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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 기숙사에서 살아남기 1

내 인생 첫 기숙사 생활

by Amy

우리 학교에는 캠퍼스 안팎으로 약 13개의 기숙사가 있었고, 나는 그중 세 곳에서 3년 반을 생활했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는 고모 집에서 지냈다. 우리 학교는 만 21세 이하 학생이 부모님이나 형제가 근처에 살지 않으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는데, 입학 당시 나는 만 20세였지만 고모가 보호자로 등록되어 있어 기숙사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기숙사에 들어가지 않은 것을 바로 후회했다.


집과 학교 사이의 거리도 있었고, 차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일정을 고모부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야 했다. 나는 아침 수업이 없었지만, 고모부가 8시 수업이 있는 날에는 7시부터 학교에 가야 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매일 아침 학교 도서관 소파에서 쪽잠을 자곤 했고, 결국 기숙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다행히 다음 학기에 기숙사에 빈자리가 생겨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미국 대학은 보통 8월 말에 새 학년이 시작되기 때문에 1학기를 가을 학기, 2학기를 봄 학기라고 부른다. 봄 학기 시작 전 겨울방학은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이때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지낼 수는 없지만, 짐을 빼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 사실을 몰랐던 나는 기숙사 방에 처음 들어갔을 때 룸메이트의 짐으로 어질러진 방 상태를 보고 경악했다. 심지어 쓰레기도 그대로 있었다.

이사한 날. 정말 불편했던 침대
기숙사로 짐을 옮긴 날
조금 정리된 내 공간
수납공간이 너무 없는 기숙사에 유일한 옷장


나의 첫 기숙사 생활


나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과 방을 함께 써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걱정이 많았다. 학교에는 1인실이 있는 기숙사도 있었지만, 미국까지 와서 혼자 방을 쓰면 현지 친구들과 친해지기 어려울 것 같았다. 사실 1인실은 2인실보다 더 비싸서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첫 번째 기숙사로 2인실을 선택했다.


내가 그려본 기숙사 평면도


조금 더 정리된 내 핑크 핑크한 첫 기숙사 방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에 유튜브에서 'college move-in day' 브이로그를 많이 찾아봤다. 영상 속 유튜버들은 마치 집을 통째로 옮기는 듯한 규모로 짐을 싸 오고, 방을 꾸미는 데 엄청 신경을 썼다. ‘방이 얼마나 크면 저 많은 짐이 다 들어갈까?’ 싶을 정도였다. 나도 처음에는 이것저것 많이 사고 싶었지만, 기숙사에서 한 학기 살아보고 그 마음을 접었다. 짐이 많으면 이사할 때 엄청 고생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기대와 달리, 내 기숙사 방은 생각보다 작았고, 수납공간도 옷장과 책상 서랍 정도밖에 없었다. 물건을 보관할 공간이 부족해서 결국 월마트에서 플라스틱 박스를 사다가 침대 밑에 넣고 생활해야 했다.


대부분의 짐을 침대 밑 플라스틱에 보관했다




첫 번째 룸메이트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사람과 한 방에서 지내면서, 룸메이트와의 생활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불편한 점이 있어도 어떻게 기분 나쁘지 않게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고, 어디까지 솔직하게 말해야 할지도 애매했다.


생활 패턴이 많이 달랐던 것도 어려운 점 중 하나였다. 나는 야행성이어서 오후에 시작한 과제가 새벽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영어 과제는 정말 어려웠다…) 반면, 룸메이트는 엄청 일찍 자는 편은 아니었지만 꼭 TV를 켜놓고 잠드는 습관이 있었다. 결국 나는 매일 밤 조용히 일어나 룸메이트의 TV를 끄고 자야 했다.

처음 겪는 타인과의 생활은 예상보다 훨씬 복잡했고, 룸메이트와의 거리감을 조절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첫 룸메이트와 끝까지 친해지지 못했다.






기숙사의 장점과 단점


기숙사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항상 화장실이었다. 우리 학교 기숙사는 2인실, 4인실, 그리고 아파트형 기숙사까지 다양하게 나뉘어 있었다. 아파트형 기숙사는 1인 1실에 개인 화장실까지 딸려 있어 인기가 많았지만, 그만큼 가격이 비쌌다. 그래서 나는 2인 1실이지만 방 안에 화장실이 있는 기숙사를 선택했다.

바로 'Private Bathroom'!


방 안에 있는 화장실
넓은 화장실의 비해 엄청 작은 샤워실



화장실이 마음에 들어서 이 기숙사를 선택했지만, 그 외에는 좋은 점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3층에 살았는데, 일단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3층까지 걸어서 오르내리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미국의 석회질 물맛을 싫어했던 나는 항상 생수를 사야 했다. 그 생수를 3층까지 옮기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냉장고였다. 작아서 가벼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이사할 때 친구에게 부탁해서 냉장고를 옮겼는데, 기숙사 계단이 좁고 가팔라서 둘 다 고생해야 했다.


기숙사생 필수품 냉장고와 전기포트



제일 충격적이었던 건 와이파이가 없었다는 것! 시골에 있는 고모 집도 와이파이가 되는데, 어떻게 대학 기숙사에 와이파이가 없을 수 있나 싶었다. 기숙사 와이파이는 1층 로비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고, 방에서는 유선 인터넷만 사용 가능했다. 공유기를 사볼까 생각도 했지만,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덕분에 나는 핸드폰 요금을 매달 10만 원씩 내야 했다. 당시 내 핸드폰 요금은 기본 인터넷 2GB에 $82, 추가 1GB당 $15로 정말 비쌌다.


세탁실은 층마다 있어서 세탁 자체는 편리했지만, 처음 세탁실에 갔을 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세탁기와 건조기에 셀프 빨래방처럼 동전을 넣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숙사비도 저렴하지 않은데, 빨래를 할 때마다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니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처음 2~3주 동안은 고모 집에 가서 세탁을 했다. 하지만 나중에 기숙사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전을 넣지 않아도 세탁기가 작동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헛돈을 썼다는 사실에 황당했다. 세탁실 어디에도 '동전 없이 사용 가능' 하다는 안내문은 없었다. 나는 왜 한 번이라도 동전을 넣지 않고 세탁기를 작동해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까운 내 동전들...




기숙사에는 부엌도 있었다. 1층에 있는 부엌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봄방학 때, 나는 일본 친구들에게 한국 마트에서 사 온 떡볶이와 짜장라면을 요리를 해준적이 있었다. 대패삼겹살도 사서 구워 먹었는데, 냄새가 많이 날까 걱정했지만, 봄방학이라 학생들도 없었고, 베이컨 냄새와 비슷해서 생각보다 괜찮았다.


내 첫 번째 기숙사는 화장실과 부엌을 제외하고는 다 별로였다. 처음에는 괜찮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른 기숙사에 살면서 '내 첫 번째 기숙사는 정말 별로였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없을 때는 몰랐지만, 있으니까 더 눈에 띄는 것들이 많았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나는 두 번째 기숙사로 이사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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