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운전면허 합격한 후기
미국에서 취업을 생각하기 전까지는 운전면허를 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고모 집은 야생동물들이 자주 출몰하는 시골 한가운데 있었는데, 특히 사슴들을 새벽이나 밤에 자주 나타나서 운전할 때 항상 조심해야 했다. 실제로 아침에 고모가 운전하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사슴을 피하지 못해 조수석 문을 통째로 교체한 적도 있었다.그래서 도로에서 로드킬을 당한 동물들을 볼 때마다, 내가 동물을 다치게 할까 봐, 그리고 나 자신도 위험해질까 봐 운전이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졸업이 가까워지면서 운전면허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나는 졸업을 앞두고 미국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직장을 구하는 것보다 더 걱정됐던 건 바로 운전면허였다. 뉴욕 같은 대도시는 지하철, 버스, 우버, 택시 등 대중교통이 잘 갖춰져 있지만, 대부분의 지역은 대중교통 이용이 어렵거나 아예 없는 곳도 많았다. 만약 면허 없이 취업을 한다면, 월급의 반 이상을 우버 비용으로 써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운전면허는 필수였다.
게다가 미국에서 취업하지 않더라도, 내가 살던 주에서 발급받은 미국 운전면허증은 한국에서 한국 운전면허증으로 교환할 수 있었다. 이 점도 큰 장점이었기 때문에, 나는 졸업을 앞두고 운전면허 시험을 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총 한 번의 필기시험과 세 번의 도로주행 시험을 봤다.
미국의 대도시에서는 한국어로 필기시험을 볼 수 있는 곳도 많다고 들었지만, 내가 살던 곳은 시골이라 영어 또는 스페인어로만 응시할 수 있었다. 필기 공부를 하면서 정답을 쏙쏙 피해 답을 선택하는 내 운전 지식 수준이 걱정됐지만, 다행히 한 번에 합격했다.
필기시험에 합격하면 운전 연습을 할 수 있는 허가증, '펄밋(Permit)'이 발급된다. 펄밋이 있으면 운전면허가 있는 동승자와 함께 언제든지 운전 연습을 할 수 있다.
나는 도로주행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한국처럼 운전학원을 찾아봤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대부분 학교에서 운전 수업을 듣거나 가족에게 배워서 면허를 따기 때문에, 따로 운전을 가르쳐주는 학원이 없었다.
(시골이라 없었던 걸 수도 있지만, 대도시에는 있을지도?)
결국 나도 방학 동안 가족인 고모부와 고모에게 운전을 배웠다. 다행히 집 주변에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길이 있어서 걱정 없이 연습할 수 있었다.하지만 학기가 시작된 후에는 수업 때문에 운전 연습을 할 시간이 없었고, 결국 친구들이 저녁에 연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했다.
그리고...
이게 바로 내가 첫 번째 도로주행 시험에서 떨어진 결정적인 이유였다.
나는 낮과 밤에 모두 운전 연습을 해봤다. 문제는 밤에 연습할 때였다. 친구가 나를 데리러 와서 운전석에서 조수석으로 자리를 바꿔 앉았기 때문에, 나는 항상 라이트가 켜진 상태에서 운전을 시작했다. 게다가 앞이 어두운 것 같으면 친구가 나에게 말하지 않고 직접 하이빔을 켰다. 그래서 나는 한 번도 내 손으로 하이빔을 켜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큰 문제가 되었다. 아무도 나에게 하이빔을 어떻게 켜는지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시험은 처음부터 감독관에게 찍혔다. 시험이 있던 날, 나는 직접 운전해서 시험장까지 갔다. 고모부도 함께했는데, 병으로 인해 걷는 것이 불편하셔서 장애인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차를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시험장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일반 주차장에 주차했다. 장애인 주차장에서 세 칸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고모부에게 다시 가까운 곳으로 주차할까 물었지만, 내가 긴장한 것을 아시고 괜찮다고 하셨다. 그래서 고모부를 모시고 천천히 걸어서 시험장으로 들어갔는데, 그 모습을 감독관이 보고 있었다.
시험장에는 감독관이 한 명뿐이라 30분 넘게 기다려야 했다. 내 차례가 되어 서류를 제출하자, 감독관은 갑자기 나에게 동행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고모부라고 답하니, 화난 말투로 "왜 장애인 주자장이 아닌 거기에 주차했어?"고 따지듯 물었다. 나는 이미 엄청나게 긴장한 상태였는데, 갑자기 나를 혼내는 듯한 그녀의 태도에 압도당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운전면허 실기 시험은 시험장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도로주행 시험이었다. 운전은 직접 가져온 차로 하는데, 차 주인의 신분증과 보험 카드가 필요하다. 서류 확인이 끝나자 차로 가서 시동을 켜 놓으라는 안내를 받았다.
(두 번째 시험부터였나? 그때가 3월이었는데, 감독관이 차에 가서 에어컨을 켜놓고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추웠지만… 감독관이 하라면 해야지… ㅠ)
감독관이 나에게 화를 낸 후 (고모부가 나중에 "무슨 일이었냐?"고 물어볼 정도로 목소리도 컸고, 말투에서도 짜증이 묻어났다), 시험을 보기도 전에 내 멘탈은 이미 다 무너져 있었다.
드디어 시험 시작.
감독관이 라이트를 켜보라고 했다. 그리고 이어서 하이빔을 켜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하이빔을 어떻게 켜는지 몰랐다. 그순간 바로 손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고, 결국 하이빔을 켜지 못했다. 감독관은 계속해서 사이드 미러, 브레이크, 양쪽 깜빡이 등 여러 가지를 체크했다. 하이빔을 제외하면 거의 다 대답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마지막 질문에서 문제가 생겼다.
감독관이 뭔가를 물어봤는데,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당황해서 다시 한번 말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감독관은 짜증이 난 듯한 얼굴로 "이런 것도 모르냐"며 바로 탈락을 선언했다. 그리고 2주 뒤에 다시 시험을 볼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차에서 내렸다.
나는 결국 그 감독관의 마지막 질문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 채 첫 번째 시험을 마쳤다. 내 차례가 되기 전,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미국인이 먼저 도로주행 시험에 떨어졌었다. 나는 그 감독관이 웃으면서 아이 엄마에게 문제점을 설명하며 다시 연습시켜야 한다고 친절하게 말하는 모습을 봤다. 그런데, 그렇게 친절했던 그 사람이 내가 말을 이해하지 못해 다시 한 번 말해달라고 요청했을 때는, “이것도 못 알아듣냐”며 끝까지 내가 못 알아 들었던 그 마지막 말을 다시 말해주지 않았다.
시험에 떨어지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 "왜 떨어졌냐"는 고모부의 질문에 나는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하이빔을 켜지 못했던 건 내 책임이었기에 하나도 억울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감독관의 마지막 질문을 못 알아들었다는 게 너무 속상했다. 미국에서 5년 가까이 살면서 내 영어 실력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 질문 하나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같은 미국인에게는 웃으며 친절했던 감독관이 나에게만 화를 내는 모습을 보며, 내가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느낌이 들어서 더 눈물이 났다.
두 번째 시험은 2주 뒤부터 가능했지만, 첫 번째 시험에서 떨어진 충격이 너무 커서 2주가 지나도 시험을 보러 가지 못했다. 그래도 운전 연습은 꾸준히 했다.
어느 날, 친구가 연습 삼아 맥도날드 드라이브 스루에 가보자고 해서, 생애 처음으로 직접 운전해서 드라이브 스루를 이용했다. 그런데 긴장한 나머지, 음식 받는 곳을 조금... 아니, 사실 꽤 많이 지나쳐서 차를 세워버렸다. 조수석에 있던 친구는 차를 뒤로 빼서 픽업 창구에 붙이자고 했지만, 뒷자리에 있던 친구는 불안했는지 그냥 자신이 음식을 받겠다고 했다. (사실 내가 후진하려는 순간, 뒷자리 친구가 갑자기 소리를 질러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ㅎㅎ) 문제는 창문을 열면 거리가 너무 멀었고, 그렇다고 차 문을 열고 받기에는 애매했다는 점이었다. 결국 친구는 몸을 반쯤 창문 밖으로 내밀어서 음식을 받아야 했고, 그 모습을 지켜본 다른 친구와 나 그리고 맥도날드 점원까지 모두 웃음을 참아야 했다.
한 달 후, 다시 시험을 보러 갔다. 그런데... 또 그 감독관이었다. 이곳에는 운전면허 시험장이 단 하나뿐이라, 시험을 보러 총 4번 갔지만, 매번 그 감독관 한 명만 있었다. '동네가 시골이라서 한 명만 일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잠깐 시골에 사는 게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그 사람이 불친절했다고 해서 내가 면허를 못 따는 건 아니지 않나? 그냥 나만 잘하면 될 일이었다. 운전만 잘하면!
첫 번째 시험 때처럼 하이빔 실수 같은 어이없는 이유로 또 떨어지지 않기 위해 이번에는 진짜 철저히 연습하고 갔다. 덕분에, 두 번째 시험에서는 도로주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긴장했지만, 예상보다 운전을 잘했다. 아니, 생각보다 훨씬 더 잘해서 자신감이 넘쳤다. ‘이번에는 무조건 합격이다!’라는 확신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너무 일찍 합격을 확신한 게 문제였다. 기쁨에 취해 방심한 나머지, 도로주행 마지막 구간에서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길을 그냥 지나쳐버렸다. 그 순간, 내내 조용하던 감독관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뭔가를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첫 번째 시험 때의 기억이 떠오르며 순간적으로 당황해 버렸다.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급히 유턴하고 차선을 변경하려다 보니 차가 조금 흔들렸고, 그 결과 운전 미숙으로 인해 또다시 탈락하고 말았다.
드디어 졸업을 한 달 앞두고 운전면허를 땄다. 두 번째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첫 번째 시험 때처럼 2주 후면 다시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달이나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4월 초가 되었고, 졸업까지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마지막 시험을 보러 갔다. 진짜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에, 완벽하게 준비해야 했다.
서류 확인 과정에서 감독관이 내 서류를 보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내 학생비자가 3개월후인 7월까지였기 때문에, 면허 발급이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나는 졸업 후 미국에서 1년 동안 체류할 수 있는(취업을 했다는 조건으로) OPT를 발급받았기 때문에, 문제없이 면허를 받을 수 있었다.
시험을 보기 전까지 도로주행 코스를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레인 체인지, 깜빡이, 급정거, 주차까지 모든 것을 꼼꼼하게 반복하며 완벽을 기했다. 그 덕분에 마지막 도로주행 시험은 문제 없이 끝났고, 감독관이 내 펄밋에 합격 도장을 찍어 주었다. 드디어 운전면허를 손에 넣었다!
처음 필기시험을 본 후 도로주행까지 합격하는 데 무려 5개월이 걸려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결국 면허를 딸수 있어서 행복했다.
나중에 깨달은 사실은, 그 감독관이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불친절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면허를 딴 후 한 달쯤 지나서, 친구가 오토바이를 구매하고 펄밋을 받으러 갔다가 그 감독관을 만났다고 했다. 이미 나에게 그 감독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친구는, 들었던 것처럼 자신에게도 불친절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 친구는 미국인 백인 남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감독관이 특정 인종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선택적으로 불친절한 사람이라는 결론이 났다. 참고로 그 감독관은 백인 여자였고, 시험장에서 친절하게 웃으며 설명해줬던 상대 학생과 엄마도 모두 백인 여자였다.
어렵게 딴 미국 운전면허증은 귀국 전까지 3개월 동안 가끔씩 사용하다가, 한국에 돌아온 후 바로 한국 면허증으로 교환했다. 2종 보통으로 교환해 줬는데, 한국에 온 뒤로는 아직 한 번도 운전한 적이 없어서, 어렇게 딴 그 운전면허증은 이제 장롱 면허가 되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