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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Jul 12. 2022

미국에서 운전면허 시험 보다가  펑펑 운 이유

미국 운전면허 합격한 후기


미국에서 취업을 생각하기 전까지는 운전면허를 딸 생각이 1도 없었다. 고모 집은 시골이라서 자주 야생동물들이 집 주위를 돌아다녔다. 특히 사슴들을 새벽이나 밤에 자주 볼 수 있었는데 그래서 운전할 때 항상 조심해야 했다. 실제로 고모가 운전하다가 사슴이 갑자기 달려들어서 조수석 문을 통째로 바꾼 적이 있었다. 도로에도 로드킬을 당한 동물들이 많이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동물들을 죽일까 봐 무서워서 운전을 하고 싶지 않았다.


졸업이 다가오자 나는 미국에서 취업을 알아봤다. 미국에서 취업하게 되면 뉴욕 같은 대도시 빼고는 거의 다 운전을 해야 살 수 있다. 엄청 부자여서 맨날 우버나 택시를 타고 다닐 수 있다면 면허가 필요 없겠지만 나는 부자가 아니다. 내가 면허 없이 취업을 한다면 월급의 반이 다 택시비로 나갈 수도 있기 때문에 면허는 꼭 필요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취업하지 않더라도 내가 살던 주는 운전면허증을 한국 운전면허증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해서 나는 졸업 1학기를 남기고 운전면허 시험을 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1번의 필기시험과 3번의 도로주행 시험을 봤다. 미국은 대도시에서는 한국어로 필기시험을   있는 곳도 많다. 하지만 나는 시골에 살고 있어서 영어로 시험을 봐야 했다. 필기 공부하는 내내 정답을 쏙쏙 피해 답을 선택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필기는  번에 합격했다. 필기를 합격하면 운전연습을   있는 펄밋을 준다. 펄밋을 가지고 운전면허가 있는 동승자와 함께 있으면 언제든지 운전연습을   있었다.


처음에는 한국의 운전면허 학원처럼 운전을 가르쳐주는 곳을 찾아봤었다. 하지만 미국 애들은 대부분 학교에서 운전 수업을 듣거나 부모님한테 배워서 따로 운전을 가르쳐주는 학원이 없다고 한다. (시골이어서 학원이 없을 수 있는데 대도시는 운전을 가르쳐주는 곳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도 방학 동안 고모부와 고모랑 함께 운전연습을 했다. 고모 집 주위는 사람이나 차가 거의 없어서 텅 빈 도로에서 운전연습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학기가 시작하고 낮에는 수업 때문에 고모나 고모부와 운전 연습할 시간을 낼 수 없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저녁에 운전 연습을 할 수 있게 도와줬다. 여기서 첫 번째 도로주행 시험에서 떨어진 이유가 드러난다...



주차장에서 열심히 주차 연습


나는 일단 낮에도 밤에도 운전 연습을 해봤다. 문제는 밤에 운전연습을  때는 친구가 나를 데리러 와서 운전석에서 조수석으로 자리를 옮겨서 나는 항상 라이트가 켜진 상태에서 운전을 시작했었다. 친구는 내가 운전을 하다 앞이 어두운  같으면 자기가 직접 하이빔을 켰기 때문에 나는  번도  손으로 하이빔을   적이 없었다. 이게 문제였다. 아무도 나한테 하이빔을 어떻게 켜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첫 번째 시험은 처음부터 감독관한테 찍혔다. 운전면허를 보는 날은 오후 수업만 있는 날이라서 오전 일찍 시험장까지 내가 운전을 하고 갔다. 고모부랑 함께 갔는데 고모부는 병으로 인해 걷는 게 좀 불편하셔서 장애인 주차장에 주차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주차를 잘 해야겠다는 압박에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시험장 입구와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를 했다. 장애인 주차장에서 3칸 떨어진 곳이었다. 나는 고모부에게 다시 가까운 곳으로 주차를 할까 물어봤는데 고모부는 내가 긴장한 걸 아셔서 괜찮다고 하셨다. 그래서 차에서 내려서 고모부와 같이 천천히 사무실로 걸어갔는데 그 모습을 감독관이 봤다.  


시험장에 감독관이 딱 한 명 있어서 30분 넘게 기다리다 내 차례가 되었다. 감독관에게 서류를 들고 갔다. 감독관은 내 서류를 보더니 갑자기 같이 온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고모부라고 대답하니 나한테 화가 난 말투로 왜 주차를 거기에 했냐고 따지듯이 물어봤다. 고모부가 걷는 게 불편한데 입구와 가까운 장애인 주차장이 아닌 조금 떨어진 일반 주차장에 주차를 한 게 맘에 안 든 거 같았다. 나는 고모부가 괜찮다고 해서 그냥 거기에 주차한 거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너무 긴장한 상태였고 화를 내면서 물어보는 그 감독관의 기에 눌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시험 때문에 긴장을 해서 정신이 없었다. 나는 그냥 I'm sorry.라고 대답했지만 이건 내가 그 감독관에게 전혀 미안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운전면허 실기 시험은 시험장 주의를 한 바퀴 정도 도는 도로주행을 한다. 운전은 직접 가져온 차로 시험을 본다. 그래서 차 주인의 신분증과 보험 카드가 필요하다. 자동차 보험이 없으면 안 되는 거 같았다. 서류 확인이 다 끝나면 차로 가서 시동을 켜 놓으라고 한다. (두 번째 시험부터인가, 그때가 3월이었는데 차에 가서 에어컨 켜놓고 기다리라고 하기도 했다. 나는 추웠는데... ) 감독관이 나에게 화를 낸 후 (진짜 누가 들어도 화내는 거였다. 고모부가 나중에 무슨 일이었냐고 물어볼 정도로 목소리도 크고 말투도 화내는 느낌이었다.) 나는 차로 가서 시동을 켜고 감독관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때 이미 내 멘탈은 다 무너져 있었다. 


감독관이 차로 다가와서 제일 먼저 라이트를 켜보라고 했다. 그리고 하이빔도 켜보라고 했다. 나는 하이빔을 어떻게 켜는지 몰랐다. 한 번도 내 손으로 하이빔을 켜 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손에서 땀이 나기 시작하는 거 같았다. 나는 하이빔을 켜지 못했고 감독관은 계속해서 사이드 미러, 브레이크, 양쪽 깜빡이 등등 여러 가지를 물어봤다. 하이빔 빼고는 거의 다 대답한 거 같았다. 그런데 감독관이 마지막으로 물어본 질문을 내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못 알아들었으니깐 다시 한번 말해줄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감독관은 너는 이런 것도 모르냐며 도로주행을 허락할 수 없다고 탈락을 줬다. 그러고는 2주 뒤에 시험을 볼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나는 결국 그 감독관의 마지막 질문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 채 첫 번째 시험을 끝냈다. 내 차례가 되기 전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미국 애가 먼저 도로주행 시험에 떨어졌다. 그 감독관이 아이의 부모에게 이러한 점이 문제여서 시험에 떨어졌으니까 다시 연습시키라고 웃으며 말하는 걸 봤었다. 그렇게 친절했던 사람이 내가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다시 한번 말해달라는 말에 이것도 못 알아듣냐고 말하며 끝까지 내가 못 알아들었던 그 마지막 말을 다시 말해주지 않았다.


시험에 떨어지고 학교로 돌아오면서 왜 떨어졌냐는 고모부의 질문에 울음을 터뜨렸다. 나도 모르겠다. 일단 하이빔을 어떻게 켜는지 몰랐던 건 어쩔 수 없지만 그 감독관의 마지막 질문을 못 알아들었다는 게 제일 서러웠다. 학교에 돌아와서도 계속 울었다. 고모한테 전화해서 떨어졌다고 말하면서 내 감정은 더 격해졌고 운전을 도와줬던 친구한테 전화해서 서러움을 토로했다.



'내가 미국에서 5년 가까이 살았는데 ㅠㅠㅠㅠㅠㅠ 그것도 못 알아듣고 ㅠㅠㅠ 고모부가 거기다 주차해도 괜찮다고 했는데 ㅠㅠㅠㅠ 왜 자기가 나한테 뭐라고 해 ㅠㅠㅠ 고등학생은 떨어지고 친절하게 이유도 말해주던데 ㅠㅠㅠㅠ 나 그 고등학생이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데 ㅠㅠ 나도 엄마 아빠 어린이인데 ㅜㅠㅠㅠ 왜 나는 이유도 안 말해주고 ㅠㅠㅠㅠ 나한테만 화내 인종차별 같아 ㅠㅠㅠㅠㅠㅠ'



이게 그때 당시 친구들이랑 부모님한테 말했던 내용이다. 진짜 너무 서러웠다. 나는 그래도 내가 미국에 5년 가까이 살아서 괜찮은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마지막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게 너무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그 감독관이 다른 사람에게 웃으며 친절했던 모습을 분명히 봤는데 나한테는 계속 화만 내면서 그것도 못 알아듣냐는 태도에 인종차별당했다고 생각해서 서러웠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친절하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미 친절한 공무원들을 많이 만나봤었기 때문에 ‘미국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불친절하다라는  잘못된 선입견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선입견이라고 생각했던 그 불친절한 직원을 내가 만나게 되었다.


두 번째 시험을 보러 가서 또 그 감독관을 만났을 때는 이 동네가 시골이라서 한 명만 일하는 건가라는 생각에 진짜 너무 짜증이 났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운전면허 시험장이 한 곳뿐이었고 시험을 보러 총 4번 그 시험장을 갔는데, 갔을 때마다 만난 사람이 그 감독관 딱 한 명이었다. 내가 살던 곳은 너무 시골이었다.










 번째 시험은 2 뒤부터 된다고 했는데  번째 시험이 떨어진 충격에 2 뒤에도 시험을 보러가지 않았다. 시험을 그냥 포기하고 싶었지만 운전면허가  필요했기 때문에 결국  번째 시험이 떨어지고   뒤쯤  번째 시험을 보러 갔다.


그래도 그동안 꾸준히 운전연습을 했었다.  번은 친구가 운전연습을 하는데 맥도날드에 가자고 했다. 미국은 대부분 드라이브 스루가 있기 때문에 나는 3개월 운전 인생 처음으로 직접 운전해서 드라이브 스루를 갔다. 그런데 긴장해서 음식 받는 곳에서 조금 지나서 차를 세웠다. 옆에  친구는  뒤로 가서 픽업하는 쪽으로 붙으라고 말하는데 뒤에 탔던 친구는 조금 불안했는지 그냥 자기가 하겠다고 했다. 그냥 문을 열기에는 애매하고 창문을 열고 받기에는 거리가 멀어서 결국 친구는 창문 바깥쪽으로 몸을 빼서 음식을 받아야 했다.


 번째 시험에서 드디어 도로주행을 시작할  있었다. 감독관을 다시 만나자마자 그때 기억이 떠오르며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침착한척 하며 운전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운전을 너무 잘했다. 이번에는 무조건 합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 일찍 긴장을 놓았는지 마지막에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을 그냥 지나쳐버렸다. 감독관은 어디 가는 거냐고 어이없게 쳐다봤다.  길은 평소에 다니던 길도 아니었고 저녁에 운전 연습하러     빼고는   적이 없어서 길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예정에도 없던 유턴과 레인 체인지를 해야 했다. 그동안 연습하면서 레인 체인지를 제일 어려워했었다. 이미 길을 지나쳐서 살짝 멘탈이 흔들렸지만 담담한  레인 체인지를 했다. 그런데 살짝 흔들렸다. 너무 왼쪽   같아서 살짝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어쨌든 차가 살짝 흔들렸고 감독관은 소리를 질렀다. 결국 운전미숙으로  번째 시험도 떨어졌다. 연습할 때는 진짜 잘해서 친구들이  이번에는 통과할 거라고 했는데... 











세 번째 시험, 드디어 졸업을 한 달 앞두고 면허를 땄다. 두 번째 시험이 떨어지고 또 2주 후면 시험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한 달 뒤에 오라고 했다. 한 달 뒤면 졸업이 딱 한 달 남은 4월 초였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에 뭐든지 완벽하게 해야 했다. 졸업까지 한 달밖에 남지 않아서 감독관은 내 서류를 보고 면허를 발급해 줘도 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어딘가에 전화를 했다. 나는 졸업 후 취업을 한다면 미국에 합법적으로 1년 동안 지낼 수 있는 OPT를 발급받았기 때문에 면허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시험을 보기 전에 계속해서 도로주행 코스를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레인 체인지, 깜빡이, 급정거, 주차도 꼼꼼하게 운전연습을 했다. 연습 덕분에 마지막 도로주행 시험은 완벽하게 마쳤다. 감독관이 내 펄밋에 합격 도장을 찍어줬다. 너무 행복했다. 드디어 운전면허를 땄다. 처음 필기시험을 보고 도로 주행 합격까지 5개월이나 걸렸다.


나중에 들었는데 내 친구 중 하나가 오토바이를 사서 운전하고 싶다고 펄밋을 받으러 갔다가 그 감독관을 만났다고 했다. 그 친구한테도 엄청 불친절해서 친구는 내가 말한 그 감독관이 이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해줬다. 내 친구는 미국인, 백인 남자였으므로 그 감독관이 인종차별 하기보다 그냥 불친절 사람일 거라고 생각을 바꿨다. 참고로 그 감독관은 백인 여자였다.


어렵게 딴 미국 운전면허증은 귀국 전까지 3달 동안 가끔씩 사용하다가 한국에 도착해서 바로 한국 면허증으로 교환했다. 2종 보통으로 교환해 줬는데 한국에 온 뒤로 한 번도 운전한 적이 없어서 어렵게 딴 내 운전면허증은 지금 장롱 면허가 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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