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국 시골대학 유학생, 한국 대학에서 수업듣기

한국인 미국 유학생 연세대에서 수업듣기

by Amy

어느 날, 학교에서 해외 방문학생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팸플릿을 보게 되었다. 교환학생(Exchange Student)은 학교가 협정 맺은 해외 대학에 파견되는 방식인 반면, 방문학생(Visiting Student)은 협정 대학이 아닌 해외 대학에서도 수업을 듣고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우리학교는 일본과 협정을 맺은 대학이 많아서, 내 일본 친구들은 대부분 일본 대학에서 온 교환학생들이었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팸플릿에 소개되었던 한국 학교 중에 건국대랑 고려대가 있었다. 미국 생활 3년 차,마침 한국이 조금 그리워지던 시기였고, 한국으로 ‘역유학’을 하는 것이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미국 시골을 벗어나 대도시에서 놀면서 학점을 채울 수있는 좋은 기회!

이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바로 학비, 강의 내용, 학점 인정 여부 등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 전공 강의 스케줄 때문에 방문학생으로 한국에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방문학생 프로그램을 포기하려던 순간, 구글의 알고리즘 덕분에 연세 국제 하계 대학(YISS)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여름 계절학기를 연세대에서 4주 또는 6주간 영어로 듣는 과정이었다.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모두 해외 대학에서 온 학생들이었으며, 교수님들은 대부분 한국인이지만, 연세대 교수님이 아닌 해외 대학 교수님들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장점은 학비였다. 연세 국제 여름 프로그램에서 강의 3개(9학점)와 기숙사 비용을 합쳐도, 우리 학교에서 강의 3개(9학점)를 듣는 것보다 저렴했다. 학비를 절약하면서도 연세대에서 한국 대학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잠깐, 6주란 짧은 시간 안에 강의 3개를 듣고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

그러나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연대를 가보겠어'라는 마음에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7월의 연세대


7월의 연세대


더운 여름, 나의 한국 대학 체험이 시작됐다.

캠퍼스가 큰 연세대에서의 여름은 정말 힘들었다. 우리 학교도 꽤 크다고 생각했지만, 연세대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캠퍼스가 너무 넓어서 6월 말부터 8월 초까지,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기숙사에서 강의실이 있는 건물까지 가는 15분이 마치 1시간처럼 느껴질 만큼 힘들었다. 외국인 학생들도 한 손에는 손 선풍기, 다른 손에는 차가운 음료를 들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넓은 연세대 캠퍼스와 경사진 언덕을 더위와 싸우며 걸을 때마다, 저절로 미국 시골 대학이 그리워졌다.



끝이 보이지는 길
7월의 연세대


연세대에서 미국 대학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내 로망 하나를 실현할 수 있었다.

바로 계단식 강의실에서 수입을 듣는 것이었다.


대학 입학 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대학 수업은 항상 계단식 강의실에서 진행되었다. 그래서 고모부의 수업을 청강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대학 강의실이 계단식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전공 특성상 정원이 20명 정도인 강의만 있었기 때문에, 생물 수업 오리엔테이션 때 딱 한 번 계단식 강의실을 구경만 해봤을 뿐이었다.

그래서 연세대에서 학생 수가 많은 강의를 선택할 때,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었는데, 다행히 강의 3개 중 2개를 계단식 강의실에서 듣게 되었다. 많은 학생들과 함께 강의를 듣는 건 처음이라, 정말 영화에서 보던 대학 수업 같았다.


드디어 내 로망을 실현한 기쁨도 잠시, 시간이 지나면서 계단식 강의실의 단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학생 수가 너무 많아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의 거리가 좁았고, 교수님이 계신 자리에서 모든 학생들이 잘 보이기 때문에 강의 중에 졸면 너무 죄송했다.

특히 아침 수업은 너무 힘들었다.



외국인 친구들이랑 서울 즐기기


강의를 들으면서 친해진 친구들은 없었지만, 페이스북을 통해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기회가 있었다.

연세 국제 하계 대학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수업 시작 전 미리 친해질 수 있었고, 나도 그곳에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놀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


'반포 한강 무지개 분수를 같이 보러 갈 사람' 이라는 글을 통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이 모임의 일원 중 한 명일 뿐이었다. 한국인과 외국인들이 30명 넘게 있던 단체 카톡 방에서 약속 시간 조율이 진행되면서, 점점 인원수가 줄어들었고, 결국 한강에 같이 간 사람들 중에서 나 혼자만 한국인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길 안내도 하고,

"한강에서는 치맥이야" 라며 치킨을 주문하고,

"한강 라면은 꼭 먹어야 해"며 라면을 사러 가면서,

어쩌다 보니 모임의 리더가 되어 있었다.


밤 11시에 신촌에서 아이스크림먹기



한강에 같이 간 친구들 중 취향이 비슷했던 몇몇과 친해지면서, 본격적으로 서울의 밤을 즐기기 시작했다.

나도 서울에서 생활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서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관광을 즐겼다. 너무 더운 낮을 피해 주로 저녁에 많이 돌아다녔는데, 서울에는 식당, 카페, 쇼핑몰, 노래방 등 밤에도 갈 수 있는 곳들이 정말 많았다.


특히 신촌은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도 길거리에 사람들이 가득해서, 새벽 1시에 24시 카페에서 빙수를 먹거나, 우리 학교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새벽 3시에 캠퍼스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셔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출처 연세대 홈페이지


연세대 기숙사 생활


연세대에서 수업을 듣는 동안 나는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당시 국제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기숙사는 두 곳이 있었다. 하나는 여학생 전용으로 공용 화장실을 사용하는 기숙사, 다른 하나는 남녀 공용으로 각 방에 화장실이 있는 기숙사였다. 가격 차이도 크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방 안에 화장실이 있는 기숙사를 선택했다. 하지만 신청자가 몰리면서 경쟁이 생겼고, 탈락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중에 내가 포함되었다. 미국에서는 기숙사 운이 꽤 좋았던 나였지만, 한국에서는 운이 없었다.

결국 공용 화장실이 있는 여학생 전용 기숙사로 가게 되었다.



내가 찍은 연세대 기숙사 International dorm



내 대학 인생에서 가장 작은 기숙사 방이었다. 사진으로 봤을 때도 작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좁을 줄은 몰랐다. 미국에서 기숙사 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불평했던 기억이 다 잊힐 만큼, 엄청난 충격이었다.


방에는 책상, 침대, 그리고 문 옆 작은 옷장 하나가 전부였다. 공간이 너무 협소해서 나와 룸메이트의 사생활은 원치 않아도 공유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앞에 있던 남녀 공용 기숙사도 방 크기는 비슷하다고 들어서 ‘한국 기숙사는 원래 이런 건가? 아니면 서울 땅값 때문에 방을 최대한 많이 만들려다 보니 이렇게 작은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세대 기숙사
연세대 기숙사


연세대 기숙사


연세대 기숙사



방문은 카드 키로 열 수 있었고, 호텔처럼 방 안에 키를 꽂아야 전기가 들어왔다. 문제는 룸메나 나 둘 중 한 명이 항상 카드를 꽂아둬야 했다는 점이었다. 내가 카드를 꽂아둔 날 먼저 수업을 나가게 되면, 룸메는 에어컨이 멈춘 방에서 더위와 싸우며 자다가, 결국 강제로 일어나야 했다.



연세대학식
아직도 가끔 생각나는 소고기 짬뽕밥


연세대 학식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것 중 하나가 연세대 학식이었다. 기숙사비에 학식이 포함된 건 아니었지만, 연세대 학식이 맛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꼭 먹어보고 싶었다. 다행히 식당이 여러 개라 선택지도 많았고, 맛도 괜찮고 가격도 적당해서 자연스럽게 학식을 자주 먹게 됐다. 신촌에 나가서 맛있는 음식을 사 먹을 수도 있었지만, 솔직히 한여름이라 학교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햇볕이 너무 강해서 걸어서 신촌까지 가는 게 고역이었고, 결국 어쩔 수 없이 학교 안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보통 하나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그것만 먹는 스타일이었는데, 하필이면 그 더운 여름에 학생식당에서 팔던 '소고기 짬뽕밥'에 빠져버렸다. 얼큰한 국물과 소고기의 조합이 너무 취향에 딱 맞아서, 연대 생활 6주 중 3주는 점심마다 소고기 짬뽕밥을 먹었다.




6주간의 한국 대학 체험


연세대에서 보낸 6주는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조금만 더 놀고 싶었는데 하는 아쉬움을 느낄 즈음, 기말고사가 다가왔다. 너무 신나게 지냈던 탓인지 성적은 최악이었다. 처음으로 여름학기를 들었는데, 나에게 6주 동안 3개의 강의를 듣는 건 무리였다. 다행히 연대에서 들은 강의는 시간만 인정받고, 학점은 GPA에 포함되지 않았다. 내 소중한 GPA를 지킬 수 있었다. :)


한국 대학 체험은 대만족이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힘들었지만, 우리 학교와 비교도 안 되는 큰 캠퍼스에서 공부해 보고, 서울 구석구석을 관광하며 새로운 친구들도 만날 수 있었다. 수업은 한국에서 들었지만, 클래스메이트 대부분이 외국인이어서, 한국에서 공부한다는 느낌보다는 미국에서 계속 공부하는 느낌이었다.

미국으로 대학을 가기로 결정한 후, 한국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는 전혀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짧게라도 경험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