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 자연의 과학
이번 회차는 방송 원고를 올릴지 말지 고민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풍수’라는 것에 대해 오해와 편견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저 역시 그랬습니다. 풍수지리는 미신이며 비과학적인 영역의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방송을 위해 공부를 하면서 저의 편견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이 글을 읽고 풍수에 대한 오해를 거둘 수 있기를 바라며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이번 회차에서는 풍수에 관한 기본적인 이론을 먼저 설명하고, 다음 회에서 풍수를 환경과학의 영역 안에서 설명하겠습니다.
# 들어가는 글
풍수지리는 음양오행을 기초로 정리된 학문으로, 풍수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 전통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키워드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의 삶에 그리고 정신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던 풍수지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알게 모르게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는 흔히 풍수지리를 미신 혹은 민간신앙의 영역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풍수지리는 우리 조상들이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과학’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현대 환경학에서 말하는 이론들과 풍수지리의 이론들은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 다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누구나 알듯이 풍수지리의 기본 조건을 ‘배산임수’라고 한다. 배산임수 형태를 갖춘 마을에서는 커다란 뒷산이 든든하게 찬 바람을 막아주고 앞으로는 강물이 흘러 물을 얻을 수 있다. 배산임수는 결국 생태적 조건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현대 환경학에서 물의 순환 원리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AD 277년에 중국의 풍수지리학자 곽박이 쓴 <금낭경>에 풍수 원리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그것이 현대 환경학에서 말하는 물의 순환 원리와 흡사하다. 그 옛날 어떻게 과학적 실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런 이론을 도출해 낼 수 있었을까.
풍수지리에서는 유난히 땅을 의인화 또는 의물화(擬物化)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땅이 생긴 형상에 따라 고유의 성질 또는 기운이 있어서 그 지역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 이를 함부로 훼손하면 안 된다고 한다.
이와 같은 풍수지리 이론은 현대 서구 사회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동양의 지혜이자 경험과학이다. 그래서 현재 서울대 지리학과를 중심으로 한국의 풍수지리를 유네스코 세계 무형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 풍수의 핵심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성
우리 조상들은 오랜 세월 자연의 일부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깨우쳤다. 그래서 세차게 흐르는 바람을 붙들어 세우고 흐르는 물을 갈무리해 살았다. 또한 땅의 기를 살펴 땅의 성격을 읽어내고, 땅과 인간이 어떻게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했다. 바람과 물 그리고 인간의 조화로운 삶. 풍수의 원리는 그렇게 우리의 역사와 생활에 스며들었다.
풍수란, ‘장풍득수’의 줄인 말로,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차가운 바람을 막을 수 있고 물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곳을 풍수지리에서는 명당이라고 한다.
풍수지리의 원리를 말할 때 기본적인 요소는 산과 물이다. 이때 산은 움직이지 않고 정지해 있기 때문에 음’이라 하고, 물은 흐르며 움직이기 때문에 ‘양’이라 한다. 이 음과 양이 만나 융합하면 새로운 기가 생긴다. 이 기가 사람에게 복을 내려준다. 이것이 곧 풍수지리의 기본 원리다.
풍수지리는 크게 집과 건물의 터를 잡는 양택풍수와 묘 자리를 잡는 음택풍수로 나뉜다. 이때 양택과 음택 모두 땅의 기운 즉 지기에 영향을 받아 발복이 나타난다.
풍수지리에서 가장 기본적인 명당의 조건이 있다. 바로 배산임수. 앞뒤좌우로 놓인 산 가운데 안기듯이 들어선 마을, 마을 앞을 느릿느릿 휘돌아 흐르는 강물. 이때 좌우의 산을 청룡, 백호, 뒷산을 현무, 앞산은 주작이라 하는데, 이를 일컬어 사신사라 한다.
이에 관해, 풍수 전문가 최낙기 씨는 이렇게 말한다.
“좋은 마을이 되기 위해서는 바람과 물, 즉 풍수가 가장 중요합니다. 터를 잡을 때 첫째, 바람이 들어오는 걸 막아야 돼요. 바람 들어오는 산줄기가 잘 감싸는 곳에 터를 잡아야 되고 그다음에 물, 우리가 필요로 하는 식수를 공급할 수 있는 물가, 그리고 우리가 쓰고 버린 오폐수를 정화할 수 있고, 주변에 농토가 있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수량이 필요한데, 지나치게 비가 왔을 때 큰 물이 지면 마을에 수해가 나버리잖아요. 이런 것들을 피할 수 있는 곳이 좋은 마을입니다.”
어떤가. 이는 상식적으로 인간이 살 수 있는 기본적인 환경 조건을 말하는 것일 뿐 미신의 영역이 아니다.
동서남북으로 에워싼 산줄기 아래 아늑하게 들어앉은 한양 도성. 도성 앞을 가로지르는 청계천 물줄기. 한양은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태를 갖춘 명당이었다. 그중에서도 최고 명당의 조건을 갖춘 곳은 바로 조선의 궁궐들. 좌청룡 우백호, 현무 주작 등 네 개의 산에 각 궁궐들이 감싸 안기듯 배치되어 있다. 특히 법궁인 경복궁은 그중에서도 가장 길지에 조성되었다.
왕궁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조선왕릉 또한 철저히 배산임수의 원칙에 따라 조영 되었다. 사방을 둘러싼 산과 배수가 잘 되는 경사진 언덕에 자리한 봉분, 능 앞을 흐르는 금천교 등. 조선 왕릉이야말로 명당 중의 명당이다.
우리나라 농촌 마을을 가면 여전히 이러한 배산임수의 조건을 갖춘 곳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배산임수의 조건을 갖춘 명당을 찾는 일은 집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풍수지리에서 묫자리는 집터만큼이나 신중하게 골라야 하는 곳이다. 풍수지리에서 가장 어려운 개념 중의 하나는 이른바 동기감응론. 즉 돌아가신 조상과 후손의 기가 같아서 서로 감응한다는 논리이다. 쉽게 말해, 명당에 무덤을 쓰면 후손에게 좋은 영향을 미쳐 복을 받는다는 것. 이러한 명당은 선한 일을 하고 덕을 쌓아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쉽게 설명이 되지 않는 이 이론 때문에 풍수는 미신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엔 알고 보면 심리적인 효과가 작동한다. 누구나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풍수 서적에서는 말하기를, 명당 터를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은 선을 베풀고 덕을 쌓은 사람만 가능하다고 한다. 명당은 돈을 주고 살 수도 없고 권력으로도 뺏을 수 없다. 이 말은 곧, 평소 선행을 하는 사람은 그 덕이 후손에게 미친다는, 권선징악의 논리이다.
구례군 마산면은 풍수지리의 대가인 도선국사가 이곳에 머물며 그 이치를 깨달았다고 할 정도의 길지이다. 이 마을의 명당 집터인 쌍산재는 마을 뒷산의 산줄기를 타고 좋은 기운이 내려와 형성된 집터라고 한다.
아름드리 꽃그늘을 드리우는 동백숲 사이로 난 돌길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서면 세월의 연륜을 품은 아담한 별채를 만나게 된다. 동백나무 터널을 지나면 문득 푸른 하늘과 너른 잔디밭이 펼쳐진다. 이 집은 풍경만으로도 이미 명당이다.
이 집의 주인은 이렇게 말한다.
“집 주변에 보시면, 그 대나무가 많죠. 그런데 겨울에 찬바람이 강하게 불 때 대나무가 많이 흔들려요. 그럼 굉장히 추울 거 같은데 의외로 이 집 안은 거의 바람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따뜻하죠. 그리고 이제 밖을 나가보면 바람이 상당히 많이 부는데도 이 안에 있으면 따뜻한 그런 느낌이 들죠.”
한편 풍수지리에서는 땅의 모양을 동물이나 사물 등에 빗대 표현하는데, 이때 그 형상이 갖고 있는 고유의 성질이나 기운이 그 지역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이를 ‘형국론’이라 한다. 이는 땅을 의인화 또는 의물화하는 우리 조상들만의 독특한 사고 체계이다.
전남 구례 오미리 마을은 풍수지리상으로 볼 때 노고단의 옥녀가 형제봉에서 놀다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금환낙지 형국. 이곳에 집을 지으면 자손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하여 남한의 3대 길지로 유명한 곳이다.
이 마을에 자리한 운조루는 조선 영조대에 지어진, 호남지방을 대표하는 99칸 대저택. 이 집의 형태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풍수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자.
“원래 이 집의 부엌에서 거북이가 나왔다고 해서 ‘금구몰니형’의 명당으로 이렇게 알려진 그런 집입니다. 배산임수의 전형이죠. 뒤에 산들이 펼쳐져 있고 그다음에 산 능선이 내려온 그 밑에 자리를 잡고 있는 금구몰니 형으로 알려진 그런 명당입니다. 그리고 거북이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형국, 진흙밭으로 들어가는 형국은 바로 그 좋은 부귀영화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곧 부자가 나올 터다. 이렇게 알려진 곳이고요. 또 앞에 이렇게 연못이 있거든요. 연지가 있다는 이야기는 뒤에서 흘러나온 기운을 새 나가지 못하게 막아주는 역할도 할 겸, 앞에 있는 산들이 좀 뾰족뾰족하니까 화기가 있다고 해서 화기 진압용으로 비보풍수의 흔적입니다.”
‘비보’라는 것은, 약하거나 모자란 것을 도와서 보태거나 채운다는 뜻이다.
같은 마을의 곡전재는 정원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인데, 이 집 안에는 특별한 공간이 하나 있다. 바로 연못이다. 집 앞에 있어야 할 연못이 어떻게 집 안에 있는 것일까? 사실 이 집은 들판 가운데 자리하고 있어 바람 때문에 집안 환경이 건조해지기 쉽다. 그래서 연못을 설치해 습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이 집주인은 이 연못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이 집을 지을 때, 옛날 이렇게 한옥은 연못이 풍수지리학적으로 연못도 있고, 또 이 연못을 농업용수로 사용해서 삥 둘러서 저희 논이었데요. 그리고 이 연못을 이용해 수로로 해서, 그 물도 농업용수로 쓰고, 또 생활용 수로도 쓰고 그렇게 했대요.”
그러므로 풍수에서 어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 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실용적인 목적에 따라 기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곡전재는 금환낙지형 즉 금가락지가 떨어진 형태의 명당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금환낙지형에는 풍수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 걸까? 이런 터에서는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후손이 나온다고 보는데, 사실 들판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따라서 그 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담장 높이를 높게 설치했다. 그리고 집 뒤에서 불어 들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서 대나무숲을 조성해서 부족하고 아쉬운 점을 충분히 고쳐서 명당으로 만든 곳이다.
이러한 명당의 형태는 함부로 그 모양을 바꾸거나 훼손하지 않는다. 만일 변경을 하면 화를 입는다고 믿었다. 이 마을에 있는 한 무덤 앞의 비석은 특이하게도 무덤과 좀 떨어진 곳에 놓여 있다. 이유가
뭘까. 이 지역은 마치 산자락이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내려오는 듯한 형국인데 무덤 봉분이 있는 자리는 뱀의 머리처럼 도톰한 곳에 위치해 있다. 이 명당터를 지키기 위해 이 지역 사람들은 풍수지리 특유의 재미있는 이론을 만들어냈다.
이에 관해 풍수 전문가는 이렇게 말한다.
“비석을 만약에 위에다 올리게 되면 땅이 뒤틀리고 무덤 환경이 망가질 수 있어요. 그런 핑계를 대서 어른들이 샤머니즘 이론으로 그 원인 분석을 했는데 무슨 이야기냐면, 우리 조상의 몇 대조 할아버지 뱀머리 명당인데, 뱀 머리 위에다가 돌을 올려놓으면 뱀이 죽어버린다. 그럼 명당 복이 더 이상 없을 거다. 그렇게 핑계를 댔죠. 사실은 그게 어떤 환경을 지키기 위한 어른들의 표현의 수단이었습니다. 그래서 풍수라는 것이 더더욱 비과학적 비논리적 또는 미신적 취급을 받았던 문제죠. 사실은 그 위에다 돌을 올려놓게 되며 땅이 가라앉거나 무너
질 수 있거든요. 미신보다는 과학적인 이치에 가까운 것이거든요.”
한편 풍수지리에서는 완벽한 명당이 없다고 말한다. 어느 터이든지 결함이 있고 부족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이때 이러한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터를 보충하거나 변경하는데 이를 비보 풍수라 한다. 대표적인 것이 ‘비보 숲’인데, 이는 다른 말로 하면 방풍림이라 할 수 있다.
비보를 할 때는 대개 숲을 조성하거나 돌무더기를 쌓아 자연물로 비보를 하든지 또는 장승이나 해태 등의 인공물로 비보하는 경우도 있다.
이 마을에는 숲 근처에 남근석이 있다. 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이 마을에 음기가 강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때 음기란 습하거나 어둡거나 추운 것을 뜻하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음기가 강한 땅이기 때문에 남근석을 세워놓는다. 그런데 옛사람들이 이를 보기에 민망해서 숲을 조성해서 남근석을 가리고 바람도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풍수지리는 자연을 존중하되, 지혜롭게 이용할 줄 알았던 우리 조상들의 경험이 만들어낸 이론이다. 이때 만일 주어진 자연의 조건이 생활에 불편을 가져올 때에도 함부로 훼손하거나 변경하지 않고 다만 최소한의 보완만 했다. 자연을 사람과 똑같은 생명체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풍수에서는 땅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본다. 따라서 땅을 함부로 건드리거나 훼손한다는 것은 곧 살아있는 생명체를 헤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긴다. 생명체를 헤치면 자연히 벌을 받게 된다. 그래서 풍수에서는 돌멩이 하나, 흙 한 줌을 소중히 여기고 삽질을 하는 것도 매우 조심스럽게 한다.
이와 같은 환경보호는 개발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살아왔던 서구 사회에서 20세기에 깨우치게 된 개념이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환경보호를 생활 속에서 실천한 것이다.
찬바람은 가던 길을 멈추고 햇빛은 따사롭게 비추며 맑은 물이 사시사철 굽이쳐 흐르는 곳. 이러한 터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했던 우리 조상들의 지혜. 풍수는 덕을 쌓으며 선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