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교 건축의 예술세계
전통 건축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건축에 투영된 당대의 삶의 방식과 시대정신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자연과 사람을 별개의 존재로 보지 않았던 우리 선조들의 사고방식은 건축에도 적용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전통 건축은 자연 속에 놓여있을 때 더욱 빛이 난다.
세속을 떠나 산속 깊이 자리한 사찰 건축이야말로 이러한 우리 전통 건축의 아름다음과 정신세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전통 사찰은 단순히 종교적 의미만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사상을 담은 철학이자 표현 양식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불교 건축이 이룬 예술세계로 들어가 본다.
2016년 가을. 경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수많은 건물들이 맥없이 무너지거나 금이 갔다. 하지만 이 엄청난 지진의 공격을 끄떡없이 견뎌낸 건물이 있었으니 바로, 불국사다.
경내 다보탑의 난간 중 하나가 비틀렸고, 대웅전의 기와 3장이 떨어졌을 뿐, 불국사는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불국사는 놀라울 정도로 과학적인 내진설계가 적용된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여기엔 건물 하나를 짓더라도 천년을 가도록 했던 조상들의 지혜와 뛰어난 건축술이 숨어 있다.
과학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우리 전통 건축의 가치가 매우 잘 투영된 것은 바로 사찰 건축이다. 불교 건축은 우리나라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한국 전통 사상과 삶을 이해하는 하나의 통로가 될 수 있다.
가람이란, 고대 인도어로 절이란 뜻이다. 이러한 가람에는 일정한 배치 형식이 있다. 산문이라고 하는 세 가지 형태의 문을 차례대로 지나면 범종루가 나오고, 다시 범종루를 지나면 비로소 경내에 들어서게 되는 형식이다.
초기의 가람은 탑을 중심으로 하나둘씩 전각이 세워지면서 가람을 형성하게 되었다. 불상이 경배의 대상이 되면서부터는 불상을 모신 금당이 주가 되고 탑은 종이 되는 식으로 사원 형식이 변한다. 가람의 형태는 불교를 받아들인 나라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되었다.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 건축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상륙하고, 다시 우리나라와 일본에 전해지면서 각 지역의 특색을 드러내는 쪽으로 변화되어 왔다. 우리나라의 사찰 건축은 애초에 인도의 양식과는 물론, 중국의 것과도 다르게 형성되었다.
동아시아의 사찰들은 한•중•일이 기본적으로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런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중국은 라마교나 불교 등을 받아들이면서 좀 더 대중 친화적인 형식으로 발달하게 되고 일본 사찰 건축은 정원화 되면서 마치 건축이 정원의 일부로 스며들 듯이 배치되었다.
반면 우리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선과 정토교가 혼합된 양식이 되면서 산지 사찰이 발달하게 된다.
시대적으로 봤을 때는 조선시대의 불교 건축은 고려를 본받았고, 고려는 신라를 계승했다. 하지만 시대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가람을 구성하는 중요한 두 축은 탑과 금당인데, 이 두 축을 기준으로 하여 시대별로 구분된다.
삼국시대에는 사찰이 궁궐의 배치 형식을 띤다. 이때 궁궐은 중국의 형식을 따랐는데, 중앙에 가장 중요한 금당이 있고 동서와 북쪽으로 세 채의 금당이 있다. 고려시대에 오면 자유로움과 화려함이 배가되면서 탑이 높아진다. 그리고 전각들이 중심이 되면서 사찰이 산으로 들어가는 경향이 생기기 시작한다.
유교국가인 조선은 불교를 억압하고 배척했다. 자연히 불교는 사대부보다는 일반 백성들에게 전파되었고 사찰은 탄압을 피해 산 중에 터를 잡게 된다. 이때 사찰은 주변의 산과 어우러져서 기존의 금당이나 요사채, 범종각들이 자유롭게 흩어져 배치된다. 하지만 위계질서를 갖춘 형식은 그대로 갖고 있다.
가람의 배치와 구조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 사찰은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평지가람, 산지가람, 그리고 석굴 가람이 그것이다. 평지 가람은 고대 왕도나 고을 한복판의 평지에 주로 세워졌다. 경주의 황룡사지와 익산의 미륵사지가 대표적인 평지 가람이다.
산지 가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일반적인 형태. 이때,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사찰 역시 자연이 허락한 지형에 맞춰 짓는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사실 사찰 건축은 기본적으로 자연을 많이 해치고 있다. 돌담 하나를 쌓는 것도 자연을 해쳐야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우리나라 전통 건축의 중요한 기법이다.
우리나라 사찰 건축은 규모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기본적인 가람배치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 마치 기승전결의 구조처럼 혹은 위계질서처럼 일정한 형식을 갖고 있다. 이는 사찰에 들어서는 순간 단계적으로 불법을 깨우쳐 나가다 마침내 해탈에 이르는 논리를 조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속리산 법주사는 우리나라 가람배치의 전형성을 갖고 있는 사찰 중 하나. 사찰 건축의 특성을 이해하려면 사찰이 놓인 자연 지형부터 이해해야 한다. 법주사는 산속 사찰 중에서도 평지가 넓어서 거의 평지형에 가까운 가람 배치 형태를 띠고 있다.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은 일주문. 이곳에서부터 가람이 시작된다. 속세와 구분되는 공간이니, 수행자는 이곳에서부터 마음을 가다듬고 들어오라는 의미로 세워둔 문이다.
속리산 법주사 일주문은 건축학적인 면에서 봤을 때 매우 특이하다. 구조적으로는 매우 불안한 형상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 네 개의 기둥 위에 지붕을 씌우는데, 두 개의 기둥 위에 건물이 서 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이 서 있는 천왕문이 나온다. 그런데 어느 절을 가든지 사천왕상은 사람들이 선뜻 다가가기 힘들 정도로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잡귀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다.
산문을 모두 통과하면 경내 중심이 되는 곳에 배치한 탑을 마주하게 된다. 탑은 불교 건축에서 불상 못지않게 중요한 신앙의 대상이다.
그런데 법주사에는 특이하게도 5층 목탑인 팔상전이 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유일한 목탑으로, 역사적으로나 건축학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전각이다. 팔상전은 겉에서 보면 마치 탑 같아 보이지만 내부에 공간이 있어서 전각 같기도 한 묘한 건축물이다.
가람의 맨 안쪽 중심이 되는 곳에는 주 불전, 즉 금당이 자리한다. 금당이란, 신앙의 대상인 본존불이 있는 불전을 말한다. 금당은 그곳에 있는 불상의 이름에 따라 명칭이 정해진다.
예를 들어, 석가모니 부처를 봉안한 곳이면 대웅전, 아미타 부처는 무량수전 또는 극락전, 비로자나 부처가 있는 경우에는 대적광전으로 불리게 된다. 법주사 대웅전은 석가모니, 비로자나, 아미타 불상을 모두 봉안하고 있다.
그런데 법주사 대웅전은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다. 겉에서 보면 마치 2층 같지만 안에서 보면 한 개 층이다. 부처님을 모신 공간으로서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층고를 높인 것이다.
해인사 역시 전형적인 가람배치 형식으로 세워졌다. 해인사는 본래 신라 시대에 창건되었지만 수많은 화재를 겪으면서 중건을 거듭해 왔으며, 가람 배치의 틀이 확립된 것은 1488년, 성종 19년 때.
사실 해인사는 사찰의 규모나 가람배치보다, 특별한 하나의 전각으로 유명하다. 주불 전인 대적광전 뒤, 담장 뒤에 숨듯이 자리한 그곳은 바로, 팔만대장경을 보관한 전각인 장경판전.
이 전각에는 매우 놀라운 과학적인 원리가 숨어있다. 팔만대장경은 오늘날까지 단 한 점의 손상 없이 보존 돼왔다. 그것은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 건물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목판에 치명적인 습기를 피하고, 햇빛을 확보하는 최적의 장소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서로 크기를 달리 한 창들을 마주 보게 함으로써 공기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건물 내부의 온도차를 줄여나간 것도 매우 과학적인 건축 설계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사찰이 모두 전형적인 가람배치 형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형에 따라 가람배치가 달라졌다.
영주 부석사는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사찰이다. 화엄불교의 정신을 건축적으로 가장 잘 구현해 낸 부석사는 산지를 마치 평지처럼, 자연을 조화롭게 이용할 줄 아는 사찰이다. 이에 관해,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의 김개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사실 한국의 많은 건축가들이 부석사의 건축을 아주 높게 평가하고, 실제로 부석사는 아주 독특한 독창적인 건물이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도 이 건물을 봐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건물의 각자가 너무 아름다워요. 주변의 산세와 건축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하는 것들도 아주 독특하고 여전히 현대에도 쓸 수 있는 그런 방식들을 제안하고 있어요. 그리고 건축과 사람이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고요. 너무나 많은 얘깃거리를 담고 있어요.”
나는 몇 해 전, 건축 전문가들이 상찬 하는 부석사의 아름다움을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찾아간 적이 있다.
부석사는 과연 어떤 이야기들을 품고 있을까. 부석사 가람 배치의 첫 번째 매력은 많은 수의 계단을 힘겹게 올라와 범종루를 올려다보는 순간 확인할 수 있다. 마치 양옆으로 날개를 펼치고 있는 듯한 느낌의 많은 전각들이 일순간 눈앞에 펼쳐진다. 전문가의 말처럼 새가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느낌까지는 아니지만, 자연 가운데 우뚝 높이 서서 사람을 내려다보는데 내리누르는 위압감보다는 어쩐지 부드러운 권위가 느껴진다.
부석사 건축이 매우 특별한 이유는 건물의 자리 앉음새 때문이다. 다른 사찰들과 달리, 부석사는 범종루를 지난 후, 안양루 진입 계단부터 무량수전까지 건물의 축이 약 30도가량 틀어져 있다. 자연지형에 맞춰지었기 때문인데, 건물보다는 건물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기 위해 그 축을 인위적으로 변형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지은 것이다.
이처럼 자연 지형에 맞춰지었기에, 부석사는 어디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산의 전경이 달라 보인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안양루는 앞에서 보면 매우 웅장한 2층 누각처럼 보이지만 절 마당에 올라 바라보면 초라한 단층 누마루처럼 보이고 마치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안양루 옆을 통과해 앞마당으로 올라가면 소박한 무량수전이 음전하게 앉아있다. 무량수전의 앞면과 옆면의 비율은 1:1.618. 가장 아름답고 안정적이라는 황금비율이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은 기둥 높이의 3분의 1 정도에서 가장 굵어진다. 이는 시각적으로 매우 안정감을 주는 황금비율이다. 배흘림기둥은 사람 키 높이 부근이 하얗게 닳아있었다. 너나없이 그 앞에 서서 만져본 것 같다.
무량수전의 진정한 숨은 아름다움은 측면에서 바라본 지붕 선에 있었다. 텅 빈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어 올라간 지붕 선을 놓치지 말고 봐야 한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지점은 다르겠지만, 나에겐 이 지붕 선이 배흘림기둥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관해 김개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기둥의 중앙이 배흘림이라든가 또 건물을 이렇게 한쪽을 쏠리게 만들어서 안정되게 만들고 제일 오른쪽 끝 기둥이 중앙에 있는 기둥보 다더 높아요. 이런 것을 기소성이라고 하는데 저런 형태를 써서 무량수전은 사실 아주 귀족적인 건축이에요. 그런 의미에서는 사실 목조 건축에서는 하기 힘든 방법들이에요. 목조 자체가 뒤틀린다고요. 그런 방법은 그리스 석조건축 같은 데서 많이 쓴 방법이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마 어떻게 사람 눈에 정확히 보일 것인가 하는 게 이 건물에서는 아주 중요한 거 같아요.”
하지만 부석사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량수전을 등지고 서서 안양루를 보아야 한다. 아니, 정확히는 안양루를 앞에 겹쳐 놓고 소백산 자락을 봐야 한다. 큰 산줄기는 마치 파도가 일렁이듯, 큰 산줄기 갈피마다 솟아오른 작은 봉우리들은 마치 비단을 여러 겹으로 펼쳐놓은 듯 유장하게 흐르고 있다! 탄성이 저절로 나오고 전율이 흐를 정도의 절경이었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마음에 폭풍우가 칠 무렵 다시 그곳에 가서 안양루 앞에 서서 소백산 자락을 보면 폭풍우가 가라앉을 것만 같다.
이렇게 불교 건축은 우리나라 전통 건축 양식의 역사와 함께 하면서, 우리 고유의 사상과 정신세계를 담고 있다. 이제 우리 산사를 보러 가거든 자연과 건축이 어떻게 질서를 맺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자.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보여달라고 자연에게 부탁하고 우리에게 허락한 풍경을 마음 안에 오롯이 담아 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