다산을 상징하는 석류를 새겨 넣기도 했다. 가장 많이 사용했던 것은 나비 모양인데 여기에도 의미가 있다.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마치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가구를 사용하는 여성을 꽃으로 여겼기 때문에 남성을 상징하는 나비 장식을 붙인 것이다. 여성을 남성이 찾아와서 선택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여겼던 조선시대였기 때문에 이러한 장식을 붙였겠지만, 21세기인 지금에는 흔쾌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다.
부엌 가구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소반이다. 소반으로는 주로 가볍고 습기에 강한 은행나무, 나뭇결이 아름다운 느티나무가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소반이 발달한 이유는, 우리 조상들은 모두 개인상에서 밥을 먹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손님에게도 개인상을 차려주었다. 형태는 8각, 12각, 사각, 원형 등으로 다양하고 다리 모양도 호랑이 다리라고 하는 호족반이 있고 개 다리라고 하는 구족반 등으로 구분된다.
특이하게 소반도 반닫이처럼 지방마다 모두 그 형태가 다르다. 특히 전남 나주, 경남 통영, 황해도 해주는 예로부터 소반으로 이름난 지역으로 제작 기술이 뛰어났다.
나주소반은 잡다한 장식이나 화려한 조각 없이 자연스러운 나뭇결을 그대로 살려 간결하며 부재 간의 짜임새가 치밀하게 결구되어 튼튼한 것이 특징이다.
통영소반은 기본적인 형태가 단조로운 편이지만 상판과 운각에 아름다운 조각 장식이 있고, 다리를 더욱 견고하게 하는 지지대가 있어 구조가 매우 단단한 것이 특징이다.
대개 소반의 다리가 4개로 구성되는데, 해주소반의 다리는 넓은 판각 2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름다운 투각 장식을 했다. 하지만 화려한 장식과 달리 내구성이 약한 결점이 있다.
때로는 은은하고 소박하게, 때로는 화려하게, 사용하는 이의 개성과 멋이 살아있는 전통 목가구는 단지 박물관의 전시물로만 머물러 있지 않다. 각 분야의 장인들이 전통을 유지하는 가운데 현대적으로 재해석해가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길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