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로 듣고 영어로 말하기
중학교 1학년 때, 문화교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일본 친구 집에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다. 이 기회를 통해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 후 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해 고3까지 무려 6년 동안 공부했다. 하지만 졸업 후 일본어를 사용할 기회가 없어서 점점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런데 의외로 미국에서 일본어를 다시 사용할 기회가 생겼다.
내가 다닌 대학에는 한국인은 없었지만, 중국인과 일본인은 꽤 많았다. 중국 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유학 오는 경우가 많았고, 일본 학생들은 교환학생으로 온 경우가 많았다. 나는 중국 학생들보다 일본 학생들과 더 쉽게 친해졌는데, 중국 학생들은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함께 유학 온 경우가 많아, 서로만 어울리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일본 학생들은 미국에서 머무는 시간이 짧아서, 다양한 활동을 하려는 경우가 많았고, 덕분에 더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내가 일본어를 배웠다는 걸 알게 된 일본 친구들은, 나에게 일본어로 대화를 시도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는 되지만, 말을 할 수 없었다. 답을 하려고 하면 내 입에선 자동으로 영어가 나와버렸다.
'2년 정도 공부를 안 했다고 벌써 일본어보다 영어가 편해지다니...'
6년이라는 시간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일본 드라마나 <명탐정 코난> 덕분에 듣는 건 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영어로 대답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일본 친구들과 나 사이의 대화는 일본어와 영어가 섞이기 시작했다.
"Amy, 一緒にWalmartに行く?" (에이미, 같이 월마트 갈래?)
"Sure! Let's go."
대학에서 친해진 일본 친구들 덕분에, 나는 일본 여행도 자유롭게 다녀올 수 있었다.
처음으로 친해진 일본 친구들은 한 학기가 지나고,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끝나면서 각각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나도 미국에 온 지 2년 만에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에 가게 되었고, 우리는 각자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게 되었다. 헤어질 때,
"한국에 놀러 와!"
"일본에 놀러 와!"
서로 아쉬운 마음을 전하며 인사를 나눴지만, 나는 갑작스럽게 일본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고, 한 달도 안 돼서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일본에 가기로 결심한 건 완전히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당시 나는 비투비를 엄청 좋아해서, 그들의 일본 앨범을 듣고 싶었는데, 그 앨범이 멜론에는 없었다. 그래서 중고 거래로 앨범을 사기로 했는데… 사기를 당했다.
처음 겪은 사기에 분노한 나는 직접 일본에서 앨범을 구매하기로 결심했다. 마침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쌓인 비행기 마일리지 덕분에 비행기 표도 쉽게 구할 수 있었고, 일본 친구 집에서 숙박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겨,
큰돈을 쓰지 않고도 여행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모든 준비가 빠르게 끝났고, 사기를 당한 지 불과 4일 만에 나는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사실 도쿄에 사는 친구가 가이드해주겠다고 하지 않았으면, 무작정 혼자서 일본에 가는 건 정말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도쿄 지하철은 생각보다 너무 복잡했고,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통역도 해주고 가이드도 해준 일본 친구가 정말 고마웠다. 또한, 그때 비투비가 도쿄에서 하이터치 팬미팅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일본에 온 이유를 들은 친구 동생이 그 소식을 알려주었다. 덕분에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비투비를 일본에서 만날 수 있었다. 친구 동생이 내가 사다 준 신라면을 맛있게 먹었다고 했는데, 5개가 아니라 50개를 사다 줄 걸 그랬다.
대학에서 부전공을 선택하려고 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일본어였다. 당시 나는 미술 역사 과목으로 깎아먹은 내 GPA를 살려줄, 아주 쉽게 A를 받을 수 있는 수업이 필요했다. 말은 조금 서툴지만, 그래도 6년 동안 일본어를 배웠기 때문에, 일본어 수업에서는 충분히 A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교수님은 일본어 에세이를 제출하면, 기초반을 건너뛰고 내 실력에 맞는 클래스로 배정해 줄 수 있다고 하셨다. A를 쉽게 받을 수 있고, 이력서에 '일본어 부전공'을 넣을 수도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전공 과목과 일본어 수업의 일정이 겹쳐 부전공을 할 수 없었다. 대신, 교양 과목으로 일본어 수업을 들을 수는 있었다.
내 일본어 클래스의 점수는 60%는 6년 동안 공부한 결과, 그리고 40%는 일본 친구들 도움으로 이루어졌다.특히 계속되는 질문에 대답해 준 내 룸메가 가장 큰 도움을 줬다. 나는 Intermediate(중급) 반 클래스부터 들을 수 있었는데, 이 반부터는 한자를 쓰는 양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전체적인 수업 내용은 어렵지 않았지만, 한자를 너무 몰라서 힘들었다. 외우는 건 정말 못하는데, 왜 한자는 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건지... 하필 고등학교 때도 한문을 정말 못했는데, 한자만 보면 다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영어로 일본어를 배워야 했기 때문에 두 언어를 동시에 이해해야 해서 조금 복잡했지만, 그 과정이 나름 재미있었다. 결국 일본어 덕분에 꼭 필요했던 소중한 A 두 개를 받았고, GPA를 조금 올려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