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전통 정원에 숨은 뜻

경계를 허무는 아름다움, 한국의 정원

by 윤슬

자연과의 경계를 허물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한국의 전통 정원. 우리나라 전통 정원에는 지나친 기교와 인위적인 것을 싫어하는 옛 선비들의 마음이 투영되어 있다. 주어진 자연 안에 은거하며, 생의 한 순간을 노래하던 곳. 한국의 전통 정원들을 탐방해 본다.


현존하는 전통 정원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조선시대 정원. 그중 낙향한 선비들의 별서정원이 대표적이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관직에서 물러나면 세속의 욕심에서도 물러났다. 그들은 고향에 돌아와 기울어가는 노년의 생을 사유와 성찰 속에 마무리했다.

이때, 그들은 인위적으로 풍경을 만들어내는 대신, 대자연의 풍경을 그저 정원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래서 우리나라 전통 정원에는 자연과 정원, 정원과 자연의 경계가 따로 없다.

조선시대 정원에는 단지 외형의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철학과 사상이 깃들어 있다. 선비들이 속세의 욕망을 뒤로하고 은일한 데서는 유교 사상이, 정원 건축물에 포함된 당호나 편액의 내용 등에서는 성리학적 요소가 엿보인다. 무위자연 속에서 자연의 섭리를 따라 사는 선비의 모습에서는 도가사상과 신선사상을 엿볼 수 있다.

옛 선비들은 정원에 사소한 경물 하나를 갖다 놓더라도 거기에 상징과 의미를 부여했다. 정원 가운데 놓은 평범한 바위. 선비들은 이러한 바위에서도, 변치 않는 단단한 지조, 엄격한 태도 등을 떠올렸다.


명옥헌 방지원도형 연못


특히, 정원 한가운데 조성한 연못에는 우리 조상들의 우주관이 내포되어 있다. 사각형의 연못 틀은 네모난 땅을, 가운데 둥근 섬은 하늘을 의미한다. 이를 '방지원도형' 연못이라 한다.


우리나라 전통 정원은 주변 동아시아 국가들의 정원과 비교할 때 그 특징이 확연히 드러난다.





중국 전통정원 '여음산방'

중국정원의 경우, 담장에 뚫린 몇 개의 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정원의 경관이 눈에 들어온다. 문과 담과 숲의 경계가 없어, 딱히 입구랄 것이 없는 우리나라 정원과 비교된다. 중국은 여러 가지 감상용 경물들을 정원 안에 진열해 놓는다. 마치 소도구들을 배치해 놓은 연극 무대처럼.




료안지-horz.jpg 일본 교토의 료안지 사원의 석정과 은각사 정원


일본정원은 산, 냇물, 바다, 숲 등 자연의 형상을 축소해 정원 이곳저곳에 한 폭의 그림처럼 구성한다. 료안지를 비롯한 일본의 사찰 정원만 보아도 군더더기 없는 정물처럼 경치를 구성한다. 축소지향적인 일본문화의 특성을 살려, 정원의 나무들은 키가 너무 크면 잘라서 보기 좋게 모양새를 낸다.

일본 교토 여행 당시 이러한 특징들이 고스란히 투영된 정원들을 보았다. 단정하게 깎고 다듬어 마치 한 편의 설치예술 작품처럼 조성해 놓은 정원들이 우리나라 정원 풍경과 너무 달랐다. 어느 정원이 더 아름답다고 비교 우위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우리와 일본인들의 미적 정서가 다른 것이리라.


창덕궁 부용정

창덕궁 후원과 아름다움의 선두 자리를 겨루는 왕실 정원이 있다. 경복궁 향원정. 특이하게도 연못 가운데 섬에 지은 정자가 육각형이다. 향원정은 미려하게 다듬은 정자의 각 부분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뤄, 그 비례감이 탁월하다.


소설 춘향전의 무대로 잘 알려진 광한루원은 허구의 인물인 춘향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조선시대 지방 관아에서 백성들을 위해 조성한 관아원림이다.


윤선도 원림


광한루 외에도 우리나라 전역에는 유명한 관아원림들이 현존해 있다.


보길도에 있는 윤선도 원림은 가히 무릉도원의 경치를 자랑한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자 이에 절망한 고산 윤선도. 그는 속세를 떠나, 보길도에 들어와 이곳에 정원을 꾸민다. 윤선도는 이 아름다운 정원에서 ‘어부사시사’, ‘오우가’ 같은 절창을 남겼다.



명옥헌


담양은 유독 조선시대 별서정원이 많기로 유명하다. 특히 명옥헌은 배롱나무로 유명하다. 한여름 쏟아지는 햇빛 아래, 연못 위로 배롱나무 꽃비가 흩날리면, 마치 천상의 세계를 엿보는 듯하다.


촬영팀과 함께 내려가 이 정원을 처음으로 본 순간,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마치 선계에 와 있는 것 같았다.


담양에 가면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 있다. 어디가 산이고 어디가 정원인지 모를, 경계 없는 정원이 무등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소쇄원. 조선시대 별서정원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소쇄원은 조선 중종 때의 선비 양산보의 개인 정원이다.

소쇄원

양산보의 나이 열다섯 되던 해, 어린 선비는 큰 뜻을 품고 한양으로 상경해 조광조의 문하에 들어간다. 당시 조광조는 중종의 신임을 받아 개혁 정치를 펼쳤으나 실패하게 된다. 이후 그는 화순으로 유배를 당해 죽게 된다.

조광조의 제자들도 모두 절망감을 안고 스승 곁을 떠나고 양산보도 쓰라린 아픔과 슬픔을 안고 고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리곤 무등산 자락 아름다운 계곡에 정원을 짓고 은거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이 아름다운 정원에 시인 묵객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은 함께 시류의 덧없음과, 청빈한 삶을 노래했다.

그 손님들 가운데, 하서 김인후라는 선비가 있었다. 소쇄원 풍경에 흠뻑 반한 그는 무려 48편의 시로 소쇄원에 대해 노래했다. 이른바 소쇄원 48영이다.


소쇄원 오곡문

소쇄원은 설계를 한 듯 안 한 듯 자연스러운 공간 디자인이 무척 경이롭다. 특히 이곳에는, 주어진 자연을 그대로 활용한 한국정원의 특징을 단번에 보여주는 구조물이 있다. 오곡문. 마치 다리 위에 담장을 지은 듯, 담장 밑에 다리를 놓은 듯 절묘한 조경기법이 숨어 있다. ‘오곡’이란 바위 위로 흐르는 물이 다섯 굽이가 돼서 흐른다는 의미이며, 그러한 장소에 문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 담장의 조경은 특별한 기법을 사용했다. 담장의 안팎을 나누기도 하고 아래로 흘러들어오는 물을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만들었다. 애초에 무등산 계곡에서 내려온 물의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 돌로 다리를 만들고 그 위에 담장을 놓은 것이다. 참으로 기발한 디자인이다.


제월당-horz.jpg 제월당과 소쇄원 48영 액자


소쇄원 제일 높은 언덕에 자리한 제월당. 이곳 천장에는 소쇄원 48영이 모두 새겨진 현판이 있다. 제월이란, 비가 갠 후의 달이라는 뜻. 옛 선비들은 맑고 깨끗한 상태를 표현할 때 제월이란 말을 자주 썼다. 양산보와 그의 벗들은 이곳에 앉아 마음을 맑게 다스리며 소란스러운 세상의 시름을 잊었으리라.


제월당 아래 자리한 광풍각. ‘비 개인 하늘에 뜬 햇빛’이란 뜻이다. 광풍각 한가운데는 방이 있다. 호남 지방이나 영남 지방의 정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이다. 방이 없는 경우에는 주변 경관을 즐기거나 휴식을 취하는 기능이 주가 된다. 반면에 방이 있는 정자에는 사람들이 와서 머문다. 실제로 이러한 방에서 후학을 교육하는 장소로 쓰였다. 선비들은 세상을 등지고 앉아, 신선놀음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이곳에 앉아 후학을 길러내,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했다.


식영정 부용당

담양에는 소쇄원 외에도 조선시대 전형적인 별서 정원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사문학의 산실로 유명한 곳이 있으니, 식영정이다.


식영정의 주인 임억령은 서른 살 되던 해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나갔다. 하지만 그가 금산군수로 재직할 당시 을사사화가 일어난다. 그의 동생 임백령이 사화에 연루되자, 그는 벼슬을 모두 내려놓고 낙향한다. 임억령이 시문에 뛰어난 대가라는 소문을 듣고 여러 고을에서 당대의 시인 묵객들이 찾아들었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송강 정철. 이곳에서 그는 절창을 남긴다. 바로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표작 ‘성산별곡’이다. 성산별곡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떤 지나가는 나그네가 성산에 머물면서, 서하당 식영정의 주인아 내 말을 들어 보소. 인간 세상에 좋은 일이 많건마는, 어찌 한 강산을 갈수록 낫게 여겨, 적막한 산중에 들어가 아니 나오시는가.”

성산은 식영정의 뒷산인 별뫼를 뜻하는 말. 그 뒷산에 성산별곡을 새긴 시비가 있다. 식영정의 주인은 임억령이었지만 이곳에서 송강 문학이 그 화려한 꽃을 피운 것이다. 식영정이란 이름은 장자의 제물편에 나오는 한 바보의 우화에서 비롯되었다.

자신의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바보가 있었다. 그늘 속으로 들어가면 저절로 그림자가 사라질 텐데, 그걸 모르고 자기 그림자를 떨쳐내려 발버둥 치다 끝내 쓰러지고 만다는 이야기다. 이때 그림자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뜻한다. 그러므로 식영이란,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을 떨쳐버리고 머물러 쉰다는 뜻이다.


그렇게 옛 선비들은 세속의 부귀영화에 미련을 버리고 자연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고요히 다스렸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으로 남았다.

우리 옛사람들은 초가 한 칸을 지어도 자연을 거스르지 않았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도 함부로 베어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배려해 집을 지었다. 그렇게 우리 옛 정원들은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풍경이 되었다.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12화흥선대원군은 정말 파락호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