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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얼굴, 장승

by 윤슬

죽은 나무가 새로운 생명을 입는다. 나무는 얼굴과 함께 밝은 눈을 얻고 나면 비로소 마을의 수호신이 된다. 이제 장승은 긴 세월 우뚝 서서 마을을 지켜줄 것이다. 가장 한국적이고 토속적이며 해학적인 표정을 가진 마을의 수호신, 장승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알아본다.


죽은 나무에 부여된 신성, 동시에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는 장승은 마을 입구에 서서 온갖 재앙으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일반적으로 장승이란, 나무나 돌로 만들어 얼굴을 새기고 몸통에 그 역할을 나타내는 글을 써넣는다. 대개 이러한 장승은 홀로 또는 남녀 한 쌍으로 서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종종 솟대나 당산나무, 서낭당 등과 함께 세워져 마을을 수호한다.


옛날, 마을이 생겨나고 농경 생활이 시작되면서 마을과 마을 사이에는 많은 문제 또한 생겨났다. 소유와 경계의 문제, 그리고 외부로부터 오는 질병과 침탈의 문제가 그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대한 나무나 돌을 가져다 사람의 형상을 새기고 마을 입구에 세워놓기 시작한다. 이것이 장승의 기원이다.


장승에는 그 다양한 표정만큼이나 지방별로 다양한 이름이 있다. 1400년대 말, 조선 중종 시대 어문학자 최세진이 지은 한자 교습 책 <훈몽자회>에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처음엔 ‘댱승후’라고 했는데 이후 댱승으로 그리고 언어가 계속 변화하면서 마침내 장승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장승은 장신, 장생, 장승 이렇듯 여러 형태로 불리기도 하는데 전라도 지역에서는 벅수라 부르고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도 벅수 또는 벅시라고 부른다. 그 외에도 수살모, 수살막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마을마다 그 용도에 따라 다르게 부르고 있다.


우리나라 지방 어디를 가나 장승이 없는 마을은 거의 없다. 장승은 그 기능에 따라 생김새가 다르기도 하지만 지리적 위치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주요 종교의 성상인 불상이나 성모상은 하나의 정형화된 모습을 갖고 있다. 이와 달리, 장승은 마을마다 조금씩 다른 형상을 띄고 있다. 대개 북방형은 눈이 찢어지고 코가 길며 표정이 무서운 편이다. 반면 남방형은 눈이 둥글둥글하고 코가 주먹코처럼 퍼졌으며 표정은 해학적이다.


분명한 점은, 우리나라 장승은 우리네 얼굴을 닮았다는 사실이다. 이에 관해 장승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한 전 대전시립박물관 류용환 관장은 이렇게 말한다.


“장승을 만든 제작자는 대개 마을 사람들이 되겠는데, 결국 마을 사람들이 뭘 보고 장승을 만들겠습니까. 자신이나 주변 이웃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만들다 보니 그렇게 나름대로 푸근한 모습의 장승이 만들어졌는데, 하지만 그 장승의 본래의 기능을 다 하기 위해서 눈은 퉁방울같이 생겨가지고 위엄을 두었죠.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이 백성들 민중들과 함께하는 그러한 친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토템폴

우리나라 장승과 흡사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토템폴이라는 것도 있다.

주로 가문의 상징이나 전설, 이야기의 등장인물 등 문화적 전승에 근거하여 조각된 것으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장승으로 볼 수 있다.

장승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시베리아나 몽골 등지에 널리 퍼져 있던 토테미즘 문화가 민족 이동을 따라 한반도까지 전파됐다는 설이다.


흔히 장승이라고 하면 나무로 된 것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역에는 돌장승도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 제주도 돌하르방도 일종의 돌장승이다. 나무로 만든 장승은 세월이 지나면 비바람이나 눈으로 인해 자연히 썩기 때문에 자주 새로 만들어서 세워야 한다. 하지만 돌장승은 한 번 만들어놓으면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보니 도시 같은 곳에서는 주로 돌장승을 세워놓았다.


그렇다면 장승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안동 하회마을에서는 다양한 모습의 장승들이 지금도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다.

이 마을에서 30년 넘게 장승을 만들고 있는 목조각장 김종흥 선생. 마을이 도시화되고 산업화되면서 많은 장승들이 뽑혀 나갔다. 이 모습이 안타까웠던 그는 죽어가는 장승 문화를 되살려내기 시작했다.


그가 장승 하나를 만들어 세우는 과정은 그야말로 도를 닦는 것과 다름없다. 장승으로 쓸 나무를 베러 가기 전 치성을 드리는 것은, 그 도의 첫걸음이다. 장승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매우 깨끗한 나무를 골라야 한다. 때문에 정갈한 마음으로 새벽에 일어나 찬물로 목욕 재계하고 정화수를 떠놓고 깨끗한 마음으로 기도를 한다. 그렇게 산에 올라 나무를 고른다. 이때 나무라고 해서 다 장승목이 되지 않는다. 주로 소나무나 밤나무 중에서 목질이 단단하고 옹이가 없고 곧게 자란 나무를 사용한다. 나무의 종류만큼이나 어느 산, 어떤 곳에서 장승목을 베어내야 할지도 고려해야 한다. 깊은 산중 양지바른 곳에서 개소리나 닭 소리를 듣지 않고 자란 나무를 선택한다.

장승을 조각할 때는 나무의 머리 부분이 아니라 뿌리 부분에 장승의 머리를 조각한다. 이유가 뭘까. 장승은 먼저 태어난 부분이 머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밑둥치를 위로하게 되면 나무 습성상 물을 빨아들이지 않고 뱉어낸다고 한다. 그래서 더 오래간다.

조각이 끝난 장승에는 그 역할에 맞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저 죽은 나무토막에 불과했던 사물에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다. 이름까지 얻었지만 아직 무표정한 장승의 얼굴에 마지막 화룡점정, 퉁방울 같은 커다란 눈동자를 그려준다. 장승에 눈을 그려 넣는 것은 세상을 밝게 보고 판단하라는 뜻이다. 이때 장승에 이름을 쓰고 눈을 그려주는 일은 마을에서 특별히 선정된 사람이 한다. 마지막으로 장승에 오색띠를 둘러준다. 이제 장승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신성을 부여받았다. 장승제는 대개 새로 장승을 만들어 신성을 불어넣을 때 그리고 해마다 음력 정월 열나흗날에 지낸다.


돌장승

장승이라고 해서 다 같은 기능과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장승에는 그 생김새와 이름만큼이나 다양한 기능이 있다. 가장 흔한 것은 바로, 마을을 수호하는 기능. 주민들은 대개 역병이나 재앙, 흉년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장승을 세웠다. 그래서 마을 초입에 세우는 경우가 많다.

많은 장승들이 세월과 함께 그리고 도시화의 물결과 함께 사라져 갔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네 시골 마을이나 지방 소도시에 가면 마을 입구 어딘가에 장승 하나씩 있게 마련이다.


장승의 두 번째 기능은 마을의 방위를 수호하는 것이다. 넓은 평야지대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의 경우, 사방이 모두 트여 방어능력이 없다. 동서남북과 중앙을 합한 오방을 무엇으로든 막아야 한다. 주변에 높은 산이 없는 이 마을은 장승에 동서남북 중앙의 잡귀를 쫓는다는 뜻의 문구를 써넣었다. 방위 수호 기능을 부여한 것이다.

장승은 마을과 마을의 경계를 표시하거나 이정표의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다. 옛 농경사회에서 마을의 소유권을 분명히 하고 침탈을 막기 위해서는 확실한 경계 표시가 필요했던 것이다.


장승은 아들을 낳기 원하는 여인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기자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옛 여인들에게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인생의 운명을 결정짓는 일이었다. 그만한 기쁨이 없었고 그만한 족쇄가 없었다. 그래서 돌로 만든 아기 장승을 만들어 세우기도 했다. 아들 낳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했던지 옛 여인들은 돌장승의 코를 갈아 마시기도 했다. 장승의 코가 훼손된 것은, 돌가루까지 마셔야 했던 여인들의 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솟대

한편 장승과 함께 솟대를 세우기도 했다. 솟대는 대개 오리 형상으로 만든다. 왜 많은 동물 중에 하필 오리를 신앙의 대상물로 삼았을까. 전문가의 설명을 들어보자.


“대부분 새들은 물에 들어가면 죽지 않습니까. 따라서 수륙에서 생활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오리의 어떤 영험한 기능 때문에 그 장승의 기능을 보완하는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농경사회기 때문에 물이 상당히 중요했었거든요. 이 중요한 물로 조화시키는 수신의 보조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또한 이 오리도 새의 일종이기 때문에 땅에서 하늘을 향해서 날아가거든요. 그래서 인간들의 소원을 천상으로 전하는 그러한 메신저 역할도 한다고 이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장승은 오래되어 썩었다고 해서 함부로 쓰러트리거나 훼손하지 않는다. 한때 신앙의 대상이었던 만큼 자칫하면 화를 당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대개 새로 만든 장승과 함께 세워두거나, 장승 무덤이란 곳에 고이 모셔둔다. 한때 마을의 수호신으로서 길흉화복의 소원을 들어주었던 장승. 이제는 현대사회의 뒤안길에서 미신이란 이름으로 외로이 버티고 서있다.


장승은 한국인의 얼굴을 닮았다. 때로는 세상의 온갖 악한 것을 막아내기 위한 무서운 표정으로, 때로는 한없이 푸근하고 익살맞은 표정으로, 장승은 여전히 마을 어귀에 묵묵히 서서, 가슴 아픈 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기쁜 이의 노랫소리를 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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