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짜증나는 Suite style bathroom
대학생 신입생(Freshgman)으로 한 학기 동안 기숙사 생활을 마치고 2학년(Sophomore)이 되었다. 사실 나는 2학년 때도 계속 첫 번째 기숙사를 신청을 했었다. 첫 번째 기숙사에 대한 불만이 많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그랬던가, 주어진 환경에 너무 잘 적응했다. 와이파이가 안돼서 매달 핸드폰 요금을 10만 원씩 내는 것만 빼면 개인 화장실이 있는 유일한 기숙사에 만족하며 살았다. 그래서 기존에 불편했던 엘리베이터와 와이파이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하기 위해 로비와 가까운 1층으로 방을 선택했다. 좋은 방을 선택해서 문제없이 여름방학을 보내고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기숙사에 들어가기 2일 전에 고모 집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고모가 내 룸메이트한테 이메일을 받았다고 알려줬다. 메일의 내용은 자신이 안내견(Service dog or Assistance dog)을 데리고 기숙사에서 생활할 건데 괜찮냐는 것이었다. 이메일을 받은 날짜는 며칠 전이었는데 내가 아닌 고모한테 이메일이 가서 하마터면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에 이메일을 확인하지 못할 뻔했다. 왜 이메일이 나한테 오지 않고 고모한테 갔는지 이유가 궁금했는데 아마 내 비상 연락망에 고모 이메일을 적어놔서 그쪽으로 이메일이 간거 같았다.
이메일을 받고 바로 학교 기숙사 사무실(Department of Residence Life)로 갔다. 나는 강아지를 좋아하지만 그 좁은 방에서 큰 안내견과 지내는 건 자신 없었다. 또 고모랑 고모부 모두 동물 털 알레르기가 있으셔서 고모 집을 자주 왔다 갔다 하는 나는 혹시 몰라서 방을 바꿔야 했다. 신입생 때는 모든 기숙사가 다 차서 들어갈 수 없었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빈 방이 있었다. 하지만 첫 번째 기숙사에는 빈 방이 없어서 같은 가격대에 다른 기숙사로 옮겨가야만 했다.
그렇게 두 번째 기숙사에서 생활이 시작됐다. 두 번째 기숙사는 우리 학교에서 제일 최근에 지어진 기숙사로 엘리베이터가 있는 5층짜리 건물이었다. 조건만 보면 나쁘지 않은 기숙사인데 이 기숙사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화장실 때문이었다. 화장실이 내가 살던 기숙사 중에 제일 별로였다.
'Suite Style Bathroom'
이 화장실은 방 2개 사이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서 문이 양쪽으로 2개가 있다. 이런 경우 보통 세면대는 각 방에 하나씩 있고 가운데 샤워실 겸 화장실을 양쪽 방에 사는 사람들이 공유한다. 미국에 가기 전에는 이런 화장실을 본 적이 없었는데 미국에는 이런 스타일의 화장실이 있는 대학교가 꽤 많았다.
이 화장실의 제일 큰 단점은 화장실 안쪽에서 문이 잠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은 방 쪽에서 잠글 수 있는데 다른 쪽 방에서 우리 방으로 들어오지 않게 하기 위해 안쪽에서 잠글 수 있는 거 같았다. 문제는 옆방 사람이 화장실 안에 있을 때 내가 문을 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내가 샤워하려고 화장실에 옷을 벗으려고 할 때 옆방에서 노크도 없이 문을 벌떡 열어서 화장실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사과하며 얼른 문을 닫았긴 했지만 같은 여자라도 친하지 않은 사람을 화장실에서 만나는 건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그래서 항상 화장실을 사용하기 전에는 노크하고 화장실 안쪽 소리까지 확인한 후에 문을 열었다. 그리고 화장실을 쓸 때는 생각보다 소리가 잘 들릴 때가 많아서 나나 룸메, 옆방 애 모두 화장실 사용할 때는 민망하지 않게 음악을 틀고 사용했었다. (소리가 잘 들리는 이유는 방문과 방바닥 사이에 공간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살았던 기숙사 모두 노출 콘크리트 느낌의 인테리어가 된 기숙사였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에 방에 들어왔을 땐 방 전체가 차가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미국 애들 대부분 엄청난 양의 짐을 가지고 기숙사에 이사 오기 때문에 벽에 붙이고 꾸미고 하는 거에 따라 방마다 분위기가 정말 많이 달라진다. 사진은 없지만 내 룸메도 자기가 그린 그림이나 좋아하는 캐릭터인 스파이더맨으로 방을 꾸몄다. 또 알 전구처럼 예쁜 조명으로 인테리어를 하기도 했는데 정말 예뻤지만 나나 룸메 모두 저녁에 과제하느라 바빠서 그 예쁜 조명 인테리어를 감상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게 많이 아쉬웠다. 난 첫 번째 기숙사와 똑같은 핑크 핑크 한 이불과 베개가 내 방 인테리어의 끝이었다.
나는 룸메가 먼저 이사 온 뒤에 늦게 들어가서 침대를 선택할 수 없어서 문 바로 옆 침대를 사용했다. 창가를 좋아하지만 크게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이 자리는 정말 큰 단점이 하나 있었다. 너무 추웠다!!!
나는 겨울이 아닌 여름에 추웠는데 그 이유는 에어컨 때문이었다. 내 옷장 쪽 천장에서 에어컨이 내 침대 쪽으로 바로 나왔는데 엄청 추울 정도로 에어컨 온도를 내리는 걸 좋아하는 미국인 룸메랑 항상 온도 조절로 눈치싸움을 해야 했다. 추워죽을 거 같아서 온도를 올리는 나와 덥다고 온도를 계속 내리는 룸메의 눈치 싸움. 둘이 같이 있을 때는 서로에게 양해를 구하고 온도 조절을 하긴 했지만 너무 더워하는 룸메 때문에 내가 춥게 살아야 했다. 가끔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서 방문을 열면 내가 냉동창고 문을 열은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에어컨 때문에 자리를 바꿀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룸메가 창가 자리를 너무 좋아했고 또 그쪽이 자리가 조금 더 넓어서 짐이 많은 룸메에게 딱 맞는 자리였기 때문에 자리 바꾸는 건 포기하고 살아야했다.
방에는 침대, 책상, 3단 서랍장 그리고 옷장이 없는 대신 행거가 있었다. 첫 번째 기숙사보다는 넓었지만 가구를 놓기에는 공간이 여유롭지 않아서 침대를 살짝 올려서 밑에 냉장고를 넣어야 했다. 모든 침대가 자유롭게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데 원하는 사람은 2층 침대도 사용할 수 있었다. 어떤 방은 방을 넓게 사용하고 싶어서 룸메랑 같이 2층 침대를 만들어서 침대 공간을 아끼는 대신 소파랑 TV를 놓고 게임을 하는 방도 있었다. 또 다른 방은 각자 침대의 높이를 2층 정도의 높이로 올리고 밑 공간에 책상을 넣거나 소파랑 러그를 넣어서 아지트처럼 꾸미기도 했었다. 층고가 높아서 2층 침대에 앉아도 머리가 천장에 닿지 않아 방을 넓게 쓸 수 있는 꽤 좋은 방법이었다.
두 번째 기숙사를 들어오면서 전자레인지를 구매했는데 놓을 곳이 없어서 3단 서랍장 위에 올려놓아야 했다. 하지만 음식 냄새가 옷에 밸까 봐 자주 사용하지 않았고 공용 전자레인지가 있는 키친이 가까이에 있어서 대부분 그 전자레인지를 사용했다.
미국 애들은 방문도 방 안 인테리어 만큼 예쁘게 꾸미는 걸 종아 하는데 특히 내 룸메는 방문 꾸미기에 진심이었다. 대부분 기숙사에 이사를 하면 처음에는 이렇게 RA들이 미리 방문 앞에 이름을 써서 꾸며준다. 이름을 그냥 프린트해서 붙이는 게 아니고 직접 써서 붙이고 꾸며서 예쁘게 이름표를 만들준다.
디자인 전공인 내 룸메는 정말 열심히 방문을 꾸몄다. 특히,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방문에 새롭게 디자인해서 꾸미는 걸 좋아했었다. 그래서 매번 새롭게 바뀌는 방문 디자인을 보며 룸메가 다음 디자인으로 어떤 걸 준비해 올지 기대하기도 했다.
내 룸메 말고도 많은 애들이 방문을 꾸미는 걸 좋아해서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양말을 걸어 놓기도 하고 화이트보드처럼 지나가는 애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소품을 걸어 놓는 애들도 있었다.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 있는 방문에 화이트보드가 걸려있는 있었는데 'Hi'라고 쓰여있어서 나도 답으로 'Hi, how are you?'라고 답을 써 준 적도 있었다 :) )
각 층마다 있던 키친 덕분에 나는 이 기숙사에서 제일 많은 음식을 요리했었다. 요리라고 해봤자 라면이나 김치볶음밥 정도였지만 전자레인지로 돌려먹는 냉동 음식보다는 훨씬 괜찮았다. 방과 가까이에 있어서 만족스러웠던 부엌도 문제는 있었다. 부엌과 세탁실이 한 공간 안에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오피스텔도 부엌에 세탁기가 있긴 하지만 창문을 열면 환기가 잘 된다. 하지만 기숙사 부엌에는 창문은 없었기 때문에 환풍기로 음식 냄새를 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부분 학생들이 요리를 해먹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언젠가 한번 애들이 그곳에서 베이컨을 구워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마침 내가 건조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다 끝날 때맞춰서 갔는데 복도부터 베이컨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부엌은 냄새로 가득 차서 설마 했는데 내 빨래에서도 베이컨 냄새가 났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부엌을 사용할 때 애들이 빨래를 돌리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게 되었다. 나는 라면이나 김치볶음밥 냄새를 좋아하지만 외국인들은 싫어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미리 미리 확인하게 되었다.
첫 번째 룸메보단 두 번째 룸메랑 친했다. 룸메가 되면 다 친해질 수 있다는 생각은 첫 번째 기숙사 생활로 인해 버린 지 오래였다. 그래서 기대를 안 했는데 두 번째 룸메랑은 꽤 친해질 수 있었다. 생활패턴도 비슷했고 청소도 같이 하고 밥을 같이 먹으러 간 적도 있어서 많이 친해질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룸메가 좋아하는 스파이더맨 담요를 선물했는데 룸메는 답례로 그림을 그려서 선물로 줬다. 담요는 돈 주고 구매한 거였는데 그림은 룸메가 직접 그린 거여서 더 감동적이었다. 룸메는 별거 아니야라면서 줬지만 비싼 선물보다 더 만족스러웠고 고마웠다. 이때 받은 그림은 지금도 내 방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전시해둘 정도로 아끼는 그림이 되었다.
두 번째 기숙사는 제일 최근에 지어진 기숙사였기 때문에 건물 인테리어나 엘리베이터 등 시설 문제에서는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양쪽에서 열리는 화장실과 내 전공수업을 들을 수 있는 건물과 정반대에 있는 기숙사 위치가 많이 불편했다. 그래서 1년 동안의 두 번째 기숙사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좋은 위치에 있는 기숙사를 찾아 세 번째 기숙사로 이사를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