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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 2: 뜻밖의 과학, 풍수

by 윤슬

풍수는 오랫동안 미신 혹은 민간신앙의 영역쯤으로 치부되어 왔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사실 풍수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쌓여 만들어진 생태학이며 환경과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풍수란, 자연의 에너지와 자원을 실생활에서 올바로 이용하기 위한 노력과 지혜의 산물인 것이다.

우리나라 전통 마을들은 대개 비슷한 공간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든든한 주산과 좌우로 연결된 산울에 둘러싸여 있는 마을, 그 앞의 연못, 그리고 수구막이 숲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때 산을 통해서는 물과 목재, 산나물 등을 공급받고, 마을 앞의 연못은 각 가정에서 흘러나온 오수를 정화한다. 수구막이 숲은 마을을 보호하고 주민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한다.


양평군 전원마을. 현대에도 배산임수를 따진다.(사진출처 연합뉴스)

풍수에서 최고의 명당으로 인정받는 배산임수 지형은 사실 매우 과학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이유를 하나씩 살펴보자.


경기도 양평군 보룡리 마을. 이 마을은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을 갖춘 곳이다. 발달된 사신사 지형 즉 현무와 주작, 좌청룡과 우백호가 형성되어 있다. 지형은 마을 안에 물과 물질을 모아줄 뿐만 아니라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이에 관해 풍수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서울대 지리학과 박수진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풍수에서 이야기하는 좌청룡 우백호 같은 경우에는 물에 의해서 침식되고 남은 그 산줄기들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고요. 이런 산줄기들은 사실은 이 주산에서부터 흘러들어오는 물이나 다양한 토양 물질들 같은 것을 사실 이렇게 명당으로 모아 준 어떤 그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좌청룡 우백호 지형은 경복궁을 중심으로 한 서울에서뿐만 아니라 작은 마을 단위 그리고 작은 무덤 등에서도 발견된다. 그리고 이러한 지형은 산줄기를 따라 형성되기도 하지만 산골짜기마다 똑같은 모양으로 형성되기도 한다.


풍수의 사신사 현대 지리학에서 말하는 프랙탈 지형과 유사하다.

박수진 교수는 좌청룡 우백호에 관해 현대 지리학적 관점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사실은 이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라고 하는 개념이 지형학적 용어로는 유역 분수계를 의미하는 어떤 그런 용어입니다. 그런데 이 현대 자연과학에서 잘 알려져 있는 프랙탈(fractal)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큰 그림 속에 작은 그림들이 똑같은 모양의 그림들이 계속 이렇게 나타나는 어떤 그런 걸 우리가 프랙탈이라고 그러는데, 이 좌청룡 우백호 풍수에서 이야기하는 이 사신사라는 거 자체가 정확하게 현대 물리학이나 현대 지형학에서 이야기하는 그 프랙탈의 특징을 풍수에선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이렇게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이러한 사신사 지형은 현대 지리학 용어로는 유역 분지라고 하는데 이는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사신과 지형과 유역 분지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다시 박수진 교수의 설명을 들어본다.

“풍수에서 얘기하는 사신사 지형이 우리가 얘기하는 유역과 굉장히 다른 것들은 관계성, 그 안에서 물들이 어떻게 흘러가고 기후적인 특성이 어떻게 달라지는 것들을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로 보고 그것이 어떻게 연계되어 있는지를 굉장히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그것을 단순하게 자연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어떻게 연계되어 있는지, 기라는 것을 통해서 인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 상당히 많은 강조를 하고 있는 것 같고요.”


한편 수구 즉 물이 나가는 출구는 마을 안의 물과 물질을 밖으로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 그럼으로써 마을 내부에 영양물질이 풍부한 농경지가 만들어진다. 또한 지하수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역할도 한다. 그럼으로써 가뭄을 이겨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낸다.

풍수에서는 주산 혹은 진산이 마을 뒤쪽에 듬직하게 자리 잡고 앉아 마을을 보호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주산은 차가운 북서계절풍을 막아주고 마을 안으로 물과 물질 그리고 각종 산림자원을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한다.


풍수에서 바람을 막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득수, 즉 물을 얻는 일이다. 이때 하천의 형태가 직선보다 마을을 감돌아 구불구불 천천히 흐르는 것을 선호한다.

현대 지형학에서도 물이 구불구불한 하천 길을 따라 천천히 흘러가는 속도를 중요하게 여긴다. 물의 속도가 빨라지면 물의 힘이 세지고 그렇게 되면 하천 바닥이 침식되고, 흙 속의 영양분들이 빠지게 된다.

그래서 하천을 구불구불하게 만들어 물의 속도를 낮춰주거나 이것이 어려울 때는 연못이나 조그만 저수지 같은 것을 만들어 물이 빨리 흘러나가지 않도록 한다.

한편, 현대 자연지리학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물의 순환이다. 바다에서 수증기가 증발해 구름이 되고 구름이 산으로 옮겨가 비가 되어 내리고 다시 빗물은 지하수가 되거나 강물이 되고 강물이 다시 바다로 흘러가 증발되는 순환이 바로 그것이다.

AD 277년, 당나라 때의 풍수 전문가 곽박이 쓴 <금낭경>이란 책이 있다. 풍수사상서의 고전이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풍수의 원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명재고택(사진출처: 명재고택 홈페이지)

“생기의 원천은 음양의 기인데, 이 음양의 기가 트림을 하듯 뿜어 나오면 바람이 되고 바람이 올라가면 구름이 되고 구름이 내려오면 비가 되며 비가 땅 속으로 들어가면 생기가 된다.”

표현은 많이 다르지만 현대 자연지리학에서 말하는 물의 순환 원리와 매우 흡사하다.


300년 전통의 논산 명재고택은 풍수적으로 완벽한 명당이다. 배산임수를 지켜 남향으로 지은 집은 겨울에도 안팎이 따뜻하다. 뒷산에서 흘러내려온 물을 가둔 집 앞의 연못은 여름의 후텁지근한 바람의 온도를 낮춰준다. 연못의 수구를 통해 흘러나간 물은 들판의 곡식을 여물게 한다. 윤 씨 집안의 선영 또한 철저하게 배산임수의 원칙을 지켜 조성되었다. 반원형으로 둘러싸인 산자락 아래, 양지바른 둔덕에 누운 무덤들. 저수지 너머로 보이는 안산 등. 전형적인 음택풍수를 지켜 조영된 곳이다.


그런데 풍수를 미신이라는 편견을 갖고 바라보게 하는 이론이 있다. 바로 동기감응론. 돌아가신 분과 후손이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명당에 무덤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실 이 이론은 현대 환경학에서 말하는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풍수 이론 중 동기감응론에 관해 박수진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환경학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인데 그 개념을 자세히 보면, 내 아들과 딸이 살아갈 필수적인 자연환경을 우리가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발전을 이뤄야 된다 이런 개념이거든요. 그러니까 사실 풍수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내가 어떤 행위를 함으로 해서 그것이 내 자손들이 복을 받는다는 개념을 쓰고 있거든요.”

안동 하회마을을 '행주형'이라고 한다.(사진출처: 하회마을 홈페이지)

풍수 사상 중 가장 흥미로운 이론 중 하나는 형국론. 이 또한 풍수를 미신적 요소로 보이게 한다. 이러한 형국론을 과학적인 틀로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안동 하회마을은 물건을 가득 실은 배 모양 즉 ‘행주형’이라고 한다. 그래서 옛날부터 마을에 우물을 파지 않았다. 만일 우물을 팔 경우 배에 구멍이 생겨 침몰하게 된다고 믿었다.


그 이유에 관해 원광 디지털대학교 조인철 교수의 설명을 들어본다.

“그런 경우에는 주로 이제 토질이 사질토일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만약에 우물을 어느 집에서 팠다. 그러면, 산지에선 지하수가 수맥이 각각 다를 수 있지만, 이런 행주형에서는 지하수를 파게 되면 서로 물이 다 통하게 된단 말이죠. 그런데 각 집에서 이러면 예를 들어서 빈 집도 생길 수 있고, 그런 우물이 위생 관리가 잘 안 될 수 있잖아요? 이건 ‘경험 과학적’으로 이런 지형에선 우물을 파지 말라고 한 거죠.


박수진 교수는 이에 관해 더 이론적인 설명을 한다.

”사질토양이 물에 이렇게 포화되어 있어서 그 물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는데 사실 지형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면 퇴적층이 물로 포화가 돼 있다가 그 물을 우물이나 아니면 다른 형태로 해서 뽑아버리면 전문 용어로 Soil Collapse 즉 토양 붕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아주 일시적으로 단기간에 부피가 확 줄어드는 그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


KakaoTalk_20250726_021739776_05.jpg 체코 남부 체스키 크룸로프의 지형도 하회마을과 흡사하다.


올여름 나는 체코 여행을 다녀왔다. 체코 남부에는 ‘체스키 크룸로프’라는 마을이 있는데 성 위에 올라가서 내려다본 마을은 환상적이었다. 감탄사를 그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마을의 형상이 안동 하회마을과 매우 흡사해서 그것 또한 신기했다.

이 마을도 사질토양인지는 모르겠다. 마을 대부분은 포장도로인데, 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자잘한 자갈들이 많은 땅이었다. 이 마을에도 혹시 우물을 파지 않았을까?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볼 걸 그랬다.


한편 충남 공주의 한 마을은 정감록에도 나온 십승지 중 하나로 마을 이름 자체가 명당골이다. 이 마을은 외명당에 속하는 지형이다. 이 마을 산은 풍수적으로는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는 형국이어서 일 년 내내 양식 걱정이 없는 마을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형의 특성상 이 마을은 주변 산들로부터 내려오는 풍부한 지하수로 인해 겨울에도 물이 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랫동안 이 마을에서 살아온 주민들은 아무리 가물어도 논에 물 걱정이 없다고 한다. 양쪽으로 개실천과 유구천이라는 물이 흘러서 마을에 저수지도 없는데 물이 풍족하다고 한다.


방풍림(사진출처: 오마이뉴스)

이 마을 한켠으로는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다. 원래 버드나무 숲이 있었지만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경지 정리라는 이유로 배어버렸는데, 이후 주민들이 다시 심어놓은 것이다. 한쪽이 터 있는 마을에 비보 기능을 추가한 것이다.


풍수사상에서 비보론은 매우 특이한 이론이다. 전통 풍수에서는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 심은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환경 개선론’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을에 비보숲을 조성하는 것은 방풍림의 기능과 함께 풍수해를 예방하고 수자원을 보전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양평 보룡리 마을의 비보숲은 어떤 기능을 하는 걸까? 상류의 발원지인 주산에서 물이 흘러내려서 마을 사람들이 생활용수와 농업용수로 쓴 후에 최종적으로 빠져나가는데 만일 그 물이 정화가 되지 않은 채 바로 빠져나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아랫마을의 물은 오염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윗마을에 나무를 심어서 물을 정화시키는 기능을 하도록 한 것이다.


‘비보론’에 관해 박수진 교수는 이렇게 해석한다.

”비보를 보면 사실은 자연이 만들어가는 과정들을 계속 도와주려고 하는 그런 자세가 있는 거 같아요. 이게 과거에 환경 결정론, 환경 반응론 이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제가 볼 때 풍수는 ‘환경 상보론’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러니까 자연을 거스르지 않지만 자연이 가지고 있는 힘을 최대한 도와서 인간과 자연에 다 좋은 방향으로 땅을 만들어 간다는 거죠. 풍수가 가지고 있는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 사실 그런 게 아닌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동양 전통사상은 자연과 인간을 대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상호보완적인 존재로 본다. 비보 사상에는 이러한 상보성의 원리가 깃들어 있다. 그래서 자연과 인간이 서로에게 부족한 것은 채워주고 남는 것은 나누는 것이다.

우리는 서양에서 형성된 현대 지리학 개론이나 도시계획학을 통해 이러한 지식을 배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1500년 전 풍수지리학의 개념이 도입되어 그 원칙이 적용된 공간 구조들을 형성해 온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풍수를 미신이라는 편견을 갖고 바라본다. 풍수를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해, 묫자리나 집터를 감별해 준다며 혹세무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해야 풍수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서구 사회에서 우리의 전통 풍수 사상을 현대 환경문제를 푸는 해법의 하나로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해외 연구자들과 교류하며 풍수 이론에 관해 알리고 있는 박수진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화두는 한 지역에서 만들어져 있는 전통 지식을 현대 과학적 지식과 어떻게 접목을 시키고 그걸 통해서 우리가 실제 정책이나 또는 여러 가지 환경 관리에 응용하느냐 하는 게 국제적으로는 굉장히 큰 이슈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풍수는 사실은 국제사회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고요. 이 동아시아 지역의 굉장히 독특한 환경적 특징 하에서 만들어지고 굉장히 체계적인 논리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항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높은 인구 밀도를 유지해 왔고 자연재해가 빈번했음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자연재해로 인한 대규모 인명 피해가 없었다. 어쩌면 풍수가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한 것이 아닐까요. “


그동안 전통 풍수는 개인의 이기적인 발복 목적에 치중하고 그것에 이용한 것이 사실이다. 이제 환경과학이란 관점에서 풍수를 다시 살펴봐야 한다. 우리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공동체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 연구해야 할 분야다.

풍수는 미신으로 치부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선조들의 경험과 빅데이터가 쌓여 만들어진 과학이다. 땅의 마음과 표정을 살펴 사람과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고자 했던 조상들의 자연에 대한 배려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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