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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Mar 10. 2022

미국에서 보험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미국 독립기념일에 응급실 간 후기

2015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이었다. 나는 한 달 동안 텍사스에 계신 큰아빠 집에 있을 예정이어서 텍사스로 큰아빠와 큰엄마랑 함께 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큰엄마의 차는 SUV였는데 나는 뒷좌석에 앉아 트렁크에 있는 짐을 꺼내려고 하다가 일이 생겼다. 트렁크에 있던 가방에서 뭘 꺼내려고 해서  달리던 차 안에서 무릎을 꿇고 짐을 찾고 있었다. 몇 분 동안 짐을 찾다 '어디 간 거야'라고 생각하며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그 순간 오른쪽 무릎에서 '틱' 소리가 났다. 


한순간이었다. 갑자기 소리와 함께 무릎이 움직이질 않았다. 아예 움직일 수 없었다. 간신히 무릎을 움직여서 살짝 구부린 채로 의자에 똑바로 앉았다. 앞 좌석에 앉은 큰아빠, 큰엄마는 아직 나의 상태를 알지 못했는데 나는 혹시 몰라서 아무말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면 움직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무릎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려고 하면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다. 


그래서 결국 큰아빠 큰엄마께 말을 했다. 

" 저 무릎이 안 움직여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큰엄마의 물음에 나는 상황을 설명했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나도 어이가 없었다. 

차 안에서 뭘 했길래 무릎을 다쳐....


일단 하이웨이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목적지인 H 마트, 한국 마트까지 갔다. 도착해서 나의 상태를 확인하신 두 분은 너무 어이없어하셨다. 가만히 있으면 괜찮지만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고통이 밀려왔다. 진짜 그런 고통을 처음이었다. 


그날은 하필 미국 독립절이었다. 공휴일. 텍사스에 그 많고 많은 한인 병원도 공휴일에는 문을 닫는다. 큰아빠는 아는 병원 몇 곳에 전화를 하다가 내가 너무 아파하니깐 결국 응급실에 갔다. 응급실은 한국에서도 안 가봤는데... 미국에서 응급실이라니...


응급실에 도착하고 큰아빠가 내려서 나의 상활을 설명하니 휠체어를 끌고 사람이 나왔다. 휠체어를 타고 응급실 침대에 도착하니 X-ray를 찍었다. 그러는 와중에 내 무릎은 타의에 의해서 조금씩 움직였고 어느새 내 맘대로 무릎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진통제를 먹어서 그런지 통증은 점점 사라졌다. 


응급실에서 아픈 무릎 잡고 있는 사진  


의사는 뼈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럼 나는 왜 아픈 거야?" 

"글쎄? 그런데 아무튼 뼈에는 이상이 없어." 

"..."

"그리고 너도 이제 조금씩 움직일 수 있잖아. 그럼 괜찮은 거 같다." 


'응?'


'아파서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던 게 30분도 안 지났는데 이제 괜찮아 보인다고 가라고? 진통제 하나 주고? 가라고? 진짜? 나 가도 돼? 

한국에서 응급실은 안 가봤지만 일단 이렇게 아팠는데 정확히 왜 아팠던 건지는 알려주지 않나? 

뭐 다른 검사를 해서라도?'


속으로 별생각을 다 했다. 마음 같아선 다른 검사도 해보고 싶지만 미국 응급실이라서 돈이 걱정됐다.

점점 무릎도 잘 움직이고 약을 먹어서 그런지 통증도 없었다. 그리고 의사가 가도 된다고 하니까 일단 집에 가기로 결정했다. 



응급실에서 준 손목밴드, 내 정보가 쓰여있다. 


진료가 다 끝나서 진료비를 내러 갔다. 떨렸다. 미국은 병원비 비싸다던데... 걱정이 앞섰다.


직원이 보험이 있냐고 물어봤는데 한국에는 보험이 있지만 미국에는 보험이 없었다. 그래서 없다고 하니 디파짓을 내야 한다고 했다. $270 정도를 디파짓으로 내고 진료비 청구서는 집에 편지로 보내준다고 했다. 치료 후 진료비를 바로 결제할 수 있는 한국과 다르게 미국은 진료비 청구가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했다. 역시 미국답게 느렸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집에 온 뒤로 무릎이 계속 아팠다. 처음처럼 심하진 않지만 걸을 때마다 무릎이 불편했다. 그래서 이틀 뒤에 한인 한의원에서 침을 맞았다. $75를 냈는데 미국은 한의원도 비쌌다. (요즘 손목 때문에 한국에서 한의원을 다니고 있는데 치료비가 1만 원 정도로 미국이랑 비교하면 8배!)


진료비 낼 때는 잊어버렸는데 나는 학교 보험이 있었다. 우리 학교의 모든 유학생은 꼭 학교 보험에 가입해야 해서 학기에 한 번씩 $600 보험료를 학비와 함께 냈다. 그런데 나는 하필 방학에 다쳤다. 학교로부터 정확한 말을 들은 적이 없어서 학기 중이 아닌 방학 때는 학교 보험을 쓸 수 있는지 잘 몰랐었다. 그때부터 학교 홈페이지, 보험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찾아보고, 학교 국제 학생 오피스에서 일하는 친구한테도 물어보며 방학 때 학교 보험 사용 가능 유무를 확인하려고 노력했다. 


국제 학생 오피스 젤 높은 분한테까지 물어봐서야 방학 때도 학교 보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달 뒤 집으로 치료비 청구서가 도착했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2600, 한국 돈으로 300만 원 정도였던 거 같다. 응급실에서 1시간 정도 있었는데 300만 원 가까이 되다니... 진짜 들었던 것만큼 어마어마한 가격이었다. (다른 브런치나 블로그 글을 통해 미국 응급실 후기를 보니 대부분 나보다 더 많은 진료비가 청구되었다. 내 진료비는 저렴한 편이었다)

얘기 들어보니깐 진료비에는 내가 탔던 휠체어 밀어주는 거, 진통제, 내가 만난 모든 의료진마다 다 비용이 청구된다고 한다.


치료비 청구서를 받은 뒤 보험 회사에 전화했고 며칠 뒤 새로운 치료비 청구서를 받았다. 학교 보험으로 커버돼서 $110만 내면 된다는 내용이었다. 300만 원 정도 되던 병원비가 13만 원 정도로 떨어졌다. 이래서 미국에선 보험이 꼭 필요한 거라며 부모님이랑 친구들한테 병원비를 아낀 이야기를 하며 자랑 아닌 자랑을 했다.


결과적으로 미국 응급실 비용으로 병원에서 냈던 디파짓 $270 + $110 = 총 $380(40만 원) 정도 냈다. 그런데 솔직히 내 무릎이 왜 아픈 건지 알 수 없어서 만족스러운 진료는 아니었다. 40만 원 내고 그냥 무릎 사진 하나 찍고 진통제 하나 먹었을 뿐이다.

 

1년 뒤 여름 방학 때 한국에 와서 병원에 갔다. 그동안 계속 아팠던 건 아니었지만 오래 걷거나 무리를 하면 무릎이 종종 아팠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MRI를 찍었는데 무릎 안쪽 인대가 조금 파열됐다고 약 먹으면 2~3주 안에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그런데 이 무릎은 1년 전에 다쳤었다. 약 먹으면 2~3주 안에 괜찮아질 무릎이 다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나아지지 않고 있었던 거였다. 


이 일을 계기로 한국에서 다쳤으면 금방 완치됐을 내 무릎에 미안해하며 한국 의료 보험과 의료 시스템이 세계 최고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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